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최지윤] 배우 봉태규에게 SBS 종영극 ‘리턴’은 한없이 고마운 작품이다. 촬영 중반부 주연배우 고현정이 주동민 PD와 의견 충돌로 중도 하차하고 박진희가 투입되는 등 마음고생도 심했을 터. 하지만 “주 PD는 은인”이라며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준데 대해 고마워했다. 극중 봉태규는 사학 재벌가 아들 김학범으로 변신, 극악무도한 악행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2005) 이후 “13년 만에 대표작이 생겼다”며 울컥했다. ‘리턴’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봉태규는 “꿈을 꾸는 것 같다”며 행복해했다.

-11년 만의 드라마 출연이었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종방연 날 다 같이 마지막 회를 보는데 눈물이 났다. 우여곡절이 많아서 그랬던 건 아니다. 촬영하는 동안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 정도로 추웠다. 고생한 스태프들을 보니까 울컥했다. 이 상태로 끝나는 게 아쉽더라. 물론 반응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배우 및 스태프들과 호흡이 좋았다. 아라고 말하면 어라고 알아듣는 정도였다. 본편 촬영 끝나고 보너스 개념의 촬영이 있었는데 취소 돼 아쉽다. 학교 다닐 때 유달리 반 전체가 친한 학년이 있지 않나. 새 학기 때 흩어질 때 아쉬워서 잠도 못 잤다. 그런 기분이다.”
 
-촬영 중반부 고현정 하차하고 박진희 투입됐는데.
“분명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개입된 일이 아니기에 조심스럽다. 솔직히 말하면 드라마가 굉장히 잘되고 있어서 잘 마무리됐으면 하는 생각이 컸다. 배우 개인 욕심이라기 보다 참여하는 일원으로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누구든 상처받지 않고 잘 마무리되길 바랐다. 18년 동안 배우 생활하다 보니 이해하는 마음이 커졌다. 무엇보다 촬영이 남았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동요하지 않는 것뿐 이었다. 현장에서 어떠한 일을 해결할 위치가 안 돼서 흔들리는 모습은 보여주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박진희와 호흡은 어땠나.
“박진희 선배가 왔을 때도 똑같은 심정이었다. 작업에 계속 참여한 우리 보다 새로 온 선배의 부담이 더 컸을 거다. 아내랑 선배의 임신 주기가 비슷하다. 똑같이 둘째인데 아내보다 선배 나이가 더 많다. 임신 중이고 컨디션 100%인 상태가 아닌데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지 않냐. 걱정이 너무 돼서 ‘선배 몸 괜찮으세요?’ 계속 물었다. 날씨도 춥고 최자혜 캐릭터가 감정적으로 격했는데, 선배가 더 크게 웃고 날 다독여줘서 감동 받았다.”
 
-주동민 PD도 마음고생 심했을 텐데.
“첫 촬영 때부터 감동 받았다. 경력이 오래돼도 현장에 왔을 때 마음껏 펼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감독님은 마음껏 연기하게 만들어줬다. 학범 캐릭터는 감독님의 아이디어가 많이 반영됐다. 벨소리나 신학대 교수 설정도 감독님 아이디어였다. 나에겐 은인이다. 오랫동안 활동하지 않았고 웃긴 이미지가 강하지 않았냐. 다른 캐릭터를 찾으려고 굉장히 노력했는데 안 들어왔다. 감독님이 나의 다른 모습을 보고 캐스팅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존중해주는 게 느껴졌다. 단역 배우들한테도 허투루 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현장에 있던 분들이라면 다 공감할 거다. 정말 많이 배웠다.”

-악역 도전은 의외였다.
“사실 욕 먹을까 봐 제일 걱정했다. 다들 ‘봉태규가 재벌?’이라며 의아해했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아 감사하다. 회사 대표가 동갑 친구인데 같이 일한 지 햇수로 20년 정도 됐다. ‘나 잘 된 것 같아? 이번 작품 하길 잘 한 것 같아’ 라고 통화하면서 울었다. 다른 사람보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친구가 축하해 줄 수 있는 상황이 돼 기뻤다. 학범이가 말도 안 되게 나쁜 캐릭터인데 정말 많이 울었다. 혼자 집에서 호평 기사 보면서도 울컥했다.”
 
-방송 초반 선정적이라는 비판 많았는데.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대본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판단은 작가님과 감독님, 방송국이 하는거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얘기가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품성 있든 없든 얘기가 안 나오면 씁쓸하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봐줘서 감사하다. 악벤져스 전개 부분은 감독, 작가, 배우 모두 시청자들이 지적한 부분에 대해 공감했다. 공중파고 15세니까 ‘어떻게 표현을 다르게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리턴’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구운몽을 꾼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갑자기 이 상황이 무섭더라. ‘‘리턴’ 촬영 한 것도 아니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거면 어떡하지?’ 꿈같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 뭔들 안 좋겠냐. 연기하면서 되게 신났다. 어쨌든 한 번 잘됐다가 안 된 배우이지 않냐.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다 소진한 걸 아닐까?’ 걱정됐다. 이미 보여준 걸 또 보여주면 승산 없는 게임이지 않냐. 다시 연기하는 게 재미있었고 현장에서 즐겁게 했다.”
 
-학범과 닮은 점은.
“어…믿을지 모르겠지만 학범이가 진짜로 여리다. 대본에 보면 괄호치고 운다가 많았다. 그만큼 징징대고 우는 장면이 많았는데, 이번 작품 하면서 눈물을 많이 쏟았다. 뭔가 여린 지점이 비슷하다. 잔잔한 호수처럼 작은 돌맹이 하나 던져도 파장이 이는 지점이 닮았다.”

-싱크로율 높다는 반응이 많았다.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하지 않았다. 악역이라고 단정 짓고 접근하면 그런 표정이 나올 것 같더라. 분노조절장애가 있지만,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 지점이 생기는 걸 경계했다. 학범이는 사람을 죽이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극단적인 폭력성이 있지만 생활 밀착형 캐릭터다. 자기 권위를 내세워서 아랫사람 대하듯이 하지 않았냐. 원래 다 반말하는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감독님한테 말해서 바뀌었다. 오랫동안 악역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막연하게 생각했던 걸 하나씩 꺼내서 만든 캐릭터가 학범이다.”
 
-학범 캐릭터는 어디에서 영감 받았나.
“음악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받았다. 촬영장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은 노래가 박효신의 ‘야생화’다. 전혀 정반대 지점의 노래인데, 연기하기 전에 마음 상태를 차분하게 내려줘다. 극중 이진욱씨 맞닥뜨리는 장면에서도 ‘야생화’를 부르지 않았나. 넘쳐날 수 있는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기존 재벌 캐릭터와 옷 스타일도 차별화됐다.
“학범이 의상 중에 여자 옷이 많았다. 옷을 잘 입는 친구들은 남자, 여자 구분하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교수로서 강단에 설 때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파티 할 때 스타일이 다 다르다. 한 신 한신 신경 쓴 이유는 연기뿐만 아니라 비주얼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벌 2세라고 비싼 브랜드만 입는 게 아니라 저가 브랜드도 입고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10년 전 과거 신에서는 실제로 10년 전 컬렉션 의상을 입었다. 막판에 하얀색 옷을 많이 입었는데, 비주얼적으로 피 튀겼을 때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결말 아쉬움은 없나.
“학범이가 죽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전혀 아쉽지 않았다. 악벤져스 4명이 함께 연기한 적이 거의 없었다. 마지막에 태석이 품에서 죽은 것도 좋았다. 한 공간에 4명이 모여 있을 때 학범이가 죽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진=iMe KOREA 제공

최지윤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