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재웅] #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김 대리(남, 31)는 지난 밤 새벽 종로에서 술모임을 끝내고 추위에 떨며 집까지 걸어갈 수 밖에 없었다. 1시간 동안 택시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빈 차들은 좀처럼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예약등을 켠 택시들은 다가와 행선지를 듣고는 도망치듯 떠나버렸다.

# 박 모씨(남, 37)는 저녁 약속이 있으면 일부러 차를 가지고 간다.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안전한데다가 비용도 비슷해서다. 주차요금 정도는 추위에 몇시간 떠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 최 모씨(남, 30)는 출퇴근 시간 승차거부를 일삼는 택시에 대한 반감으로 풀러스와 럭시 같은 공유 차량 서비스 이용을 늘렸다. 가끔 안전에 대한 걱정이 들 때가 있지만, 공유 차량 서비스 범죄가 아직 0건이라는 것을 알고 믿음을 키우고 있다. 빨리 사용자가 늘어서 더 빠르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중이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겨울, 서울 을지로 인근에서 한 시민은 택시를 멈춰 세우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택시는 목적지를 듣고 도망쳐버렸다./한스경제

택시 승차거부가 심각해지면서 서민들이 겨울 밤 추위와 싸우며 귀가전쟁을 벌이고 있다. 콜버스, 풀러스 등 공유 차량 서비스가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정부 규제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 따르면 승차거부로 적발된 택시는 작년 10월 중순까지 5,000여건에 달했다. 실제 시민들이 느끼는 승차거부는 훨씬 심각하다. 서울시가 강력한 단속에 돌입하면서 2014년 9,477건에서 크게 줄어들긴 했지만, 단속을 피하는 ‘꼼수’도 훨씬 지능화됐다.

‘빈차’ 표시등을 끄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심야에 택시들은 승객을 태우지 않은 상태라도 등을 아예 끄고 다니거나, ‘예약’을 켜고 다닌다. 승객을 만나면 창문만 살짝 열어 목적지를 확인하고 운행 여부를 결정한다. 불법이지만 단속이 쉽지 않다.

예약등을 켜고 있던 택시는 한참 동안 택시를 기다리던 승객에 접근해 창문만 살짝 열었다. '마포에 간다'는 답변에 택시는 비로소 문을 열고 승객을 받은 후 상태등을 껐다./한스경제

빈차 등을 켜고 있더라도 길에서 먼 곳으로만 달리면서 일부러 승객을 태우지 않는다. 신호대기 등으로 멈춰있을 때에도 문을 잠그고 있어서 이용을 불가능하게 했다.

카카오택시(현 카카오T)는 합법적인 승차거부 도구로 전락했다. 목적지를 확인하고 마음에 드는 승객의 콜만 승락하는 방식이다.

추가 요금 지불도 의미가 없다. 모범택시 조차 심야 시간에는 일반 택시와 같은 승차거부 행위를 하는 일이 잦다. 서울시는 목적지 정보를 알수 없는 대신 심야 2,000원의 콜 요금을 추가로 정산하는 애플리케이션 ‘지브로’를 개발했지만, 택시 기사들이 사용하지 않아 쓸모가 없게 됐다.

야근이나 술자리 등으로 심야에 이동할 수 밖에 없는 시민들은 택시를 잡기 위해 한시간씩 추위에 떨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부 시민들은 택시를 잡으려다가 뺑소니 사고를 당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서울 종로에서 근무하는 한 시민은 “빈차든 카카오택시든 간에, 상암이나 강남 등 새로 승객을 태우기 쉬운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면 태우려고 하지 않는다”며 “밤에 택시를 잡다 지쳐 집으로 몇시간을 걸어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시민은 “승차거부를 하는 택시를 타려고 하다가 수십미터를 끌려가서 크게 다친 적이 있다”며 “목격자까지 확보하고 뺑소니 신고를 했지만, 경찰서에서는 오히려 왜 그랬냐고 윽박을 지르며 신고 취하를 종용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택시가 승차거부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야간에는 모범택시도 잡을 수 없다.

승차거부로 2번 적발됐다는 한 택시 기사는 “입맛에 맞는 손님을 태우면 금방 하루 일을 마칠 수 있다”며 “운이 없게 적발된 것뿐, 카카오택시를 이용하는 등 꼼수만 잘써도 승차거부는 쉬운 일이다”고 말했다.

승차거부를 하지 않는다는 한 택시기사는 “승차거부를 안해도 천천히 돌면서 승객을 태우면 충분히 괜찮은 수익을 낼 수 있다”며 “단 사납금을 내야하는 회사 택시는 부담감 때문에 승차거부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택시 기사들은 월급제를 시행하고 인센티브를 늘리는 방법 등으로 승차거부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개인택시도 승차거부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지브로 서비스 실패 등은 택시기사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승차거부가 심각해지자 차량공유 서비스가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높은 규제벽에 막혀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반차량은 운송료를 받지 못하게 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이 바로 그것이다. 일부 사용자는 막대한 벌금을 과징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글로벌 공유차량 서비스 업체인 우버는 사실상 업종을 변경했다. 럭시와 풀러스 등 카풀 서비스가 예외조항에 포함되면서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서울시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거나 일부 의원이 '카풀 금지법'을 새로 제정하려 시도하는 등 사업 확대에 어려움을 겪는 모양새다.

심야 콜버스는 아직 서비스 지역을 강남에 국한하고 있다. 택시 업계 견제가 심해서 사업 방향을 버스 대절로 변경할 것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풀러스 관계자는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주변 정리가 필요한 만큼 드라이버를 크게 늘리지 않고 있다"며 "드라이버를 철저하게 검증하는 만큼 사용 안전성은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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