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패딩’을 입은 사람과 입지 않은 사람, 2017년 우리가 사는 이곳의 겨울 풍경은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뉜다.

국민 10명 중 4명이 갖고 있다는 겨울 외투 롱패딩, 이쯤 되면 열풍을 넘어 광풍이라고 하겠다. 프로농구가 출범하기 이전 농구대잔치라는 이름으로 경기가 열리던 시기, 농구선수들의 전유물이었던 ‘벤치파카’가 이젠 1020 세대에게 없어서는 안 될 패션 아이템으로 변했다.

입는 이들에게는 ‘굿즈’겠지만 사줘야 하는 입장에서는 ‘등골브레이커’의 재현일 수밖에 없는 상황. 5~6년 전 다운패딩 열풍으로 등골이 휘었던 부모들에게 롱패딩 유행은 반가울리 만무하다. 2명 이상의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그야말로 악몽의 재현일지도 모를 일. “중학생 딸아이가 30만원대 롱패딩을 사달라고 하는데 학원비와 과외비로 생활비도 빠듯한데 롱패딩을 사줘야 할지 고민 되네요”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학부모의 글에 맘이 짠해 온다.

다운패딩 유행으로 번진 계급도가 이번에는 롱패딩으로 바뀌면서 가격대와 브랜드로 찌질이, 양아치, 대장에 이르는 서열이 매겨진다고 한다. 얼마짜리 롱패딩을 입고 있느냐에 따라 루저와 위너가 결정되는 셈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한 설문조사 결과 ‘롱패딩 열풍’등 유행으로 인한 소비 붐에 대해서 1020 세대 응답자 중 절반이 넘는 52.9%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입고 있으니 유행을 따르기는 하는데 이런 현상이 딱히 반갑지는 않다는 거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옛날이야기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싶지만 내 어린 시절 역시 갖고 싶은 브랜드의 옷이 있었다. 하지만 집안 형편상 엄마 눈치만 봐야했다. “000 사주세요”란 말은 입안에서 맴돌다가 결국엔 목 넘김으로 넘겨버렸다. 그래야만 했다. 부모님이 등골브레이커가 되는 모습은 어린 내게도 부담스러움과 죄송스러움을 동반하는 일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젠 가정형편과 부모님을 걱정하기보다 왕따가 될까봐, 루저가 될까봐 소유해야만 한다. 유행 권하는 시대가 아니라 유행 강요하는 시대에 부모의 설득이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동질감을 느끼기 위해서란 말은 그럴싸한 포장에 불과하다. 물질에 가치가 함몰되어 버렸다.

비싼 롱패딩이 아니라면 가성비 갑에 한정판매로 희소성까지 갖춘 ‘평창 롱패딩’을 사기 위해 백화점 앞에서 노숙도 불사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곳. 2017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기현상이다. 얼마 전 평창 롱패딩에 이어 ‘평창 스니커즈’가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며 완판 대열에 합류 할 예정이란다. 이젠 모두가 똑같은 롱패딩에 똑같은 신발을 신고 다니게 될까? ‘평창 굿즈’는 신바람 났지만 평창 마케팅이 동계올림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마치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 ‘Passion. Connected’(하나 된 열정) 평창동계 올림픽 슬로건은 평창 롱패딩을 시작으로 평창 굿즈로 대동단결된 열정이 아닐까.

굳이 유행아이템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들풀처럼 번지고 있는 ‘롱패딩 신드롬’에 ‘개성’이란 이름은 루저로 전락해버린 듯하다. 이 겨울 개성이 사라진 거리풍경이 못내 아쉽다. 사진=연합뉴스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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