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업부 기자

[한스경제 김재웅] 산업은행과 GM이 다시 한 번 밀월을 이어가고 있다. 군산 공장 폐쇄 발표가 있은 이후 한국지엠에 강경한 입장을 반복하던 산업은행이, 갑자기 입장을 바꿔 GM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GM이 특별한 추가 조치를 발표하지 않았다. 정상화의 큰그림도 달라진게 없다. GM은 앞서 밝혔던 대로 신차 2대 배정과 구조조정 등을 포함한 자구안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도 노조의 양보를 전제로 한 것이라서, 아직 확정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아직 실사가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매출원가율이 높은 이유가 매출 낮은 탓일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는 한국지엠 부실 원인이 지나치게 비싼 부품 가격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다. 한국지엠 실사 목표 중 하나도 매출원가율의 근거를 찾기 위함이었다. 정부가 실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GM에 책임을 떠넘기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풍긴 셈이다.

산업은행도 한국지엠에 단기 대출을 해주겠다며 힘을 보탰다. 실사 협조를 전제한 것이지만, 실사 결과와는 관계 없이 지원을 해주겠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에 따라 실사 결과의 파급력도 크게 축소됐다.

마치 데자뷔를 보는 듯 하다. 2010년 산업은행과 GM이 '장기발전 기본합의서'를 체결했을 당시와 흡사하다. 2009년 GM이 유상증자로 비토권을 빼았았던 당시, 산업은행은 1년여간 강력하게 몰아붙이다가는 갑자기 태세를 바꿔 적극 지원으로 돌아섰다.

산업은행이 태도를 바꾼 원인은 베일에 쌓여있다. GM과 원활한 합의를 통해, 한국지엠 독자생존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당시 한-미 FTA 협상 등 외교 문제와 산업은행 민영화 등 내부적 문제 등이 잇따랐던 만큼, 산업은행과 GM이 졸속 합의를 했거나 모종의 거래를 했을 수 있다는 의심도 나온다.

일례로 합의서 내용에는 산업은행은 한국지엠에 기술권 보장, 라이센싱 권리 등을 약속받았다고 소개했지만, GM은 한국지엠 주도로 개발한 볼트EV를 국내에서 생산할 계획을 전혀 세우지 않았다.

산업은행은 최근 군산공장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도 GM에 친환경차 등 국내 개발 모델 생산을 요구하지 않았다. 합의서가 한국지엠에 불리하게 작성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지엠 노조는 산업은행에 합의서 공개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김재웅기자

이 합의서에 한국지엠 부실 원인이 담겼다는 의혹은 여전하다. GM이 합의서를 작성한 직후부터 독자 개발 차량을 줄이고 본사 송금을 늘렸다는 등 의심거리가 한 둘이 아니다. 지나치게 높은 연구개발 비용에 대한 내용도 합의서에 담겨있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측하고 있다.

실사에 앞서 장기발전 기본합의서를 공개해야한다는 요구가 빗발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약 산업은행이 당시 불리한 합의서를 작성했다면 한국지엠 부실의 동업자가 될 수 있다. 산업은행이 한국지엠 실사를 한다는 것은 고양이에 생선 맡기는 격이라는 자조가 타온다.

산업은행이 GM과 부실 동업자라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합의서 공개는 꼭 필요하다. 앞으로 이같은 부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반면교사가 필요하다. 아직 국민들은 한국지엠 지원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현재 GM이 내놓은 신차 계획은 길어도 5년 정도만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지금 합의서를 열어보지 않고 추후 한국지엠 사태가 반복된다면, 산업은행은 막대한 피해와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김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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