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기성세대를 일컬을 때나 학생들 사이에서 선생님을 뜻하는 은어로 사용됐던 단어, ‘꼰대’. 그 시절 꼰대라는 단어는 대놓고 저항 할 수 없기에 뒷담화용으로 사용돼 때로 해우소 같은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단어 자체에 해묵은 느낌이 가득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는 2018년 여전히 꼰대는 하나의 ‘괴롭힘 문화’로 자리 잡으며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 역시 꼰대문화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선배 간호사들로부터 신임 간호사들은 ‘엄격한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태움을 경험한다. 그러나 경험이라기보다 일방적으로 당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이유 없는 폭언과 폭행도 참아내야 한다. ‘재가 되도록 태운다’는 태움이 담고 있는 끔찍한 의미는 인권유린의 다른 말이다.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꼰대질의 사전적 정의다. “나 때는 말이야~ ” 그저 선배의 히스토리 쯤으로 가볍게 듣고 싶은데 그 말에는 행간의 의미가 숨어있다. 바로 선배의 경험담을 과거 이야기로 치부하지 말고 현재진행형으로 반영하라는 뜻이다. 현재에 대한 못마땅함이 더해진 ‘답정너(내 말대로 해)’ 스타일의 간접화법인 셈이다.

대학가에서도 신입생 길들이기란 이름으로 ‘꼰대질’은 계속되고 있다. 복장규정, 말투 제한, 성희롱, 성추행, 폭력행사까지 그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꼰대질의 시작, 젊꼰(젊은 꼰대)이 양산되는 곳이 지성의 요람인 대학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이들이 묘하게 그들과 닮아있다.

중요한 건 이렇듯 꼰대문화가 악습인 줄 알면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데 있다. 오랜 시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줄 세우기식 서열주의 문화, 권위주의적인 조직 문화는 경쟁이 심화 되면서 한층 더 강화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악습을 경계할 겨를도 없이 부지불식간에 이를 답습하게 되면서 꼰대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는 것이다.

꼰대의 대물림 현상에는 ‘나도 당했으니 너도 한 번 당해봐’의 유치한 보복심리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다. 그런데 이런 내용물의 전통은 반드시 진통을 겪게 된다. 견딜 수 없는 괴롭힘은 스스로 왕따가 되기를 선택하거나 극단적인 경우 태움 문화에 고통을 호소하던 간호사와 같이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많은 조직에서 ‘군기 잡는다’는 말이 여전히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군대에서 기강을 잡을 때 사용해야 할 이 말이 어디에서나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열린 사고가 부족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통제를 강요하는 꼰대 문화 내에서 ‘소통’은 실천 없는 구호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꼰대 소리 듣지 않는 지름길은 바로 입 닫고 귀를 활짝 여는 것이다. 선배로서 합리적인 조언이 가능하려면 들어야 한다. 이는 곧 소통의 기본자세이기도 하다. 그리고 답습된 권위주의로부터 탈피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자신의 화법을 한 번 녹음해보라. 꼰대 진위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아파왔기에 그 통증에 무뎌진 게 아닐까. ‘원래부터 그래왔다’ 이 얼마나 나태한 변명인가. 아직도 그 변명에 기댈 셈인가. 꼰대문화, 이제는 사라져야 할 병폐다.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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