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키울 수는 없어도 죽일 수는 있어”.

아주 오래 전 공연이 끝나고 회식 자리에서 억지웃음 지으며 들었던 얘기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선배가 농담으로 건넨 섬뜩한 이 말에 어떤 리액션을 해야 좋을지 몰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것도 혼나야 할 이유가 됐던 어이없던 시절, 후배는 무조건 ‘죄송합니다’를 입버릇처럼 말해야만 했던 대학로 연극계에서 배우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당시 후배란 입장은 선배는 물론 캐스팅의 권한을 쥐고 있는 연출가에게 어떤 얘기도 할 수 없는 ‘을’ 중의 ‘을’이었다.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아닌 걸 따져 묻는 무모한 용기를 발휘하다가 크게 꾸중을 들은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저 함구했어야만 했다.

연극인이 이처럼 연일 각종 미디어를 장식해 본적이 있었던가. 대학로의 수많은 소극장에서 끊임없이 무대는 채워지고 있지만 연극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 돼 버린 슬픈 예술장르다. 이제 그곳을 떠나 이따금씩 관객의 입장으로 객석에 있지만 열악한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여전히 가난하고 그 가난함을 열정으로 채우는 무대는 작품을 떠나 아프게 다가온다. 그런 상황에서 터진 연극계 성추문은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폭로에 추가 폭로가 이어지면서 연극판의 거물이었던 연출가 이윤택은 추락의 끝이 어딘지 모를 만큼 고꾸라져 버렸다.

과거 그의 작품들은 훌륭했다. 연출가로서, 극작가로서의 능력은 빛났고 이를 증명하듯 함께 작업하고 싶은 배우들도 많았다. 대학로보다 훨씬 심한 악조건 속에서 지역 연극의 맥을 이어가는 선구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윤택은 연극계의 권력으로 승승장구 하는 동안 도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면수심의 성추문 주인공이 돼버렸다. 사람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기에 권력에 한번 길들여지면 그것을 버릴 수가 없다고 했던가. 그는 권력의 단맛에 너무도 오랜 시간 스스로를 방치했다. 그가 맘대로 휘두른 칼자루에 ‘을’일 수밖에 없었던 배우들은 상처가 곪을 대로 곪아버렸다.

이윤택은 기자회견에서 말했던 ‘관습’이란 단어의 뜻을 알기나 하는 걸까? 관습의 정의는 ‘어떤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 내려와 그 사회 성원들이 널리 인정하는 질서나 풍습’이다. 과연 여배우들에게 그가 가했던 성폭력이 ‘관습’이란 단어로 포장될 만한 사안일까? ‘잘못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는 것’이 제대로 된 사과다. 빠져나갈 궁리에 급급하기만 했던 기자회견장에서의 비겁한 모습은 피해자에 대한 사과의 기본태도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연출가는 그렇게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업적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한국극작가협회와 서울연극협회, 연극연출가협회는 제명을 결정했고 연희단거리패는 해체를 선언했다. 부산 가마골 소극장과 30스튜디오도 처분을 결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조치만으로 피해자들의 상처가 온전히 치유될 수 있을까.

은폐된 진실은 피해자를 치료 불가능한 고통으로 치닫게 한다. 법적 책임 운운하기 이전에 가해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진실규명에 공소시효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영원한 권력이란 없다는 것을.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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