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 아내 순이 프레빈/사진=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 이성봉] 동거 중인 여인의 딸에게 마음을 뺏긴 남자가 있다. 바로 할리우드 거장 영화감독 우디 앨런이다. 10년 넘게 사실혼 관계였던 배우 미아 패로를 뒤로하고 패로가 입양한 딸 순이와 결혼했다. 1992년 패로의 폭로로 밝혀진 이른바 ‘앨런-순이 스캔들’은 대중을 상대하는 영화감독에겐 치명적일 수 있었지만, 앨런의 영화는 승승장구했다.

앨런은 순이와의 관계가 세상에 드러나면서 미아 패로와 법정 싸움을 벌이고, 파파라치의 추격을 받고, 세간의 가십거리가 됐다. 같은 시기 개봉한 ‘부부 일기’(1992)는 앨런과 패로의 파국을 암시하는 듯 보였다. 특히 이 영화에서 앨런은 교수로 등장해 젊은 여대생에게 끌리는데, 사람들은 이 부분을 순이와의 관계에 빗댔다. 과거도 소환됐다. ‘맨해튼’에서 앨런은 고등학생과 연인인 40대 남자인데, 사람들은 이 관계가 혹시 미래에 대한 예언이자 롤리타 콤플렉스의 초기 증상은 아닌지 의심했다.

우디 앨런 감독/사진=영화 '블루 재스민' 스틸컷

그럼에도  ‘브로드웨이를 쏴라’(1994)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1996) 등 놀라운 작품을 연이어 발표했다. 앨런의 사생활은 비난받을 지라도 작품은 건드리기 쉽지 않았다. 영화 ‘매치 포인트’(2005) ‘스쿠프’(2006) ‘카산드라 드림’(2007)은 슬럼프에 빠진 것 아니냐는 의심에 정면을 맞서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후 내놓은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2008), ‘미드나잇 인 파리’(2011), ‘로마 위드 러브’(2012) 등이 호평 받으면서 한국에서도 뒤늦게 앨런의 영화들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 ‘블루 재스민‘(2013)은 전성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렸다. 앨런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평생 공로상을 받았고, 주연배우 케이트 블란쳇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스칼렛 요한슨, 페수넬로페 크루스, 엠마 스톤, 크리스틴 스튜어트 등은 앨런의 영화를 통해 새로운 캐릭터를 만났다. 한국에서 이달 개봉한 ’원더 휠‘(2017)에선 케이트 윈슬렛을 통해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명성을 이어가는 듯했다.

영화의 성공으로 '앨런-순이 스캔들'은 15년이 넘는 세월동안 감독의 예술성과 분리되어 읽혔다. 그런데 앨런에게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위기’란 말이 적합할지 모르겠다. 이번엔 스캔들이 아닌 범죄다. 앨런이 양녀 딜런 패로(32)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다시 불거졌기 때문.

딜런 패로/사진=CBS 방송화면

딜런 패로는 2014년 ‘뉴욕타임스’ 블로그에 공개서한을 보냈다. 서한에 따르면, 어린 시절 딜런 패로는 앨런에게 반복적인 성적 학대를 당했다. 딜런 패로는 성추행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해 충격을 안겼다. 당시 사법당국은 딜런 패로의 주장을 조사했지만,  앨런은 기소되지 않았다.

딜런 패로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의 연예전문미디어 E뉴스에 출연해 "어린 시절 우디 앨런에게 성폭행 당한 것은 사실이다"고 재주장했다. 이는 '타임즈 업'(Time's up·성범죄와 성차별을 반대하는 여성운동) 열풍으로 재점화됐다. 현재 앨런은 딜런 패로를 성희롱한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이젠 배우들까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미라 소비노, 그레타 거윅, 나탈리 포트만 등 미국 여배우들 뿐만 아니라 영국 배우 콜린 퍼스까지 앨런과 더이상 작업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잇달아 내놓았다. 또 차기작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제작 무산 위기에 처했다. 영화에 출연할 예정이었던 레베카 홀과 티모시 샬라메는 "앨런의 신작에 출연하기로 한 것을 후회한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혔으며, 추가 캐스팅 역시 난항을 겪고 있다.

순이와 결혼으로 비난을 받으면서도 "이제 면역이 생겨서 괜찮다"고 당당하게 말하던 앨런. 물론 그는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성폭행 의혹이 사실이라면 앨런은 한 사람의 인생, 더 나아가 가족을 파괴시킨 범죄자다. 범죄 피해자의 고통은 잊고 앨런의 영화를 마냥 즐길 수 있을까. 이제는 할리우드의 거장이 아닌 성범죄 피의자로 봐야할 시점이다. 딜런 패로는 2014년 당시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디 앨런은 성폭력, 성적 학대 생존자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좌절시키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이성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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