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재웅] 한국지엠이 노사간 극적 합의로 법정관리를 면하게 됐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당장 군산공장 잔류 인력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하는 상황. 생산성을 늘리는 방안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한 상태다. 특히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지엠은 23일 노사가 임단협에서 극적인 합의를 도출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8시 이사회에서 법정관리 신청을 결정하기 직전에 나온 것이다.

사측은 이날 14번째 교섭에서도 다시 한 번 양보안을 내놓으면서 노조의 협조를 촉구했다. 군산공장 노동자에 대해 무급휴직 계획을 철회하고, 전 인원에 대한 희망퇴직 실시와 전환배치를 약속하는 내용이다.

한국지엠 노사가 오랜만에 맞손을 잡았지만, 정상화를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또 ‘부평2공장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2022년 이후 말리부를 대체할 후속모델 생산량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구체적인 미래 계획을 요구하던 노조 주장을 수용했다.

노조는 또다시 복리후생 삭감안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나서면서 잠정 합의를 늦췄지만, 결국은 사측이 제시했던 일부 비용절감방안을 받아들이고 잠정 합의안에 사인했다.

이에 따라 한국지엠은 당장 법정관리와 부도 위기를 넘기게 됐다. GM으로부터 차입금 형태로 자금을 지원받고, 기존에 빌린 돈도 만기를 연장받는다. 이를 통해 한국지엠은 이번 달 당장 필요한 약 9,000억원을 해결할 예정이다. 협력사 부품대금 약 3,000억원과 일반직 직원 급여 500여억원과 희망퇴직금 약 5,000억원 등이다.

반면 전문가들은 정상화를 위해서는 여전히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큰 쟁점은 5,000억원 규모의 공적자금 투입 여부다.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지난 20일 실사 주체인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크다는 중간보고서를 받았다.

여기에는 GM이 차입금을 출자전환하고 신차 2개를 배정해야한다는 자금 지원 조건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3조2,078억원에 달하는 차입금을 주식으로 전환하라는 요구다.

이에 덧붙여 산업은행은 GM에 20대1의 차등감자를 요구하고 나섰다. GM이 3조원을 출자전환하면 산업은행의 지분율이 1% 아래로 떨어지는 만큼, 차등감자로 비토권을 유지하겠다는 계산이다.

GM은 노사합의에 따른 출자전환에는 긍정적인 입장이지만, 차등감자에는 다소 어렵다는 표정을 보이고 있다.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비판 여론을 어떻게 수긍시킬지도 한국지엠이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다. 다수의 관계자들은 정부가 세금을 사기업에 지원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숨기지 않고 있다. 형평성 논란도 제기된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한국지엠 노사 합의는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며 “공적자금 투입 여부가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협상을 주도하면서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점은 자동차 업계 전체에 남겨진 씁쓸한 숙제다. 글로벌GM은 지난 2월 군산공장을 폐쇄하면서 고임금저생산 구조를 가장 큰 문제로 지목했었다. 하지만 사측이 협상 과정에서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인 군산공장 인력 재배치까지 들어주면서 분란의 씨앗을 남겨둔 상태다.

그나마 2018 임금인상 동결 등 일부 복리후생 축소안에 대해서는 양보를 받아냈지만, 결국은 ‘강성노조’에 끌려다녔다는 평가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같은 문제는 자동차 업계 전반으로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협상 기간 정부도 노조에 적지 않은 힘을 실어줬던 상황, 다른 노조도 임단협에서 ‘버티기’ 작전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쌍용차 노조는 지난 21일 해고자 전원복직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서울 광화문에서 집회를 벌였다. 사진=연합뉴스

당장 쌍용차 노조는 21일 정리해고자 복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최근 평택 공장에서 진행한 복직 시위의 연장선상이다. 임단협에 앞서 일찌감치 사측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현대차 노조도 지난 13일 1인당 기본급 11만6,276원 인상에 성과급 2,748만원을 요구하는 내용의 2018 임단협 요구안을 확정했다. 전년도 요구안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작년 타결액(5만8,000원)보다는 2배가 많아서 올해 협상 역시 난항이 예상된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한국지엠 사태에도 국내 자동차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인 고임금 저생산 구조는 해결되지 못했다”며 “자동차 업계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데도 강성노조에 이끌려 근로자 연봉이 1억원에 가까운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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