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서연] 금융당국이 주요 금융지주회사들의 경영권 승계 시스템에 메스를 들이댄다. 앞으로 CEO 경영승계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등 지배구조 문제로 금융회사 경영에 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는 중요한 사항의 점검결과가 시장에 공표된다.

금융감독·검사제재 프로세스 혁신 태스크포스(TF)는 12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금융감독·검사 제재 프로세스 혁신방안(권고안)’을 발표했다. 혁신 TF의 권고에 따라 금감원은 다수의 금융소비자에게 부당한 피해를 유발하는 영업행태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 원인을 자세히 들여다 볼 전망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사진=연합뉴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최근 금융당국 컨트롤타워들이 공식 석상에서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는 주요 금융지주회사들의 경영권 승계 시스템에 대한 부분이다.

혁신TF는 CEO 경영승계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등 지배구조 문제로 금융회사 경영에 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는 중요한 사항은 점검 결과를 시장에 공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및 리스크 관리, 내부통제 등이 제대로 운영되는지 점검 평가하는데에도 검사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다. 이사회 등 지배구조의 적정성, 성과보상체계의 장기 경영실적 연동성 등이 점검 예시다.

금융당국의 이 같은 움직임에는 금융지주사 CEO 선임 문제를 꼬집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지적이 발단이 됐다.

최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대책’ 브리핑 이후 진행된 질의·응답에서 “금융회사 CEO 선임과 관련해 (여론의) 관심사가 금융지주사 CEO 선임 문제다”며 “CEO 스스로 (자신과) 가까운 분들로 CEO 선임권을 가진 이사회를 구성해 본인의 연임을 유리하게 짠다는 논란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유력한 승계 경쟁 후보가 없는 것도 논란”이라며 “만약 자기와 경쟁할 사람을 인사 조치해 대안이 없게 만들고, 자기 혼자 (연임을) 할 수밖에 없게 분위기를 조성한 게 사실이면 CEO의 중대한 책무를 안 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최 위원장은 11일 금융위원회 출입기자단 송년 간담회에서도 거듭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주인이 없기 때문”이라며 “대주주가 없다 보니 너무 현직이 자기가 계속할 수 있게 여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도 힘을 보탰다. 최 원장은 최근 임원회의에서 금융지주사들의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이 허술한 것 같다고 날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 위원장의 ‘작심한 듯한’ 발언에 금융권에서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이름을 올렸다.

김 회장은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이미 “조직에 기여할 일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며 공식적인 자리에서 연임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

윤 회장은 지난 달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연임을 확정짓기까지 험로를 거쳐야 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KB노조)와의 마찰이 가장 컸다. KB노조는 회장이 사외이사 선임에 참여하고 그 회장이 선임한 사외이사가 다시 회장을 선임하는 ‘회전문식 구조’라고 강하게 비판했고, 연임 과정에서 노조가 진행한 온라인 찬반 설문조사에 회사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주장도 계속해서 펼쳤다. KB노조는 윤 회장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 경찰은 KB금융 본사를 2차례 압수수색한 상태다.

금융사 수장의 연임에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금융사 사외이사들을 지적한 듯한 의견도 나왔다.

고동원 금융감독·검사제재 프로세스 혁신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사외이사가 업무를 얼마나 공정하게, 최고경영자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행하느냐가 관건”이라면서 “사외이사 후보군을 독립적 제3의 기관에서 운영하고 사외이사가 필요한 기관에 추천하는 방식으로 하면 보다 공정하고 독립성 있는 사외이사가 추천돼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혁신안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윤 회장의 경우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됐다는 뒷말을 내놨다. 윤 회장이 금융사 CEO 경영승계제도가 도마에 오르기 전 연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다만 3연임을 앞두고 있는 김 회장은 좌불안석에 앉게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구체적인 혁신안도 나왔고, 금융당국 수장들도 김 회장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지주는 내년 3월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새 CEO 선임절차에 들어갈 예정으로, CEO 추천과정 등을 면밀히 점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관계자는 “그간 CEO 선임 과정에서 ‘현직 프리미엄’이 너무 강조된 경우가 있었다”며 "금융당국에서는 이번을 계기로 미봉책에 그치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운영책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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