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허인혜] 정부가 가상화폐 신규거래를 사실상 금지하는 수준의 메스를 가하면서 규제 강도를 놓고 갑론을박으로 혼돈을 겪고 있다. 반면교사 삼을 선진국에서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양한 규제 방안을 운영 중이다. 가상화폐에 화폐공개 금지와 거래소 인가제, 과세로 투기 광풍에 열을 식히는가 하면 가상화폐를 제도권 거래소에 출시하고 규제의 고리를 풀어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실험 중인 국가도 있다.

사진=한국스포츠경제DB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중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를 시행한다. 가상화폐 거래 신규계좌 발급은 지난 1일부로 중단됐다. 은행계좌와의 연동 작업은 오는 20일 안팎으로 마친다는 계획이다.

해외에서는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를 대대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가상계좌’라는 특수성이 있어 실명제를 재차 강조한 것일 뿐, 가상화폐 거래에도 기본적으로 제도권 금융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에 실명제는 이뤄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홍기훈 홍익대학교 교수는 “가상계좌라고 해서 실명제를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라며 “다만 실명 거래를 강조하는 경고신호라고 해석하는 게 합당하며, 해외에서도 대부분 금융실명제를 시행하고 있어 기본적으로는 실명거래”라고 설명했다.

화폐공개(ICO)도 뜨거운 감자다.

미국은 지난해 7월 증권법으로 ICO를 규제했다. 싱가포르(8월) 중국(9월) 홍콩(9월)에 이어 한국도 가상화폐 첫 규제로 ICO 금지 카드부터 꺼냈다. ICO란 기업공개(IPO)와 유사한 방식으로 가상통화 등으로 가상통화에 대한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다. ICO가 허용되면 소규모 가상화폐 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하기는 수월해지지만 투기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홍 교수는 “홍콩과 일본, 러시아, 싱가폴의 금융당국 관계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은 바 모두 가상화폐의 변동성을 우려하며 ICO 불가 입장을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스위스나 에스토니아 등은 ICO규제가 다소 느슨한 국가로 꼽힌다. 스위스는 금융 신기술인 가상화폐를 적극 육성하면서 금융국가로서의 위상을 다시 세운다는 계획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는 국내외 시선이 일치하지만 ICO는 다르다”며 “ICO금지가 벤처기업들의 가상화폐 시장 진출에 진입장벽을 세운다”고 지적했다.

해킹, 파산 등으로 국내에서도 가상화폐 거래소 인가 논의가 활발하다. 우리 당국은 아직까지 거래소 인가제를 도입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거래소 인가는 가상화폐 거래소를 제도권으로 인정하는 것과 같은 사인을 줄 수 있어서다.

일본은 가상화폐 거래소 파산을 겪으면서 인가제를 도입했다. 일본에서 거래소를 세울 때는 ▲다운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서버 용량 ▲해킹 방지를 위한 보안 ▲범죄 수익 방지를 위한 고객 신원 확인 ▲자금세탁을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 등을 갖춰야 한다.

가상화폐 과세는 소득세는 걷되 부가가치세를 받지 않는 안이 국제적 흐름이다. 미국과 일본, 영국, 호주은 소득·법인세와 양도소득세는 부과하되 부가가치세는 매기지 않는다.

이들 국가는 가상화폐 거래에 따른 차익에는 과세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미국 국세청은 2014년부터 가상화폐를 자본자산으로 인정해 매매차익의 20%까지를 자본이득세(양도소득세)로 걷는다. 일본도 같은 해부터 매매차익에 따른 이득에는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영국과 호주, 독일도 양도소득세를 받는다.

가상화폐 부가가치세는 매기지 않는 국가가 다수다. 미국과 영국, 일본은 처음부터 이중과세 논란을 인정하고 부가가치세를 제외했다. 당초 부가가치세를 걷기로 했던 독일과 호주도 부과하지 않는 방향으로 기조를 바꿨다.

세계 어느 국가도 가상화폐를 제도권 금융으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거래 자체를 인정하거나 아예 규제 대상으로 삼지 않는 양분화를 걷고 있다.

가상화폐 정의에는 미국이 가장 적극적이다. 미국은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데뷔시키는가 하면 자산으로 인정해 세금도 매긴다.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는 지난달 10일(현지시간) 비트코인 선물 상품을 출시했다. 미국 자산운용업계는 ‘비트코인 펀드’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의 렉스 쉐어즈 LLC, 반Eck Associates Corp, 퍼스트 트러스트 어드바이저 LP 등 자산운용사들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한국행을 준비하던 해외 거래소들은 위기에 봉착했다. 한국이 규제 사각지대이던 시기 장밋빛 진출을 꿈꿨지만, 지난해 말부터 연달아 강력규제가 등장하며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허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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