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서연] 연 32조원을 굴리는 ‘서울시 금고지기’ 입찰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복수금고가 첫 도입되면서 시금고를 100년 넘게 지켜온 우리은행의 아성에 시중은행들이 도전장을 던졌고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금융권의 관심이 뜨거웠다.

시중은행들이 시금고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 교부금, 지방세, 기금 등을 끌어들일 수 있고 세출, 교부금 등의 출납 업무를 하며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울시 공무원과 가족을 대상으로 영업해 부수적으로는 고객 확보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24일 서울시와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시는 오는 25일부터 30일까지 서울시 금고 신청서를 접수한다. 서울시는 제1금고, 제2금고로 구분해 평가하고 금고별 개별 평가 결과 최고 득점을 받은 금융기관을 각각 제1금고, 제2금고로 선정한다. 일반·특별회계 관리는 제1금고, 기금 관리는 제2금고가 맡는다. 선정된 은행은 2019년 1월1일부터 2022년 12월31일까지 4년간 서울시 금고를 맡게 된다.

서울시 금고 은행이 되면 한해 약 31조8,000억원에 달하는 서울시 예산과 기금을 관리하게 된다.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금고지정 심의위원회에서 심사한 결과 각 금고별 최고 득점한 금융기관을 우선지정대상 금융기관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1금고와 2금고의 최고점 은행이 같으면 한 은행이 두 금고 모두를 맡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서울시의 금고지기는 103년간 우리은행이 단독으로 맡아왔다. 우리은행은 이번 역시 ‘기관영업의 강자’로서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수년간의 기관영업 경험과 기관영업전략부 시스템영업팀의 전문인력을 내세운다. 지난해 운용자산 규모가 6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공단의 주거래은행을 따낸 것도 전산 인프라와 기관에 특화된 금융서비스가 경쟁 은행보다 탁월했다고 우리은행은 분석했다.

현재 우리은행은 서울시 금고로 ‘25개 자치구 통합 수납시스템’과 별도의 ‘서울시 전산 수납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를 비롯한 24개 구청 금고 은행으로 국내 최초로 세입세출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외부시스템과 연계된 통합전산시스템을 운영해 세출입 업무의 전 과정을 온라인으로 처리 중이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 서울 시내에 최다 402개 영업점과 1,065개의 자동화기기점포를 운영 중이며, 1,600여명의 금고 전문 인력을 갖추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의 주거래 기관고객은 114개로 시중은행 중 최다를 기록하고 있다”며 “전산 구축과 안정화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금고의 추가나 변경 과정에서 은행 간 시스템의 불일치, 납세항목별 수납은행이 달라지는 납세의 불편함 등의 문제를 생각했을 때 금고 운영의 지속성, 안정성, 효율성 측면에서 (우리은행의 시금고 재선정이) 설득력을 가진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신한은행, 국민은행, KEB하나은행도 욕심을 내고 있다. 이들 모두 국민연금공단 주거래은행은 놓쳤지만 이번만큼은 규모가 작은 2금고 열쇠라도 쥐겠다는 의지다. 여기에 서울시가 위험 분산과 시금고 운영 역량이 있는 금융기관 양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복수금고를 도입하다는 결론을 내려 기대감도 커지는 상황이다.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은 행장부터 나서 그야말로 ‘쟁탈’을 예고했다. 준비 과정만 보면 신한은행이 우리은행에 도전해볼만 하다.

2010년 첫 도전장을 내민 뒤 세 번째로 도전하는 신한은행의 위성호 행장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0년 만에 국민연금공단 주거래은행을 우리은행에 내줬고, 경찰청 주거래은행은 국민은행이 가져간터라 이번 시금고 입찰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실무자들뿐만 아니라, 위 행장 역시 직접 선정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1월부터 서울시 제안작업 태스크포스팀(TFT)을 가동하며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시금고 시스템의 80%는 이미 구축경험을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20%에 대해서는 모든 준비를 완료한 상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신한이 운영 중인 시스템을 구분해 파악한 결과 업무별로 73~95%가 동일하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며 “현재 서울시 이택스(ETAX:서울시 지방세 납부시스템)와 연계하는 대외기관은 총 26개 유형인데 이중 20개 유형은 신한은행이 이미 연계 중인 기관이고 새로운 연계가 필요한 기관은 서울시 산하기관 및 사업소와의 연계, 간편결제 부분으로 어려움 없이 연계가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2007년 인천시 제1금고로 첫 선정된 이후 현재까지 시금고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이 노하우를 바탕으로 서울시금고를 사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2006년 최초 금고운영 준비시에도 45일 만에 시스템을 준비해 성공적으로 이행할 적이 있다.

국민은행 역시 만만치 않다. 허인 국민은행장은 지난달 초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을 찾아 “적극 뛰어들겠다”고 표명했고, 올해 초 범금융권 신년인사회에서도 시금고 사업자로 선정되는 것에 대해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개인영업에서 그간 강점을 보여온 국민은행이 경찰청 주거래은행으로 선정되는 등 지난해부터 기관영업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어 시금고 선정이 중요한 시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1금고와 2금고 모두에 입찰을 하지 않으면 불리한 조건인 것 같다”며 “행장님께서 국민은행이 고객 수와 지점 수가 많아 접근성이 좋으니까 이런 것들을 강점으로 얘기하셨다”고 귀띔했다.

KEB하나은행은 1금고와 2금고 모두에 도전할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상황에 따라 2금고에만 입찰할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대전광역시를 포함한 총 15개의 지방자치단체 금고를 47년간 무사고로 운영하고 있다”며 “금고 업무 경험이 있는 전문인력을 충분히 보유해 안정적으로 금고 운영을 해온 경험을 내세울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권에서는 100년을 넘게 이어온 우리은행의 독주를 막기는 힘들고,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시중은행들이 2금고라는 ‘새로운 기회’를 엿볼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서울시청. 사진=한국스포츠경제DB

은행권에서는 100년을 넘게 이어온 우리은행의 독주를 막기는 힘들고,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시중은행들이 2금고라는 ‘새로운 기회’를 엿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단 1금고는 우리은행이 될 것이라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2금고라도 노려보자는 입장”이라며 “그래야 다음 시금고 선정 때 1금고를 욕심내볼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32조원 규모의 시금고 중 2금고는 2조원가량을 차지한다.

이 관계자는 “입찰공고가 직전 시금고 선정 때보다 두달이나 미뤄져서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문제가 될 것”이라며 “제안서 후 프레젠테이션이 있다면 시스템 안정성에 방점을 둬 전산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서류심사를 원칙으로 하지만 필요 시 프레젠테이션 및 질의·응답을 실시할 수 있다고 밝힌 상태다.

서울시는 지난 2014년에는 1월 말에 입찰공고를 냈었으나, 올해는 3월 말 지정계획 공고를 발표했다. 금융권에서는 서울시의 시금고 입찰 공고가 애초 계획보다 늦어지자 전산시스템을 구축할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가장 우려했다. 이미 지난달 초 서울시 금고인 우리은행에서 관리하는 이택스에 전산오류가 생겨 76만명에 세금고지서가 잘못 배송된 사건이 있었기에 은행들이 낸 제안서에서 전산시스템 구축 방안을 특히 꼼꼼히 들여다 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시는 1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중 서울시만 유일하게 단수 금고제를 운영해왔다. 때문에 우리은행을 제외한 다른 시중은행들은 시금고 운영의 효율성 등을 이유로 들어 복수금고의 도입을 강력히 피력해왔다. 100년이 넘게 시금고를 수성하고 있는 우리은행으로서는 달갑지 않을 수 있으나 1금고와 2금고 모두 한 은행이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이 우리은행에 나쁘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복수금고를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1금고와 2금고를 모두 우리은행이 가져가면 역설적으로 ‘서울시 금고=우리은행의 영역’이라는 공식을 더 확고히 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금융기관들의 제안서를 접수받아 심의한 뒤 다음 달 중 금고 업무 취급 약정을 체결할 예정이다.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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