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유소년야구단은 창단 2년 만에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이민호 감독은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관심이 지금의 팀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사진=이상엽 기자

[한국스포츠경제 이상엽] 우리 사회에는 편견이 있다. ‘운동선수는 무식하다’라는 편견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무식(無識)’은 아는 것이 없는, 즉 배우지 못한 것을 뜻한다. 운동선수는 무엇을 알지 못해 무식하고, 일반인은 어떤 것을 알기에 무식하지 않다고 하는 것일까.

운동에도 이론이 있고 과학이 있으며, 경험이 있다. 그들은 최소 운동에서만큼은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지식인이자 ‘전문가’들이다. 야구인도 마찬가지다. 야구에 대한 기술부터 훈련 방법, 공이 변화를 이루는 공기 역학, 식생활까지 경험과 이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다.

대한유소년야구연맹 소속 이민호 감독은 일반인이 운동선수에게 갖고 있는 편견에 대해 과거 엘리트 체육에 집착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학교 내 정규수업에 빠지면서까지 훈련에만 올인하면서 다른 아이들과 성적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일부 체육인들의 일탈 행동이 불거지자 ‘운동하는 사람=무식하다’라는 생각이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이런 편견을 없어지고 운동의 장점과 자신의 역량을 살린다면, 충분히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이 감독은 굳게 믿는다.

야구단의 많은 아이들이 야구선수를 꿈꾼다. 그러나 이 감독은 야구단이 단순히 야구선수 양성소가 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사진=이상엽 기자

‘야구선수 양성소가 아닌 교육이 앞서야 훌륭한 야구인이 나온다’

지난 20일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위치한 해양야구장에서는 대학생 야구팀부터 어린 유소년야구단까지 여러 팀들이 흐린 날씨에도 열심히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이날 만난 안산시유소년야구단 이민호 감독은 기록석에서 어린 아이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팀의 전반적인 상황을 살폈다.

이 감독은 “아이들이 훈련할 수 있는 구장도 있고, 겨울이나 악천후에 대비해 약 7,000만원 정도 사비를 털어 실내훈련장도 마련해 놨다”며 “주변 분들께서 많은 도움을 주셔서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이 훈련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지도만 해주면 되는 셈”이라고 밝혔다.

훌륭한 인프라 덕분인지, 야구단은 지난해 창단 2년차에 각종 대회에서 두 번의 준우승을 차지했다. 올해는 우승까지 넘볼 수 있는 기량이다. 팀 기량이 빠르게 향상된 것은 야구를 즐기던 아이들 중 상당수가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 꿈을 서서히 가져가면서부터다. 60명 정도의 야구단 중 15명이 훌쩍 넘는 아이들이 선수를 꿈꾸며 선수반에서 훈련을 한다.

그러나 이 감독은 자신의 야구단이 야구선수 양성소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특히, 초등학생이 대부분인 야구단 아이들에게 야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예절에 대해 강조한다. 또한, 학교 정규수업의 중요성도 일깨워 준다.

초등학교 생활은 특히나 어떤 성인이 되느냐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기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감독은 선수가 되기를 원한다면 야구 꿈나무로서 최선을 다해야 하며, 학교에서는 공부를, 야구단 단체생활과 가정에서는 예절과 효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야구단 어린이들의 자율 훈련 모습. 사진=이상엽 기자

이 감독은 “과거에는 야구면 야구, 하나에만 올인해야 하는 엘리트 체육이었다. 엘리트 체육이 아니면 야구를 할 수도 없었다”며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공부도 할 수 있고, 야구도 할 수 있는 여건이 잘 마련돼 있다. 야구에만 몰두한다고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만, 운동선수는 무식하다는 편견에서 벗어나고 또한 프로선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훌륭한 선수로 남을 수 있다”고 언급한다.

실제로 이 감독은 야구와 관련된 자격증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본인도 엘리트 체육의 길을 걸어왔지만, 성인이 돼서도 배움을 멀리 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이 배우고 갈고 닦아야 아이들에게 더욱 더 질 높은 교육을 할 수가 있다는 믿음에서다.

이 감독은 “어떤 스포츠든 야구란 종목 하나로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그 과정에는 내가 공부한 모든 것들을 쏟아내고, ‘그래, 한 번 믿어보자’는 마음을 갖는 순간 서서히 변화가 시작됐다”며 “나도 ‘아이들이 변해봐야 얼마나 변할까’라는 편견이 있었다. 그 편견이 깨지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 아이들은 사회의 편견을 깨는 훌륭한 사람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박선규(송호초6), 심재훈(삼일초6), 김명중(화랑초6), 이민호 감독, 이창훈(진흥초6), 박승찬(삼일초6), 이세민(해양초6). 사진=이상엽 기자

안산시유소년야구단 이민호 감독 일문일답.

-야구단이 신흥강호라고 들었다. 구성이 어떻게 되나.

“야구단은 창단한지 만 2년이 됐다. 햇수로는 3년째다. 야구단의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정착이 됐다. 현재 60명 정도의 학생들이 취미반과 선수반으로 나눠 훈련을 하고 있다. 코칭스태프는 감독인 나를 포함해 프로 출신인 모상기, 모상영 형제가 실전 훈련을 담당하고 있다.

팀이 한 뜻을 갖고 움직이니 성적도 나쁘지 않게 나온 것 같다. 지난해 여러 대회에 출전해 2번의 준우승을 기록하는 등 의외로 좋은 성적을 냈다. 코칭스태프, 선수들, 학부모님들이 하나가 돼 거둔 성과라고 본다.”

-훈련하는 구장이 아이들이 야구를 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사회인 야구, 대학야구 등 다양한 야구단체나 팀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다. 우리 야구단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매우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대한유소년야구연맹을 포함해 안산시와 안산시 야구소프트볼협회 등의 지원과 관심이 컸다.

우리 야구단에 송바우나 안산시의원님이 단장 직책을 맡고 계시고, 안산시 야구소프트볼협회 윤성필 회장님도 많은 신경을 써주시고 계신다. 특히, 구장은 안산시 야구소프트볼협회의 지원이 컸다. 이처럼 지역사회의 많은 분들이 유소년야구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셔서 팀이 이 정도로 성장한 것 같다.”

-선수반과 취미반을 나눠서 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

“두 그룹으로 나눠 야구단을 운영하는 이유는 안전 문제가 가장 크다. 야구란 종목이 배트와 딱딱한 공을 사용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다칠 위험이 크다. 나이와 기량에 따라 아이들의 레벨이 다르다 보니, 맞춤형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의 만족도와 야구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도 한 몫을 했다. 정말 야구가 좋아서 놀기 위해 오는 아이들과 프로선수가 되고 싶어서 야구를 하는 아이들의 지향점이 다르다. 물론, 야구단이 창단했을 때도 취미반만 먼저 운영을 했고, 이후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의 요구로 인해 선수반을 따로 개설했다.

선수반에서 훈련을 하고 싶다고 해서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취미반에서 시작한 후 아이와 부모님의 의지가 확고하다고 판단되면, 그 때 선수반 합류 여부를 판단한다. 선수를 한다는 것은 꿈을 가진다는 것이지만, 그만큼 험난한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나 가족들은 이 부분을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기에 선수반 합류 전에 이를 말씀 드린다.”

-초등학교 야구부와 야구 연맹 등이 다른 점은.

“우리 팀 중 학생 2명이 학교에서 야구를 하다가 온 친구다. 이 중 한 명은 야구 프로그램이 잘 구성돼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야구부에 합류하지 못했다. 한정된 TO가 문제였다. 초등학교 야구감독도 지도할 수 있는 아이들의 수가 한계가 있다. 지원자를 더 받고 싶어도 못한 셈이다. 다른 한 명은 학교 야구부의 분위기 등에 적응하지 못해 오게 된 학생이다.

학교 내 운동부의 가장 큰 단점이 이처럼 제한된 것이 많다. 정원 문제, 학교 소속 학생이 아니면 가입 자체가 되지 않는 문제 등 다양하다. 제도적인 문제다. 또, 학교의 단 하나의 운동장을 운동부가 점유해 사용하면, 다른 학생들에게는 피해가 오기도 한다. 많은 운동부가 운영이 쉽지 않게 되면서, 존폐 여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그럼 그 안에 소속된 지도자들은 운동부의 존속을 위해 성적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다. 결국, 주전 선수만 계속 대회에 내보내 후보 선수들은 시합에서 한 번 뛰어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한유소년야구연맹, 한국리틀야구연맹, 야구소프트볼협회 등 이런 단체들은 그런 면에서 유연하다. 각 단체들마다 약간의 성격 차이는 존재하지만, 학생들에게는 선택권이 있기에 본인에 맞는 야구단에 입단이 가능하다. 더욱이 학교의 정규수업을 모두 다 이행한 후 훈련을 한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 감독도 과거 엘리트 체육만 경험한 야구인이다. 지금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지도를 하고 있는데.

“난 야구를 너무 좋아했다. 부모님이 중국요리점을 운영하시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야구를 하기 위해서는 야구부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렇게 프로선수를 향해 엘리트 코스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선수로서는 큰 빛을 보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하고 야구를 그만 뒀다. 직장생활도 해보고 요식업 등 사업을 하면서 야구계를 떠나기도 했지만, 마음 한 켠에 아이들과 ‘행복한 야구’를 하고 싶었다. 나는 야구 엘리트에서 말하는 ‘실패자’다. 그 경험이 많은 것을 바꿨다.

모든 감독이 어린 선수들을 평가할 때 항상 나오는 단어가 인성이다. 경험상 그게 사실인 것 같다. 어린 학생들이 야구를 하겠다면 당연히 기술이 중요하지만, 야구란 스포츠로 인성교육과 같은 교육적 내용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결국, 아이들이 선수가 되더라도 사람 됨됨이와 같은 바탕이 먼저 깔려 있어야 한다. 선수만 된다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은 아니다. 선수로서 어떻게 행동하고 유지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이 감독의 개인적인 바람과 야구단의 목표는.

“하나의 스포츠 종목으로 사람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왔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야구단의 한 학생은 몸이 안 좋아 부모님의 걱정이 컸지만, 지금은 훌륭하고 어엿한 아들이 됐다.

야구이든 다른 종목이든 결국 지도자란, 내 자신의 영역에서 제자나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필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내 경우도 학생들의 먹는 문제, 행동 문제도 학부모님께 말씀을 드린다. 일부 부모님은 야구 감독이 아이들 먹는 것까지 관리를 해야 하냐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아이에게 도움이 될 요소가 있다면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지도자들도 항상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올바른 정보, 지식을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야구단의 아이들은 유니폼을 입으면 야구선수답게, 집에서는 아들답게 그 역할에 맞는 했으면 좋겠다. 야구도 즐기면서도 이기는 야구, 모두가 자기 본분을 다하는 팀이 됐으면 한다.”

안산시유소년야구단 6학년 선수들

“야구는 홈 베이스에서 시작해 홈 베이스에서 끝난다. 홈런 같은 걸 치면 2점, 3점 대량 점수가 나서 매력이 있는 스포츠가 아닌가 싶다.

각기 다른 학교이지만, 재미있게 많이 싸우지 않고 배려하면서 지낸다. 우리 모두가 프로선수가 같이 돼, 우승도 하고 야구로서 하나가 됐으면 좋겠다.

앞으로 대회에서는 우승도 하고 홈런도 많이 치고, 계속 이렇게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 되겠다.”

안산=이상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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