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이성봉] 

영화 소재에 끌려 극장을 찾았다. 그리고 억지스러운 이야기에 실망했다. ‘염력’과 ‘다운사이징’이 딱 그렇다. 물리력이 아닌 정신력으로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초능력인 ‘염력’이라는 소재는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다운사이징’도 마찬가지다. 몸이 작아지면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설정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 중 껍데기에 해당하는 소재는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당긴다. 그러나 상영관을 나서는 이들을 즐겁게 만드는 요소는 결국 ‘이야기’다. 두 영화는 개봉 전부터 ‘소재’로 사람들을 끌어당겼지만 ‘이야기’로 발길을 끊어냈다.

사진 = 영화 '염력'

영화 '염력' 줄거리 - 평범한 은행 경비원 ‘석헌’(류승룡)은 약수터 물을 먹고 생각만으로 물건을 움직이는 능력이 생긴다. 그는 떨어져 살던 딸 ‘루미’(심은경)가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에 초능력으로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사진 = 영화 '다운사이징'

영화 '다운사이징' 줄거리 - 더 나아지지 않는 똑같은 삶을 살던 ‘폴’(맷 데이먼)은 은행 대출마저 거절당한다. 폴은 넓은 집을 원하는 아내를 위해 새로 개발된 ‘다운사이징 기술’을 선택해 살기로 마음먹는다. ‘다운사이징’은 사람을 0.0364%로 축소시키는 것뿐 아니라 1억 원도 120억 원의 가치가 되는 기회를 준다.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에 가득 찬 폴은 시술을 받게 되지만, 아내가 자신을 두고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예술이 사회적인 메시지를 줘야 한다는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

‘염력’은 초능력을 보러 갔다가 용산 참사,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등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속 석헌의 딸 루미는 치킨집을 운영하던 청년 사장이지만, 거대 자본에 의해 건물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연상호 감독은 “’용산참사’를 떠올리며 만든 작품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 소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언급했다. 강제철거로 생활터전을 잃은 소시민들의 아픔을 다룬 작품들이다.

그런 점에서 감독이 제작 당시 ‘용산참사’를 떠올리지 않았다 해도 결과적으로 전혀 관계없는 영화라고 말하긴 어렵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은 민중총궐기 시위에 참여한 고(故)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의식을 잃고 병원에 옮겨졌으나 끝내 숨진 사건이다. 영화에서는 경찰이 건물 난간에 매달린 철거민을 향해 물대포를 쏴 떨어뜨리려는 장면이 등장한다. 경찰의 물대포로 인해 한 사람의 생명이 위협받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사진 = 영화 '염력'

‘다운사이징’은 국제적인 사회문제를 다룬다. 인구 과잉, 환경 파괴, 지구 온난화 등 현대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작아진 인간들에 의해 관점을 달리한다. ‘다운사이징’ 기술은 인간의 몸을 줄여 생산과 소비 모두를 최소화함으로써 새로운 대안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혁명적 기획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자본가들과 소시민들의 시선은 다르다. 자본가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기술을 광고하고 추천한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다운사이징’ 하지 않는다. 그저 상품으로 여기고 또다시 자본을 축적한다. 인류를 고민하거나 손쉽게 부를 극대화하려던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양상이다. 영화는 결국 사회적 차원에서 계급모순과 인종차별, 지배와 착취, 거대한 장벽과 빈곤의 문제까지도 드러낸다. 

사진 = 영화 '다운사이징'

“하고 싶은 말이 과한 영화는 따분하다”

‘염력’과 ‘다운사이징’이 관객들에게 외면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감독들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염력은 아내와 딸 루미를 놔두고 집을 나간 아버지 석헌의 부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사회적 메시지를 줘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은 감독은 여러 사회 이슈를 집어넣으면서 몰입도를 방해했다. 수많은 심각한 문제를 널어놓고 초능력은 치킨집에서 맥주 나르는 데나 쓰라는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다운사이징’은 어떤가. 작아진 맷 데이먼의 활약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중후반부 내내 한 가지도 아니고 인종차별, 빈곤, 지구온난화 등을 계속 생각해보라고 화제를 던진다. 그런데 이 거대한 주제를 수습하지 못한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주변 사람에게 잘 하자’라는 엉뚱한 결말로 실패를 자초했다. 두 영화 모두 소재에 끌려 들어갔다가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만 듣고 가는 꼴이다.

사진 = 영화 '염력'과 '다운사이징'

영화는 이야기로 말한다. 좋은 소재는 예쁜 포장지에 불과하다. 두 영화는 좋은 소재와 사회문제를 매끄럽게 섞지 못했다. 매끄럽지 못한 이야기는 몰입도를 방해하고 영화를 따분하게 만든다.

'염력'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영화 ‘부산행’이 흥행했던 때를 되돌려보자. 각기 다른 목적으로 기차에 탄 시민들이 같은 공간에서 목숨을 위협하는 좀비들을 만난다. 그 안에서 힘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계급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그 계급 문제가 좀비라는 소재를 뒤엎지는 못한다. 비록 흥행을 의식한 나머지 무리수가 난무했지만 적어도 ‘좀비 영화’라는 주제를 벗어나진 않았다.  

‘다운사이징’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2002년작 ‘어바웃 슈미트’는 은퇴한 노년 남자의 아픈 성장기를 실감나게 그려 호평받았다. 현대 중장년층을 현실적으로 비추면서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까지 건넸다. 이처럼 두 감독은 사회문제를 따분하지 않게 좋은 이야기로 말할 줄 안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지 못했다. 서스펜스의 대가이자 현대 영화의 연출과 촬영, 편집 기법에 지대한 영향을 준 거장 감독 알프레도 히치콕은 이렇게 말한다.

“훌륭한 이야기는 따분한 부분을 잘라내고 남은 인생이다”

사진 = 영화 '염력', '다운사이징'

이성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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