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배우 임수정이 독립영화로 돌아왔다. 그것도 엄마 역할로. 영화 ‘당신의 부탁’에서 수수한 민낯으로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며 스펙트럼 넓은 연기를 보여줬다. 그 동안 주로 멜로 작품에서 활동해 온 임수정은 기존에 펼친 연기와 전혀 다른 색채로 영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배우 뿐 아니라 작가로도 활동할 예정인 임수정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주체적으로 선택해서 살고 싶다”고 했다.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가 생각보다 더 잘 나온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특히 만족한 부분은 다양한 여성들이 나온다는 거다. 우리나라 영화 산업에 귀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은 많지 않았으니까.”

-다양한 엄마들이 나오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갈등도 그려졌는데.

“시나리오에서부터 대사들이 참 섬세하게 쓰여 있었다. 엄마로 나오신 오미연(명자) 선생님한테 실제로 내가 엄마한테 하는 말이랑 똑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효진처럼 얼굴 빨개질 정도로 엄마한테 화내고 짜증내고, 상처 주는 말들을 콕콕 했던 것 같다. 요즘에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엄마’ 캐릭터를 제안 받았을 때 당혹스럽지 않았나.

“실제로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과연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 그 동안 한 번도 엄마 역할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님이 갑자기 엄마가 된 효진의 당혹스러운 감정이나 난감함을 잘 표현해 줄 것 같다며 설득했다. 오히려 직접 낳은 아이가 있는 엄마 역할이라면 접근하기 더 어려웠을 것 같다. 굳이 종욱(윤찬영)과 관계를 ‘엄마’라고 단정 짓는 게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 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니까.”

-저예산영화다보니 상영관이 적다. 그만큼 관객이 볼 기회가 적어진 셈인데 아쉽지 않나.

“아무래도 독립영화다 보니 상영관 확보에 한계가 있다. 그 안에서라도 대중들이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벤져스3’도 아니니까.(웃음) 어떻게 보면 마음이 좀 편하기도 하다. 만약 상업영화를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어벤져스’가 오고 있다면 얼마나 초조하겠나. 이건 완전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지난 해 ‘더 테이블’을 시작으로 ‘당신의 부탁’까지 저예산 영화에 출연했는데 상업영화에 흥미를 잃은 건가.

“상업영화에서는 여성들이 맡을 캐릭터가 너무 제한된다. 아무래도 남성 위주로 기획이 되고 있다. 여성들이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기회가 너무 적은데 예술, 독립영화 같은 경우는 훨씬 더 자유롭게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작품에 참여함으로써 연기적으로 해소하지 못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사실 몇 년 전부터 크고 작은 영화제에 심사위원을 하면서 단편영화, 독립영화를 진지하게 봤다. 훌륭한 인재들이 참 많았는데 이게 한국영화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들에게 좋은 영화를 알려줘서 이 시장이 잘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채식주의자로 생활하고 있는데 힘들지 않나.

“올해로 3년째다. 사실 채식을 시작한 건 건강상의 이유였는데 지금은 내 신념과 가치 때문에 유지하고 있다. 환경, 자연, 동물 보호 등에 자연스럽게 생각하다 보니 채식을 계속 하게 된다. 유제품, 달걀 등을 포함해 일체 동물성 단백질을 먹지 않는다. 오히려 채식을 하면서 먹는 즐거움을 얻고 있다. 유럽만 해도 채식 인구가 훨씬 많고, 가까운 일본 교토만 가도 채식 레스토랑이 굉장히 많다. 꼭 채식을 하는 게 힘든 것만은 아니다. 내가 즐겁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보고 싶다.”

-40대를 목전에 뒀는데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나.

“어렸을 때도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마치 의무인 것처럼 때 되면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해야 되나 싶었다. 그렇다고 비혼주의자는 아니다. (웃음) 자연스럽게 동반자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

-하고 싶은 캐릭터들이 아직 남았나.

“왜 그런 것 있지 않나. 남들이 말리고 뭐라 해도 ‘내가 선택한 내 길을 가겠소’라는 성격을 띤 캐릭터들. 때로는 악역이 될 수도 있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길을 가려고 하는 캐릭터라면 연기하고 싶다. ‘전우치’ 당시 자존감이 높고 자아도취한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그걸 확장해서 만든 역할이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건 곧 요즘의 가치관과 맞닿아있는 건가.

“그런 것 같다. 앞으로 인간 임수정이 살아갈 때 좀 더 주체적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로서도 마찬가지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선택하면서 살고 싶다. 무언가를 포기하더라도 말이다. 포기하는 게 생기더라도 아쉬워하지 말자고 생각한다.”

-올해 계획이 있다면.

“올해 안으로 에세이집을 발간하는 게 목표다. 출판사와 계약도 계약이지만 자꾸 이렇게 말하고 다녀야 책을 쓸 것 같다. (웃음) 하반기에는 좋은 드라마나 영화로 대중과 만나고 싶다.”

사진=CGV아트하우스·명필름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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