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정진영] 기상캐스터 출신으로 다양한 방송에서 예능인 겸 진행자로 활약했던 안혜경.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뒤부터의 행보는 그리 쉽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기대하는 것과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자신의 능력을, 재능을 보여 줄 기회는 점점 줄었다. 연극 ‘임대아파트’로 대학로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안혜경은 이 작품을 통해 정상에 오르지 못 한 이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주고 싶다고 했다.

-‘임대아파트’로 무대에 서게 됐다.

“김강현 오빠와 약 10년 전쯤 ‘임대아파트’를 같이 한 적이 있다. 그 때는 둘 다 지금과 다른 역이었다. 강현 오빠가 ‘옛날 작품 같이 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예전에 워낙 대학로 배우들이 좋아했던 작품이라고 해서 좋은 마음으로 다시 올려보자고 이야기했다. 배우들이 보러 와서 평가할까봐 겁은 났지만, 막상 개막하고 나니 보람이 크다.”

-‘임대아파트’를 어떤 작품으로 볼 수 있을까.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세 커플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할 수만은 없잖나. 아마 이 세 커플의 이야기를 보면서 자신들이 살아가는 상황을 돌이켜 보고 공감하거나 사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공감됐던 장면이 있나.

“극에서 내가 맡은 윤정현 역의 오빠인 윤정호(허동원/정청민/김동민)가 배우 지망생이다. 어떻게든 자신을 알리겠다고 종이컵에 사진이랑 연락처 박아서 영화 제작사들에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 이 종이컵이 신인, 무명 배우들 사이에서 한 때 정말 유행했다. ‘전화번호도 있고 이름도 있어서 쓰지도 못 하고 버리지도 못 한다’는 대사가 있는데, 정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보통 프로필은 책자 형태로 만들어서 돌리는데, 그런 프로필들 사이에서 튀어서 살아남아 보겠다고 만든 게 그런 것들이었다. 박카스나 소주에 사진이랑 연락처 붙여서 돌리는 사람도 있었고.”

-개막 초기부터 관객들이 많이 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보통은 입소문이 막바지에 나서 마지막 공연 즈음부터 객석이 찬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초반부터 많은 분들이 들어 주고 있다. 이번 공연의 경우에는 우리가 홍보에 더 힘을 실었던 것도 있다. SNS를 이용해서 계속 홍보를 했거든. 또 대학로에서 ‘임대아파트’라는 연극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었다는 점도 도움이 된 것 같다.”
 
-10년 전에는 홍정현이 아닌 유카로 ‘임대아파트’ 무대에 섰었는데.

“그 때는 내가 유카였고, 김강현 오빠가 유카의 연인 홍정수였다. 사실 그 때가 더 좋았다 싶기도 하다. 지금보다 부담이 덜했던 것 같아서. (웃음) 사실 그 때는 공연 기간도 일주일 밖에 안 됐기도 하고, 내 역량도 부족했던 것 같다.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내가 잘 파악을 못 했었다는 생각이다. 정현이가 왜 저렇게 화를 내고 슬프게 우는지, 그런 감정을 전혀 이해 못 했다. 이번에 정현 역을 맡아 연습을 하다 보니 얘가 왜 이러는지 이제야 알겠더라. 왜 유카를 그렇게 짠하게 봤는지도 알겠고. 그런 부분들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관객들에게 어떤 작품으로 기억되길 바라나.

“꿈과 행복, 웃음을 주는 작품이 됐으면 한다. 이렇게 실패하고 좌절하고 바닥까지 가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꿈이 있고 희망이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었다. 시원하게 웃고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돌아가신다면 감사하겠다.”

-꿈을 이루지 못 해도, 실패해도 괜찮을까.

“물론이다. 꿈을 향해 나아갔지만 실패한다면, 거기서 파생된 또 다른 길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한다. 정상을 찍고 있으면 내려갈 길밖에 없잖나. 정체기를 겪거나 바닥에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나 역시 무명배우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힘든 시간을 겪었다. 그 때는 정말 일도 하기 싫었는데, 지금 이렇게 다시 연극 무대에 서 있다. 그 시기에 내게 힘을 줬던 한 마디나 사건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가능했다고 본다. ‘임대아파트’가 누군가에게 그런 작품이 됐으면 싶다.”

사진=MQDAY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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