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부천시, 이행보증금 몰취 힘들 것…일부 삭감 예상”

[한스경제 변동진] 부천시 상동 영상복합단지 백화점 건립 사업 무산 책임을 놓고 신세계백화점과 부천시가 100억 원 이상의 거액이 걸린 법정 공방을 시작했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한 가운데 법조계는 “시가 이행보증금을 몰취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유사한 재판에서 이같은 행위는 과하다는 판결이 내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천시민 및 일부 상인단체가 신세계백화점 부천점 사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연합뉴스

2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12월 27일 부천시를 상대로 “이행보증금 115억 원을 돌려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부천시는 소송 제기 한 달 전인 11월 “신세계의 귀책사유로 사업이 백지화됐다”며 서울보증증권에 예치돼 있던 협약이행보증금 115억 원을 받아갔다.

부천시는 지난 2015년 10월 영상문화단지 복합개발 우선 협상자로 신세계를 선정했다. 신세계 측은 7만6034㎡ 부지에 백화점·대형마트를 포함한 복합쇼핑몰을 지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예정지 근처의 상인 단체들과 인천광역시 등 지자체들이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며 반발했다. 이에 개발 규모를 3만7,000㎡로 축소해 백화점만 짓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경 3㎞ 안 인천 전통시장 상인들과 인천시가 반발해 ‘지자체 갈등’까지 번졌다. 실제 인천시는 2016년 연말부터 민관대책협의회를 꾸리고 신세계백화점 부천점 건립의 백지화를 요구했다. 행정구역상 백화점이 들어서는 곳은 부천시이지만 가까운 인천 부평구와 계양구 상권붕괴 및 교통 악화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신세계는 지역 갈등까지 벌어지는 상황에서 사업을 강행할 수 없다면서 토지 계약 일정을 5차례 연기했고, 부천시는 협약 파기를 통지했다.

부천시 관계자는 “인접 지역의 반대가 있다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업을 진행하지 않은 것은 신세계다”면서 “우선 토지계약을 맺은 이후 세부적인 지자체 갈등 문제 등을 풀면 되지 않냐고 설득했다. 그런데 5번이나 연기한 신세계다. 의지가 없는 사업자를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지 않냐”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당시 시·구민과 일부 상인들은 백화점만 건립하는 것에 찬성했다”면서 “하지만 지자체 갈등 심화로 사실상 사업 개시가 어려웠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업 무산의 책임을 우리에게만 묻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정용진 부회장도 스타필드 고양 개점 때 '(지자체에서) 기다리라고 하면 기다리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상황에서 계약을 하지 않았다고 공문을 받은 것이다”고 맞섰다.  

이어 그는 “유통법상 문제가 없더라고 지자체 간 갈등을 무시하고 사업을 강행할 수는 없지 않나”라며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줘야 가능했던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법조계는 부천시가 받은 이행보증금(115억 원) 가운데 일부 삭감될 수 있다고 했다. 최근 판례를 보면 ‘한 쪽이 전액을 취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종흔 법무법인 신우 대표변호사는 “정확한 전망을 하려면 협의한 문서를 봐야 알겠지만, 현재 상황에선 부천시가 받은 이행보증금 중 일부가 삭감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한화와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 등 유사한 사건에서 이같은 판결이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6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지난 11일 한화케미칼이 산업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를 상대로 “대우조선해양 인수 해지에 따른 이행보증금을 돌려달라”며 낸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산은 등이 1260억여 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화그룹은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면서 산은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 9,639만 주를 6조3,002억 원에 사들이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이행보증금으로 인수가의 5%에 해당하는 3,150억 원을 지급했다.

한화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당초 계획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지분 분할 매입 등 인수 조건 변경을 요청했다. 산은은 MOU 내용과 다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행보증금을 전액 몰취했다.

당시 1, 2심은 산은의 손을 들었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7월 “한화가 막대한 이행보증금을 지급하고도 확인 실사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이행보증금 전액을 몰취하는 건 부당하게 과다하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법원은 지난해 10월 12일 금융위기에 따라 2013년 12월 무산된 청라국제업무타운 사업과 관련해 민간건설사들이 LH에 제기한 상고심에서 협약이행보증금 3100억 원 중 75%를 감한 금액만 건설사들이 부담하도록 판결한 바 있다.

변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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