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허인혜]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를 조건부 허가하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이를 두고 전문가들조차 입장과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거시경제에 위협을 주지 않는 선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거래를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과 정부의 결정을 거부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중이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상화폐 관련한 회의를 주재해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13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가상화폐 긴급회의를 열고 일부안을 도출한 데 이어 15일 법무부 과천청사에서 ‘정부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개최한다.

이날 회의에서는 가상화폐 거래는 조건부 허용으로 일단 매듭이 지어졌다. 15일에도 큰 흐름은 유지된 채 세부 항목들이 일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 거래소는 △예치금의 별도 예치 △설명의무 이행 △이용자 실명 확인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구축 △암호키 분산 보관 등 보호 장치 마련 △가상통화의 매수매도 주문 가격·주문량 공개 제시의 6가지 조항을 만족해야 거래소를 운용할 수 있다.

다만 거래 주체에 따라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항목도 명시됐다. 이용자 본인이 확인되지 않은 자와 미성년자, 외국인인 계좌개설과 거래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금융기관은 가상통화를 보유하거나 매입, 담보취득, 지분투자하는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다.

거래소의 의무에 대해서는 금융당국과 업계, 전문가간의 입장차가 크지 않다. 하지만 거래주체 대상에 대한 규제를 두고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되리라는 우려와 적절한 보호라는 의견이 충돌한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가상화폐의 일종인)이더리움의 개발자 비탈릭 부테린은 19세에 가상화폐를 만들었다”며 “현 10대와 20대는 ‘디지털 원주민’으로 볼 수 있는데 이전 세대가 현 세대의 참여를 허가하고 불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금융회사의 거래나 개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도 관치금융의 전형이라고 본다”며 “금융사들은 거시건전성이 훼손되지 않는 한에서 자유롭게 어떤 투자나 거래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공동대표는 13일 오후 ‘2018 핀테크를 내다보다’ 세미나에서 규제안이 신규 거래소의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사진=허인혜 기자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공동대표는 ‘2018 핀테크를 내다보다’ 세미나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은행의 계좌 폐쇄조치가 신규 거래소의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며 “내년 1월 1일부터 본인확인이 가능한 가상화폐 계좌만 사용하도록 한창 테스트를 거치던 중이었는데 전면 중단될 위기”라고 호소했다.

금융당국의 권한인 금융 규제가 여론과 업계에 휘둘리면서 희석되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규제안이 지나치다는 반발도 나오지만 당초 당국이 고려했던 규제안보다 훨씬 가벼운 결론이 나왔다”며 “이마저도 부작용이 양산된 상황을 직접 보여주지 못했다면 여론과 업계가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했다.

이어 “‘혁신의 성역화’에 기대어 규제는 곧 혁신을 막는 행위로 칭하고 혁신을 막는 모든 행위를 악이라고 한다면, 사회의 안정을 최우선가치로 도모하는 행정부의 존속 이유가 없다”며 “규제당국의 규제안에 대해 소송이나 이의 제기가 아니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은 명백한 월권”이라고 지적했다.

가상화폐 거래가 유사수신에 포함될 지에 대한 유권해석은 이날 긴급회의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가상화폐 거래의 유사수신 여부는 곧 거래가 위법이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척도가 돼 업계 안팎의 관심이 높았다.

오 교수는 “유사수신에 대해서는 정부 내에서도 갑론을박이 치열하다”며 “가상화폐 거래가 유사수신이라는 해석은 옳지 않다고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 대표는 “‘유사수신’이라는 대전제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앞줄 좌측부터 네번째)는 현 청년층이 디지털 원주민이라는 점에서 가상화폐 거래를 청소년에게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달 22일 열린 ‘가상화폐와 정책과제’ 토론회 모습./사진=허인혜 기자

홍 교수는 “규제기관, 전문가, 업계의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의지에서 정책의 방향성이 어떻게 가야 한다는 발언을 하기에 조심스럽다”고 말을 아꼈다.

한편 가상화폐의 호칭을 두고도 의견차이가 팽팽했다. 가상화폐를 “암호화폐로 부르자”는 입장과 “화폐라는 말조차 시장 교란의 여지가 있다”는 반박이 치열하다.

김 대표는 “암호화폐는 ‘크립토커런시(Crypto Currency)’의 원 개념을 가장 잘 번역한 단어”라며 “가상화폐나 통화라는 말은 발행주체를 염두에 두지만 암호화폐는 채굴과 분산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화폐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에 암호화폐, 가상화폐보다 차라리 ‘전자 물건’으로 부르는 게 합당하다”며 “화폐라는 말에는 법정통화라는 위력이 있어 시장교란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허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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