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서연] 연일 불어닥치는 가상화폐 광풍에 ‘애먼’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사정권에 들게 됐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이 6개 은행(농협·기업·신한·국민·우리·산업)의 가상화폐 거래소 계좌들에 대해 특별검사에 들어가면서 강도 높은 규제를 예고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나게 되면 가상계좌 서비스가 중단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은행들은 당국의 가상화폐 규제 관련 뭇매를 온전히 은행권이 맞았다는 입장이다. 은행들은 거래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의 칼날이 거래소가 아닌 이들을 향해있는 것이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계좌를 터준 것’일 뿐인데 초점이 엉뚱한 곳에 맞춰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상계좌는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은행에 개설한 법인계좌의 자(子) 계좌들이다. 1개의 법인계좌 아래에 수많은 가상계좌가 있다. 이 계좌를 통해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투자자가 돈을 넣고 뺀다. 6개 은행에 개설된 거래소 관련 계좌는 지난 달 기준으로 111개, 예치 잔액은 2조670억원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달 12일 기준 ‘암호화폐 취급업자 관련 은행계좌수 및 예치금액’은 농협은행이 잔액 7,865억원(2개 계좌)으로 가장 많고, 기업은행이 4,920억원(30개 계좌), 국민은행이 3,879억원(18개 계좌)으로 뒤를 잇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가상통화 관련 은행권 현장점검 배경설명과 투기 위험성 경고' 브리핑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가상화폐 규제와 관련해 “가상화폐 거래에 사용되는 가상계좌를 제공하는 6개 은행에 대한 점검 결과 불법행위가 나오면 가상계좌 서비스 제공 중단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은행이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제대로 하는지 지켜볼 것”이라며 “(문제가 드러난) 일부 은행은 가상계좌 서비스에 대한 영업을 중단시켜 (가상화폐 거래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FIU와 금감원은 8일부터 오는 11일까지 6개 은행을 검사한다.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한 자금세탁방지 의무 이행 실태와 실명확인시스템 운영 현황이 점검 대상이다. FIU는 가상화폐를 ‘고위험 거래’로 규정, 은행들이 40개 이상의 체크리스트 의무를 어겼는지를 점검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지난주 금요일 40여개의 체크리스트를 받았다”며 “이에 대해 작성한 답변을 바탕으로 어제부터 현장점검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체크리스트에는 가상화폐 거래업자와 일반 법인을 구별하는 부분을 유심히 보라는 내용이 담겼다”면서 “이름만 들어도 아는 가상화폐 계좌는 의미가 없으니 좀 더 깐깐히 들여다 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이례적인 규제에 은행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은행을 옥죄는 압박이 생각보다 전방위적으로, 강도 높게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A은행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은행에는 자금세탁방지법이 있어서 (가상) 계좌 만들 때 감안해서 만들어 줬다”라면서 “이번 점검에서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가상화폐가 왜 활성화됐는지를 생각하면 은행으로 불똥이 튀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는데 제도적으로 보완할 부분이 있는 것은 맞지만 (금융당국이) 핀셋으로 여기(은행들)를 집는 것이 맞나 싶다”고 꼬집었다.

B은행 관계자도 “잣대를 은행에만 들이대니 은행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면서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업체들을 막지 못하고 애매한 은행들이 가상계좌 제공했다는 이유로 두들겨 맞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이 수수료 이득을 챙기기 위한 것으로 매도되고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C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가상계좌 거래에 따른 수수료 수입 등을 벌어들이는 구조인데 은행 입장에서는 수수료가 그렇게 큰 포션(부분)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금융권에서는 은행들이 가상계좌 운영에 따른 수수료 수입을 수십억원대로 추산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 가상계좌 개설·운영에서 불법이 드러나면 폐쇄까지 언급한 상황이다. 가상계좌 서비스 중단 단계까지 갔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상황에 A은행 관계자는 “돈을 즉시 넣었다가 팔면 즉시 입금되는 지금의 가상계좌 거래 루트는 투자자로서 큰 매력이 있다”며 “오르내림폭도 제한이 없는데 가상계좌 대신 실계좌로 거래를 해야 한다면 이전보다 거래가 원활해지지 않을 것이고 거래가 불편하면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투자자의 거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열을 막는 데는 제일 빠른 조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 이달 중순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가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사실상 지난해 말부터 중단된 가상계좌 신규발급이 재개된다. 실명 전환은 이달 20일 이후 각 은행과 거래소의 전산시스템 개발에 맞춰 순차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실명 전환 이후 기존의 가상계좌는 출금만 가능하고 주민등록번호 등이 확인되는 경우만 입·출금이 가능해진다.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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