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결혼 “두려움의 대상” 인식 젊은이들 많아져
정부, 126조 투입…출산은 ‘투자하는 현재’ 아닌 ‘두려운 미래’
한스경제-인구보건복지協 '저출산 극복' 공동캠페인 [10]

[한스경제 최형호 기자] #올해 서른이 되는 장인주(여·가명)씨는 결혼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장씨는 어려서부터 미술을 전공한 어머니가 화가가 되는 꿈을 결혼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일들을 알고 있었다. 장씨에게 결혼이란 일종의 ‘희생’이라는 것을 무의식 속에 갖고 있었던 가치관이 돼버렸다. 장씨 어머니 역시 장씨가 결혼해서 살림과 양육에 얽매여서 사는 것보단, 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를 바란다. 장씨는 그간 직장에서 모아둔 돈으로 회사 근처인 서울 강남구 한 오피스텔을 매입하며 결혼자금 대신으로 사용했다.

#직장인 주진길(39·가명)씨는 두달 전 서울 동작구 이수역 근처 오피스텔로 이사를 왔다. 혼기가 꽉 찼으니 결혼을 해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결정한 궁여지책이다. 주씨는 혼자 사는 것에 대해 스스로 만족감을 느낀다. 주씨의 가치관은 확고하다. “연애는 좋지만 결혼은 싫다”이다.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싫어 결혼은 질색이라는 주씨는 현재 오로지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사는 것 욜로의 삶에 푹 빠졌다. 요즘 흔히 말하는 욜로(YOLO)족이 된 것이다.  욜로족이란 ‘인생은 한 번 뿐이다’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해 소비하는 태도를 강조하는 현대인들로 미래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말한다.

결혼 적령기인 20대~30대는 ‘가족’을 얻는 대신 ‘나’라는 존재에 더욱 의미를 두는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장씨나 주씨처럼 결혼 적령기인 20대~30대는 ‘가족’을 얻는 대신 ‘나’라는 존재에 더욱 의미를 두는 모습이다. 가정을 이루기보단, 스스로의 삶에 더욱더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다. 설령 결혼을 한다해도 아이 낳는 것을 주저한다. 맞벌이가 필수인 세상에서 아이를 잘 키울 수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그만큼 결혼을 ‘꼭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젊은 층에서 확산되는 모습이다. 정부가 잇따른 저출산 정책을 내놔도, 젊은 층들이 실제 피부로 체감하는 것을 이례적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결혼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젊은 층들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실제 서울시의 ‘서울 가구·가족의 모습’ 통계 자료에 따르면 ‘결혼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2006년 28.9%에서 2014년 41.0%로 늘었다. 반면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응답은 13.5%로 2006년(23.5%)보다 10%포인트 감소했다.

여기에 과거 ‘결혼은 필수’라는 사회 통념 속에서 살아왔던 부모 세대가 ‘황혼 이혼’이 늘어나면서 결혼에 대한 인식이 깨졌고, 비혼·1인 가구 등 새로운 문화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의 '2017 혼인·이혼통계'에 따르면 전체 이혼의 31.2%는 혼인 지속기간이 20년 이상 된 부부였다. 평균 이혼 연령 또한 남성 47.6세, 여성 44세로 전년보다 0.4세 상승했다. 인구 1,000명 당 혼인 건수를 뜻하는 조혼인율은 5.2건으로,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를 찍었다.

반면 2016년을 기점으로 국내 오피스텔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인가구가 증가하면서, 이들을 공략해 건설사들이 오피스텔 분양이 성공적으로 이뤄지자, 가구 규모를 소형으로 줄이더니, 이제는 1인 가구를 겨냥한 오피스텔을 속속들이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의 ‘2016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 비중은 27.9%로, 가구수 유형 중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1,936만 가구 중 539만 가구를 기록했다. 덩달아 1인 가구가 국내 가구 유형 중 최대 비중을 차지하면서 소형 아파트, 소형 오피스텔 등 주거문화의 패러다임도 변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피스텔과 같은 소형 공공주택의 분양율도 상상을 초월한다.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소형 공동주택 실거래가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기준 공동주택의 매매거래량 총 56만1,268건 중 26만4,416건이 전용면적 60㎡ 이하의 소형공동주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에 가까운 47%를 차지했다.

결혼 적령기인 2030세대가 비혼이 늘어나면서 대한민국 주거문화를 바꿔놓는 모습이다. 소형 평형의 인기가 지속되자 몸값도 자연스레 오르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전국 소형공동주택(전용면적 60㎡ 이하)의 3.3㎡당 가격은 2010년 대비 26% 올랐다. 반면 같은 기간 ▲중형(전용면적 60~85㎡) 주택은 17% ▲대형(전용면적 85㎡ 초과) 주택은 2% 상승하는데 그쳤다.

특히 서울 등 수도권에서 소형 오피스텔의 거래량이 두드러진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살펴보면 올 1~5월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 위치한 오피스텔의 거래량 중 소형 오피스텔(전용면적 21~40㎡)이 58.4%에 달한 것을 알 수 있다. 총 8,244건 중 절반 이상인 4,814건이 소형 오피스텔이었다.

2030세대의 1인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8·2 부동산대책의 영향으로 규제가 강화됐으나 ‘소형’ 오피스텔에 대한 인기는 더해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1인 오피스텔이 늘어나는 만큼 저출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는 데 있다. 젊은층들이 오피스텔에 산다는 것은 그만큼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방증인 셈이다.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수포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다./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수포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청년 고용 할당제, 청년 신혼 부부 주거 지원, 아동 수당 등이 현재 국정 과제 중 우선순위에 포함돼 시행 중에 있지만,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젊은층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인 이모(33)씨는 “아이가 생기면 어느 정도의 양육비를 받을 수 있고, 신혼부부들을 위한 아파트가 많이 생겨난다지만, 실제적으로 신혼부부 주거공간도 직장과 거리가 멀고, 막상 아이를 낳는다 해도, 턱없이 부족한 양육비(매월 10만원) 때문에 이마저도 고민”이라며 “결혼은 하겠지만, 아이는 지금보다 나은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낳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정부는 지난 2006년부터 작년까지 12년간 저출산 극복에 126조여원을 투입했지만 현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엔 사상 처음으로 신생아 수가 40만명 밑으로 떨어지고, 합계 출산율은 사상 최저인 1.05명을 기록했다. 출산 선행 지표인 혼인 건수(26만4,500건)가 지난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저출산 그늘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아이를 낳더라도, 부모로부터 버려지는 아이, 즉 입양아도 세계에서 손 꼽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 미국 국무부 입양통계에 따르면 작년 미국에 입양된 아동 88국 4,714명 중에서 한국(276명) 아동이 중국(1,905명), 에티오피아(313명)에 이어 세 번째를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저출산을 해결하려면 출산 장려 정책에서, 삶의 질을 개선해 평범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제거하는 복지체제 변화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저출산 현상은 인구 문제가 아닌 복지 제도의 문제”라며 “저출산 쇼크는 정부의 국정과제와는 별개로 한국의 ‘역진적 선별주의 복지체제’가 시민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불평등을 높여 개인의 출산권을 가로막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꼬집었다.

복지가 절실한 저소득층일수록 복지의 혜택을 누리기 힘든 한국 복지제도의 구조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이 저출산 쇼크로 이어진 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가 가속화하면서 대기업·정규직 중심으로 설계된 복지체제에서 소외되는 이가 크게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하는 이들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미래가 희망이 없으니,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역설적으로 ‘또 다른 희망’을 얻는다는 것이 젊은 층들의 심리에 묻어난다는 것이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출산을 가로막는 것은 현재의 삶의 질도 기인하지만 ‘희망 없는 미래’일 수 있다”며 “사회구성원 개개인에게 삶의 희망을 주려면 정책만으로는 어렵다.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는 사회문화적 변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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