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영화 ‘바람 바람 바람’은 불륜을 소재로 한 코미디영화다. 체코영화 ‘희망에 빠진 남자들’(2011년)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불륜에 빠진 네 남녀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려냈다. 그러나 관객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소재인만큼 이병헌 감독 역시 선뜻 메가폰을 잡지 못했다. 이 감독은 “국내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정서가 많은 게 사실”이라며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원작이 있는 영화인데다 소재가 소재인만큼 연출을 하는 데 부담을 느꼈을 텐데.

“제작사 대표님께서 먼저 제안을 해주셨다. 원작을 봤는데 감정보다 상황을 따라가는 코미디였다. 우리나라 정서와는 달리 너무 쿨해서 국내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 영화를 고사했다. 그렇지만 대표님이 너무 끈질기게 ‘이 이야기를 풀어낼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설득했다. 원작을 두 번 보니까 많은 것들이 보였다. 이 인간들에 대해 궁금증을 느꼈다. 어마어마한 행위를 한 사람들의 끝은 차가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모험, 도전이나 다름없는 선택이었겠다.

“이런 부정적인 소재를 코미디로 다룬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애썼다. 자칫하면 욕만 먹고 끝날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아서였다. 각색도 많이 했고 그러면서 후회도 많이 했다. 애를 많이 먹었다. 제니(이엘) 캐릭터가 가장 어려웠다.”

-제니의 어떤 점이 그렇게 어려웠나.

“복잡한 캐릭터라 정답을 내리는 게 힘들었다. 왜 꼭 부정적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꼭 핑계를 대지 않나. 제니에게도 그 정도는 주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게 행동의 당위성을 주는 건 아니지만.”

-초반 제니의 당구장 시퀀스는 일부 관객들이 불쾌하게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원작을 봤을 때 부담스러웠던 장면이기는 하다. 원작에서는 노출이 더 과했다. 나는 제니라는 인물을 남자들이 여가를 즐기는 공간에 넣어주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평범한 공간에서 남자들이 제니의 임팩트를 느낄 수 있길 바랐다. 자극적인 부분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한 장면으로 이 캐릭터에 대한 궁금증을 느끼는 효과가 있길 바랐다.”

-원작은 장인과 사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바람 바람 바람’은 매제 지간으로 설정했다.

“수위 조절을 많이 했다. 아무리 봐도 우리나라 정서 상 사위와 장인이 함께 바람을 피운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순화했다.”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자극적인 장면은 거의 없는 편이다.

“투자사와도 의견 충돌이 있었다. 사실 노출이 어느 정도 있는 성인 코미디 영화로 기획한 게 맞다. 그런데 각색을 하면서 내 생각이 바뀌었다. 이렇게 애를 써 가며 영화의 감정을 만들어놨는데 시각적인 무언가에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노출은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는데 아직 힘없는 감독이라 의견 조율을 많이 했다.”

-이번 작업으로 인한 부담감이 정말 컸나 보다.

“어마어마했다. 내가 이 영화로 뭘 어필할 수 있을지 늘 고민했다. 감정을 놓쳤다가는 정말 큰일 날 것 같은 줄타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스스로 많은 아이디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불면의 밤들을 보냈고 정말 괴로웠다.”

-석근(이성민)과 봉수(신하균)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장면에 많은 의미가 담긴 것 같은데.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 장면 전에 다 같이 밥을 먹는 장면에서부터 이야기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식사라는 게 가장 일상적인 행위인데 평생 불편함을 안고 (불륜 당사자들끼리) 밥을 먹어야 하지 않나. 롤러코스터 신은 코미디 적으로 활용한 장면이긴 하다. 어떤 사람들이 놀이기구를 타면서 무표정하게 있겠는가. 하찮은 쾌감 후 느끼는 공허함을 전달하고 싶었다.”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 중인 시점에 개봉했는데.

“일단 이 영화가 불륜에 대해 옳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사실 부정적인 것들을 바로 보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부담스럽고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불편하게 느낄 수 있겠지만 그건 보는 사람의 몫이다. 내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사진=NEW 제공

양지원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