김훈길 하나금융투자 수석 연구위원

투자자들이 극단적으로 리스크에 무감각해지고 있다. 금년 들어 시장참여자들은 현금비중을 줄이고 모든 종류의 자산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이미 많이 오른 자산은 더 올라 역사적 고점을 반복적으로 경신하고 있으며 그 동안 하락했던 자산은 반등을 시작해 빠르게 상승하는 중이다.

선진국 증시는 이미 금년 상반기부터 사상최고치에 도달했고 이머징 증시 역시 연간 30% 이상 급등했다. 상승한 것은 증시뿐만이 아니다. 부동산, 회사채, 원자재 등 대부분의 자산가격이 호황을 보였다. 심지어는 투기성을 의심받는 가상화폐까지 폭등하고 있다는 것이 요즘 시장의 분위기를 말해준다.

눈 여겨 볼만한 사실은 어지간한 리스크 이벤트에 시장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정학적 불안정, 통화정책 리스크, 정치적 불확실성 등 어떤 돌발변수에도 투자자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오로지 높은 수익률만을 추구할 뿐이다. 글로벌증시(MSCI ACWI)의 금년 누적수익률은 19.5%이다. 이 수치가 11월까지 수익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간 전체수익은 2013년(20.3%)을 넘어서는 것도 가능하다.

리스크를 대하는 시장의 태도는 여러 지표들을 통해서 비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선진국과 이머징 채권인덱스 사이의 상대적 격차를 의미하는 EMBI스프레드는 2016년 1월 이후 2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하락해오고 있다. EMBI스프레드는 2011년 유럽재정위기 당시 한 차례 급등했고 4년이 지난 2015년 8월 중국 경제성장 우려가 제기되면서 다시 한번 급상승한 바 있다.

지난해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을 거치며 EMBI스프레드는 한동안 높게 형성될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시장은 급속도로 안정되었다. 미국 하이일드 스프레드 역시 마찬가지다. 2016년 중반 마이너스 금리 시기를 전후해 시중에 넘쳐나는 유동성은 모든 자산을 매수하기 시작했고 하이일드 가격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금년 들어 스프레드 축소 속도가 둔화되기는 했지만 이미 금융위기 이후 최저점 수준에 다시 근접해 있는 상태다.

시장변동성을 대표하는 지표인 VIX를 볼 때 이런 상황은 더욱 극명해진다. 지표발표시점인 1990년 이후 역사적 저점에 현재 도달해 있는 것이다. 금년 상반기에 이미 역사적 저점을 기록했지만 하반기에 접어들어서도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낮은 변동성은 양면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안정적 시장과 적극적 투자심리가 맞물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 생각해보면 국면전환의 기점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VIX지수가 저점에 도달했던 역대 2번의 경우 모두 이후 단기간에 시장변동성은 급등하기 시작했다. 자산가격이 상승하던 국면에서 높은 레버리지를 통해 수익을 추구하던 투자자들은 자산가격이 더 이상 상승하지 못하는 시점에 도달했을 때 디레버리징으로 전환해야 했고 이는 시장급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와 러시아 디폴트 사태가 이에 해당하고 2008년 금융위기 역시 동일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물론 현재의 낮은 변동성이 반드시 추후 시장급락으로 이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도한 위험매수가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은 항상 인지해야 할 것이고 또한 시장변동성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위치에 현재 와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글/김훈길 하나금융투자 수석 연구위원 

김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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