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허인혜] 가상화폐의 부작용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지자 갈팡질팡하던 정부가 급제동을 걸었다. 비트코인 선물거래의 여파로 더 이상 정의나 규제 없이는 세계적 흐름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다. 규제의 고삐를 잡지 못한 사이 가상화폐 무법지대에는 환치기와 채굴 다단계, 하드포크 사기극 등 각종 범죄행위도 판을 치는 중이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가상화폐의 일종인 비트코인 선물거래가 열리면서 시장이 요동쳤다./사진=한국스포츠경제DB

■비트코인 선물거래 흥행 성공…눈먼 개미들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는 10일(현지시간) 비트코인 선물 상품을 출시했다. 세계 최초의 가상화폐 선물거래가 열린 셈이다.

선물은 미래에 현재 시점에서 정한 가격으로 매매할 것을 약속하는 계약이다. 미래 가치가 떨어지리라고 예상하는 투자자가 많으면 가격이 내려가고, 반대면 가격이 오른다.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의 성장에 배팅했다. 장 초반 폭등세에 힘입어 서킷브레이크(거래 일시정지)가 두 차례나 발동됐다. 이날 비트코인 선물은 24% 오른 1만7,810달러를 기록했다. 하루 동안 약 5,0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이 체결됐다.

박녹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첫날 거래량은 한국시간 19시 기준 약 2,8000개로 나쁘지 않은 성과”로 평했다.

미국 자산운용업계는 ‘비트코인 펀드’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의 렉스 쉐어즈 LLC, 반Eck Associates Corp, 퍼스트 트러스트 어드바이저 LP 등 자산운용사들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안했다고 11일 보도했다.

비트코인의 성공적인 선물 데뷔로 가상화폐 2위인 이더리움도 처음으로 500달러 고지를 넘었다.

선물거래가 허용되지 않은 국내에서도 가상화폐 거래소가 코스닥의 개미들을 빼오고 있다.

하루 가상화폐 거래량이 2~3조에 이르면서 코스닥시장의 하루 거래량에 맞먹고 있다. 월별거래량도 가상화폐 시장 규모가 코스닥시장의 80%에 육박한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올해 1월 3,000억원 수준이던 월별 가상화폐 거래금액이 11월에는 그 182배가 넘는 56조2,944억원으로 급증했다. 그 사이 코스닥시장의 월별 거래대금은 4월 69조3,674억원에서 5월 55조2,119억원으로, 7월 61조5,834억원에서 8월 59조1,404억원으로 줄어드는 중이다.

가상화폐 시장은 투자 종목을 분석할 필요도 없고 유입장벽도 낮아 주로 단타 투자로 차익을 보는 개미들이 빠르게 유입되는 중이다.

금값도 가상화폐 열기로 녹아 내렸다. 비트코인 선물거래 직후인 11일 뉴욕상품거래소의 2월물 금값은 온스당 1,246.90달러로 4주째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환치기·하드포크 사기극·채굴 다단계…가상화폐 무법지대

포털 사이트 내 한 동호회에서 가상화폐 다단계 사기 피해가 공유되고 있다. 관련 카페 등에서 파생된 오픈 채팅방에서는 사기와 허위정보 유포가 기승을 부린다./사진=웹페이지 캡쳐

규제의 고삐가 풀린 사이 가상화폐 범죄가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비트코인의 국내외 시세차와 환전 수수료를 노린 불법 외환거래(환치기) 등 신종 범죄가 범람하면서 검찰도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환치기 사범들은 국외에서 환전소를 운영하면서 외국인들이 한국에 송금을 맡긴 화폐를 비트코인으로 바꾼다. 국내 연락책이 이 비트코인을 받아 원화로 바꾼 뒤 수수료와 시세차익을 떼고 의뢰인에게 전달하는 식이다. 인천지검 부천지청이 지난달 비트코인 환치기 사범 6명을 적발해 그중 2명을 구속기소한 것이 대표적이다.

가상화폐의 특성 중 하나인 ‘하드포크’를 이용해 시세차익을 노린 사기극까지 등장했다.

가상화폐의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가상화폐 수용자들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으면 해당 가상화폐가 분리되는데 이를 하드포크라 부른다. 비트코인과 비트코인캐시로 이해하면 쉽다. 이때 비트코인을 갖고 있는 만큼 비트코인 캐시가 덤으로 주어졌다. ‘덤’ ‘배당’의 특징 탓에 하드포크에 대한 소문이 돌면 관련 가상화폐의 가격이 뛴다.

최근 ‘비트코인 플래티넘’의 개발자를 자처해 허위글을 올린 고등학생 A군(18)이 온라인을 발칵 뒤집어 놨다. A군은 시세가 뛰면 공매도를 할 심산으로 파생 가상화폐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렸다고 개인 SNS를 통해 밝혔다. 그는 실제 시세차익으로 300만원 가량의 수익을 얻는 대신 집중 포화를 당하면서 서울 강남경찰서에 신변보호를 요청한 상태다.

'비트코인 플래티넘' 개발자를 자처해 사기극을 벌인 고등학생 A군(18)은 "경찰서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고 밝혔다./사진=SNS 캡쳐

채굴 다단계 업체도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가상화폐 관련 온라인 게시판에는 “부모님이 ○○비트에 투자했는데 회사의 대표가 얼마 전 구속됐다” “채굴 피라미드에 속아 투자금을 넣었는데 회수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비트’ ‘코인’ ‘이더’ 등 가상화폐와 관련된 이름으로 악성 금융 다단계 단체를 설립한다. 그 뒤 가상화폐 투자자 포털 모임 등에서 “비트코인에 대신 투자해주겠다” “채굴기를 나누어 사는 것으로 비트코인 등락과 관련 없이 고수익을 보장한다” 등의 말로 피해자들을 현혹해 돈을 모은 뒤 신규 피해자의 돈을 기존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폰지 사기’를 치는 등 유사수신행위를 일삼는다.

지난달 7일 3,916명을 상대로 387억원 상당의 투자금을 모은 비트코인 투자대행 빙자 다단계 사기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가수 박정운 씨가 2,000억원대의 가상화폐 투자 사기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았다.

가상화폐는 아직까지 금융상품이나 화폐, 재화 등 어떤 것으로도 정의되지 않은 만큼, 채굴이나 가상화폐 대리 투자를 내걸고 돈을 모은다면 만약 수익을 돌려주더라도 사기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 더이상 두고 볼수 없는 정부, 유사수신행위 강력 규제

비트코인 선물거래와 국내 투기 광풍이 겹치면서 우리 정부도 부랴부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더 이상의 미루기는 신중론이 아니라 ‘강 건너 불구경’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다.

1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는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가상화폐 긴급회의가 개최돼 가상화폐 관련 범죄를 검경차원에서 단속하기로 합의했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오른쪽 세번째)이 1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상화폐 관련한 회의를 주재하고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다단계, 유사수신 방식의 가상통화 투자금 모집, 기망에 의한 가상통화 판매행위, 가상통화를 이용한 마약 등 불법거래, 가상통화를 통한 범죄수익은닉 등 가상통화 관련 범죄가 주요 대상이다. 외환거래법 위반 거래는 오는 14일까지 실태조사를 통해 합동단속한다.

가상통화거래소 개인정보 유출사건 등에 대한 조사로 거래구조를 확인키로 했다. 주요 거래소에 대해서는 약관에 대한 직권조사도 감행한다.

가상화폐 거래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지만, 6가지 조항을 충족한 경우 조건부 허용이 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금융위원회의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개정안 시안에 따르면 ①예치금의 별도 예치 ②설명의무 이행 ③이용자 실명 확인 ④자금세탁방지 시스템 구축 ⑤암호키 분산 보관 등 보호 장치 마련 ⑥가상통화의 매수매도 주문 가격·주문량 공개 제시의 6가지 조항이 만족될 경우 가상통화 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다.

가상통화 취급업자가 화폐공개(ICO), 신용공여, 시세조종, 방문판매법상 방문판매·다단계판매·전화권유판매·표시·광고 금융업 유사상호 사용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하는 것도 불허한다.

이용자 본인이 확인되지 않은 자와 미성년자, 외국인인 계좌개설과 거래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금융기관은 가상통화를 보유하거나 매입, 담보취득, 지분투자하는 어떤 행위도 금지된다.

정부는 오는 15일 오후 법무부 과천청사에서 ‘정부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TF)’회의를 열고 가상통화 거래 규제방안을 확정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가상통화거래 또는 가상통화를 가장한 거래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영업행위’가 유사수신행위의 정의에 포함될 예정이다.

반면 가상통화 업계는 가상화폐가 유사수신으로 관리된다는 데에 부정적인 답을 내놨다.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공동대표는 “6가지 조항은 자정안에 포함된 사안으로 수용할 수 있지만 ‘유사수신’이라는 대전제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허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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