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지호]문재인 정부의 금융권에 대한 ‘관치’ 논란이 거세지면서 금융사의 대응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강하게 반발하면서 정부와 금융당국을 비판하는 쪽이 있는가하면, 눈치를 보면서 알아서 기는 편을 택하는 곳도 있다.

18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윤종남 하나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은 여러 매체를 통해 “하나금융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곳이 아니다”라며 “지나치면 과거의 관치금융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키울 수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부터 수차례에 걸쳐 금융지주 회장이 ‘셀프 연임’한다며 문제 삼아왔다. 이어 최흥식 금융감독원장도 최근 “내·외부 회장 후보군을 구성하는 데 경영진이 과도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고 최고경영자(CEO) 승계 프로그램도 형식적일 뿐”이라며 비판했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금감원은 내년 1월 중 주요 금융지주 경영권 승계 절차와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 구성 및 운영 등에 대한 검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이미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이 연임에 성공한 걸 감안하면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회추위에 포함된 걸 지칭한다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고 윤 의장이 크게 반발한 것이다.

다만, 서울남부지검 검사장 출신인 윤 의장을 제외하고 다른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NH농협금융지주 등은 ‘괘씸죄’에 걸릴까봐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은 최근 금융지주 지배구조 검사 후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에 대한 ‘경영유의’를 통보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공공기관도 아닌 금융사 주주가 알아서 결정할 일에 금융당국이 개입한다는 건 이해가 잘 안 간다”면서 “‘관치’라는 비판에도 금융당국 발언 강도가 더욱 세지고 있어 금융사가 어떻게 처신할지 더욱 어렵다. 그냥 눈치만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관치’라고 하기는 다소 애매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자기자본 1위인 미래에셋대우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로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인가가 보류된 상태다. 미래에셋대우는 발행어음 사업 인가 통보를 이달 14일에 받은 뒤 15일 7,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공시했다.

유상증자가 성공하면 종합투자계좌(IMA)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자기자본 8조원을 넘어서게 된다. 미래에셋 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발행어음을 뛰어넘어 IMA로 직행하려는 박현주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오너 기업 특성상 이런 과감한 시도는 박 회장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다.

주식을 단 한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으로 삼성증권 발행어음 인가가 보류된 데다, 자기자본 1위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 발행어음 인가마저 무기한 연기되면서 정부와 금융당국에 대한 금융투자업계 불만은 커지고 있다. KB증권과 NH투자증권 역시 아직 발행어음 인가를 받지 못한 상태다.

발행어음은 초대형 투자은행(IB)의 핵심 업무로 금융당국은 발행어음 인가 없이는 IMA 사업도 진출할 수 없다고 못을 박으면서 금융투자업계와 기싸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가뜩이나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대기업 그룹에 속한 회원사 출신들이 그룹 후원을 받아 계속 회장에 선임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가 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발언으로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연임 포기를 선언한 뒤여서 파장은 더 크다.

정회동 전 KB투자증권 사장과 권용원 키움증권 사장, 황성호 전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사장, 손복조 토러스투자증권 회장 등이 차기 금투협 회장 선거 출마의사를 밝혔지만 황 회장에 비해서는 무게감이나 ‘이름값’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금융업이 라이선스 산업이라고는 하지만,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라면서 “글로벌 경쟁을 해야하는 금융사가 구시대적 관치 논란에 휘말리는 것 자체가 안타깝다”고 전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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