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오다'가 수록된 닐로 앨범 커버

[한국스포츠경제 정진영] ‘~라고 하더라’는 식의 부정확한 추측이나 소문을 흔히 ‘카더라’라고 한다. ‘누구랑 누구랑 사귄다’거나 ‘그 그룹 멤버들 사실 사이 안좋다더라’는 등의 ‘카더라’가 만연한 연예계에 최근 새로운 소문이 하나 추가됐다. 연예계에서의 인기 척도 가운데 하나인 ‘실시간 검색어’나 ‘음원차트 순위’ 등을 조작하는 게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건 가수 닐로가 ‘지나오다’라는 곡으로 갑자기 음원 사이트에서 600위를 넘게 점프하면서부터다. 닐로는 지난 2015년 데뷔했으나 대중에게 크게 이름 알릴 기회는 없었던 중고 신인. ‘지나오다’는 지난해 10월 발매한 앨범 ‘어바웃 유’의 타이틀 곡으로 약 5개월 만에 차트 하위권에서 상위권으로 올라가는 ‘역주행’을 시작, 지난 12일에는 멜론 차트 1위를 차지하게 됐다.

최근 차트는 엑소-첸백시, 위너, 트와이스 등 대형 아이돌 가수들의 컴백과 케이블 채널 Mnet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고등래퍼2’ 음원 발매가 겹쳐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이 사이에서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가수, 익숙하지 않은 노래가 ‘역주행’을 하다 보니 ‘유령 계정’을 이용해 듣지 않는 노래를 지속적으로 스트리밍하는 음원 사재기가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과거 몇몇 가수들도 이런 비슷한 의혹을 받은 적이 있고, 실제 대중의 의견 조작에 대한 심각한 문제제기가 없던 시절에는 ‘사재기는 어느 정도 다들 한다더라’는 ‘카더라’가 돌기도 했다. 이후 이런 스트리밍 행태가 음원 차트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해치고 여론을 호도한다는 비판이 쏟아지면서 가요계는 물론 음원 차트들에서도 자정 노력에 힘쓰고 있는 상황이다.

닐로의 소속사 리메즈 엔터테인먼트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사재기는 절대 아니”라고 부인했다. 이들은 ‘지나오다’ 이전에 장덕철의 ‘그날처럼’을 역주행시킨 바 있는데, 이와 관련해 “모바일로 많은 음악을 듣는 시대적 흐름에서 SNS를 대중과 뮤지션의 소통의 창구로 사용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어떠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았고, SNS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광고 툴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리메즈 엔터테인먼트가 주로 이용한다는 페이스북에서 닐로를 검색해 보면 꽤 여러 페이지에서 닐로와 ‘지나오다’ 관련 영상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영상들에 달린 ‘좋아요’는 수백에서 수천 개 수준이고, 긍정적인 댓글 역시 많다. 10~20대 젊은층이 많이 사용하는 페이스북이 가수나 노래의 인기 척도가 된 건 사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진 박원이나 김나영 등도 페이스북에서 먼저 반응을 이끌어냈고,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도 페이스북에서 먼저 인기를 끌고 그러한 반응이 차트로 이어졌다. 신현희와 김루트의 ‘오빠야’가 한 아프리카tv BJ가 생방송에서 부른 뒤 차트에서 ‘역주행’을 시작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SNS의 힘은 과거 그 어떤 시기보다 강력하고, 서서히 메이저 시장과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끌어도 ‘나만 아는 노래’에 그치는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SNS에서의 인기 음악이 ‘우리 모두가 아는 노래’가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 과정은 불법이 아니다. SNS는 특정인에게만 발언권이 있는 매스 미디어가 아닌 모두가 동등한 발언권을 가진 커뮤니케이션 채널이며,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교류하는 데 능한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내는 시대의 흐름이다. 리메즈 엔터테인먼트는 15일 낸 공식 보도자료에서 이 같은 시대 상황을 ‘대중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든다면 진입장벽 없이 누구나 자신의 음악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세상’이라고 정의했고, 이런 시대를 적극적으로 살아나가는 건 이들의 능력이다.

문제는 리메즈 엔터테인먼트의 주장처럼 “누구나 자신의 음악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세상”을 몇몇 인기 페이지들이 나눠 가지게 됐다는 데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들은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혹은 의뢰가 들어온 콘텐츠들을 선별해서 게재하는데, 이 과정에서 친분이나 금전 등의 입김이 작용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사례가 가요계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비연예인 모델을 기용해 실제 체험기처럼 포장한 광고 영상이나 특정 회사의 의뢰를 받고 회사에서 원하는 댓글을 쓰는 ‘댓글 알바’ 같은 일들은 화장품, 여행 상품, 다이어트 상품, 공연 등 무수히 많은 다른 분야에서도 목격되는 일이다. 다만 음악 시장의 경우 이런 바이럴 마케팅이 단순히 소비를 촉진하는 선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공신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차트에 영향을 주며, 곧 소수의 SNS 권력자들이 선택한 콘텐츠가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포장된다는 게 문제다.

‘SNS 마케팅’을 실제로 이용해 본 적이 있다는 한 관계자는 “이용자들에게는 서로 다른 채널로 보이지만 실제로 한 사람, 회사가 페이스북 페이지 여러 개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면서 “자신이 보유한 여러 페이지에 시간차를 두고 게시물을 올리는데, 그렇게 되면 이용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렇게 여러 채널에서 소개하는 걸 보니 정말 좋은 콘텐츠인가 보군’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어떤 회사는 페이스북에서만 약 100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이들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증언했다. 또 “어떤 회사에서는 돈을 지불하면 검색어까지 조작해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충분한 돈을 내면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려준다는 조건”이라고 덧붙였다.

SNS가 활성화되기 한참 전인 과거, 매니저들은 자기 가수를 알리기 위해 방송국이며 신문사로 CD를 들고 뛰었다.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노래와 가수를 노출시키기 위해 기자나 PD들과 친분을 쌓거나 CD 사이에 돈을 꽂아 돌렸다는 ‘카더라’도 전해진다. ‘진입장벽 없이 누구나 자신의 음악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세상’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SNS 공룡’들은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가. 불법이 아니라는 게 떳떳해도 되는 모든 이유가 되는가.

사진=리메즈 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진영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