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지호]금융감독원이 다음 주부터 10여개 제약·바이오주에 대한 본격적인 회계감리에 나서면서 이들 종목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가 하락은 물론, 자칫 신약개발마저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첫 신약으로 허가받은 ‘올리타’ 개발을 전격 중단한다고 전일 밝혔다. 이에 한미약품 주가는13일 장에서 0.18% 하락세로 마감했다. 장중에는 8.32% 급락하는 등 크게 출렁였다.

올리타는 한미약품이 기술수출했다가 2016년 9월 다국적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이 계약을 해지했던 약물이다. 당시에도 한미약품 주가가 폭락했었다. 최근에는 올리타의 개발 권한을 사간 중국 지역 파트너사인 자이랩도 권리를 반환하면서 중국 임상 3상 진행이 불투명해졌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경쟁 약물인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가 전 세계 40여개국에서 판매되고 있어 경쟁력을 상실한 게 올리타 개발 중단의 이유”라고 말했다. 올리타가 개발 시작은 빨랐지만 타그리소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일찍 따내면서 임상 3상을 진행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한미약품은 이번 사건으로 글로벌 제약사에 비해 부족한 연구개발(R&D) 비용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한미약품의 지난해 말 기준 R&D비는 1,706억원으로 매출액의 18.6%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아스트라제네카는 연간 5조9,000억원을 R&D비로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으로는 이처럼 글로벌 제약사에 비해 빈약한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에 금감원이 감리를 통해 지나치게 엄격한 회계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모든 인프라가 깔려있는 다국적 제약사에 비해 제약·바이오기업, 특히 바이오시밀러 업체는 대량생산을 위한 시설투자비 등도 R&D비로 잡고 있는데 금감원이 이를 자산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글로벌 10위안에 들어가는 제약·바이오사가 아닌 한 R&D비를 좀 융통성 있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약·바이오기업의 R&D비용의 자산화율이 생각보다 높지 않은데, 금감원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연구개발비 분석이 가능한 상위 4개 상장 바이오기업(셀트리온·삼성바이오에피스·신라젠·차바이오텍)은 연구개발비 4,495억원의 41.8%인 1,880억원을 경비로 회계 처리했다.

신라젠은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R&D비 전액을 비용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신라젠은 50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신라젠은 2015년과 2016년에도 각각 237억원, 468억원의 영업손실을 나타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바이오주는 R&D비를 지나치게 자산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경고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셀트리온은 2,267억원 중 74%인 1,688억원을 무형자산으로 잡았다. 같은 기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경우 R&D비 2,216억원 중 35%인 786억원을 자산으로 잡은 것과 대비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신라젠과 마찬가지로 위탁개발(CDO) 관련 R&D비를 전액 비용으로 처리하고 있다.

회계처리를 놓고 감사인 삼정회계법인과 갈등으로 감사의견 ‘한정’을 받고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차바이오텍은 지난해 전체 R&D비 74억원 중 53억원을 무형자산으로 처리했다. 여전히 자산으로 처리한 비중이 71%에 달한다.

셀트리온 측은 바이오시밀러(복제약) 특성상 검증된 약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신약개발에 비해 성공확률이 월등히 높고 매출도 충분히 나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셀트리온의 연결 기준 지난해 매출액은 9,490억원, 영업이익은 5,220억원에 달한다.

다른 바이오제약사 관계자도 “신약과 바이오시밀러는 성공확률이 확실하게 차이가 있는데 동일한 회계기준을 적용하기는 어렵다”면서 “또 개발약의 성공확률을 가장 잘 아는 건 회사 내부인인데, 외부인인 감사인이나 금감원이 이를 판단하는 건 성급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신라젠에 따르면 신약이 임상 1상을 진입한 뒤 시판승인에 이를 확률을 보면 평균적으로는 10%의 성공확률을 나타낸다. 이 중 자가면역질환은 17%, 내분비질환은 13%가 성공한다. 이에 비해 항암제는 성공률이 7% 수준으로 전체 분야에서 가장 낮다. 신약 중에서도 치료 목표 질환별로 성공확률이 큰 차이를 나타내 일괄적으로 회계기준을 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반면, 박동흠 현대회계법인 회계사는 “글로벌 제약사에 비해 트랙레코드가 없는 국내 바이오기업이 신약개발에 비해 성공확률이 높다는 이유로 R&D비를 자산으로 분류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박권추 금감원 회계전문 심의위원(부원장보)는 “아직 감리를 들어가지도 않아서 엄격하다, 아니다 말할 단계는 아니다”면서도 “R&D비가 자산으로 인식되는 기준이 있음에도 지켜지지 않아 가급적이면 보수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박 부원장보는 “제약·바이오 기업이 너도나도 R&D비를 경쟁적으로 자산으로 잡으면서 실적이 부족할 때 활용하는 ‘화수분’과 같은 신세가 됐다”면서 “사업 내용이나 상황이 변했으면 자산으로 잡았던 R&D비를 비용으로 신속하게 처리해야 함에도 이도 부진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그는 “글로벌 제약사는 내부 R&D비는 거의 전액 비용으로 처리하고 있고 외부에서 구매한 영업권 등만 무형자산으로 잡고 있다”면서 “감리를 통해 검증하지 않으면 R&D비가 급격히 불어나 불확실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계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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