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지호]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이 새 회장 선임을 두고 내홍에 휩싸이면서 초유의 지도부 공백 사태를 맞게 됐다.

경총은 22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제49회 정기총회를 열고 박병원 회장 후임을 뽑는 절차를 진행했으나 결국 차기 회장을 선임하지 못했다. 

당초 중소기업중앙회장 출신의 박상희 대구 경총 회장이 추대돼 차기 회장으로 이날 전형위원회에서 선임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회장을 최종 결정하는 전형위원회 일부 위원들이 반대의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박상희 회장이 "전형위원 6명 가운데 5명이 대기업 관계자이고 중소기업 출신은 1명 밖에 없다"고 공개적으로 항의하는 등 큰 혼란이 빚어졌다.

경총의 정관에는 회장 선임에 대한 구체적 절차가 명기되지 않고, '총회를 통해 선임한다' 정도의 규정이 전부다. 지금까지 관행상 회장단이 총회에 앞서 후보를 추대하고, 또 역시 관행상 전형위원회를 구성해 만장일치 형식으로 선임을 확정해왔다.

재계에 따르면 10명 안팎의 경총 회장단은 지난 19일 오찬을 겸한 '회장단 간담회'를 열고 박상희 대구 경총 회장을 차기 7대 회장으로 추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박병원 현 회장이 거듭 '사퇴' 의사를 밝혀 회장단이 적임자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중소기업 대표 출신 박상희 회장이 추천됐고, 박상희 회장이 이를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희 회장 자신도 공개적으로 "여러 사람이 후보로 논의됐으나 최종적으로 자신이 추대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국 이날 당일 구성된 전형위원회 위원들은 박상희 회장을 차기 경총 회장으로 인정하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박상희 회장은 이날 선임 반대를 주동한 인물로 전형위원회에 참여한 모 10대 그룹 고위급 임원을 지목했다. 이 임원은 19일 회장단 모임에서 박 회장이 추대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회장단 모임에 전체 21명 중 일부만 참석했다는 점도 문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계와 경총 안팎에서는 중소기업 출신 회장 선임을 대기업 회원사들이 황급히 막은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방경총을 포함해 현재 경총에 가입한 기업들은 모두 4,000여개로, 이 중 대부분은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한국경총(중앙 경총)만 따지면 회원사 400여개 중 다수가 대기업인데다, 기업규모를 기준으로 받는 회비를 고려하면 대기업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박 회장이 16대 국회의원(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을 지낸 정치인 출신이란 점도 걸림돌이 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대기업 회원사의 부정적 여론에, 이날 퇴임한 박병원 회장의 의중까지 어느 정도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관행에 따라 전형위원회 위원을 뽑아 구성하는 권한이 현직 회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날 박병원 회장이 선임한 위원은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 김영태 SK 부회장, 박복규 전국택시연합회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정지택 두산중공업 부회장, 조용이 경기 경총 회장 등 6명이다, 박상희 회장이 불만을 터뜨린 대로 과반이 대기업 관계자다.

박상희 회장은 "대기업의 횡포라고 밖에 볼 수가 없고, 이렇게 소수 대기업이 지배하는 경총에서는 다시 회장 후보로 거론돼도 이제 내가 거부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박병원 회장과 김영배 상임부회장이 이날 모두 사퇴하면서 경총은 사상 초유의 지도부 공백사태를 맞고 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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