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화제작 ‘버닝’은 제목만큼 뜨겁고 파격적이다. 영화 ‘시’(2010년) 이후 8년 만에 복귀한 이창동 감독이 그 동안 그리지 않은 청춘의 민낯을 파격적이고 섬세하게 표현하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길고 긴 러닝타임 속 이어지는 수수께끼가 결국 명확한 해답이 없다는 점과 청춘을 그리는 방식은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한국적 정서를 녹인 작품이다.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 받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영화 '버닝' 리뷰

영화는 작가를 꿈꾸지만 현실은 ‘시궁창’인 종수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구부정한 자세에 멍한 눈빛으로 무료한 삶을 살아가던 종수는 어느 날 우연히 해미를 만난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해미는 종수에게 호기심 대상 그 이상이다. 이후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 중 만난 남자 벤을 종수에게 소개한다. “노는 게 직업”이라는 벤은 외제차를 몰고 다니고 으리으리한 집도 있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헛간을 태우는 게 일이라며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종수는 벤에게 위화감과 질투를 느끼고 자꾸만 그를 따르는 해미의 모습을 보며 점점 자괴감을 느낀다.

‘버닝’은 원작의 큰 틀을 기초로 하되 캐릭터들의 감정 흐름에 초점을 맞춘 전개가 돋보인다. 각박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을 무미건조하게 표현하며 현실감을 극대화한다. ‘작가’라는 꿈을 품고 있지만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종수의 무력한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창동 감독 특유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느낄 수 있다. 선과 악 등의 도덕적 평가에 대한 답을 내리지 않은 채 오히려 관객에게 답을 묻는다. 그 동안 ‘박하사탕’ ‘밀양’ ‘시’ 등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고찰하는 방식을 보인 이창동 감독의 스타일은 여전하다.

다만 청춘을 표현하는 방식은 아쉬움이 남는다. 무력함을 해소하기 위해 더 허무한 짓을 벌이는 종수의 모습이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또 반복되는 메타포와 길고 긴 종수의 ‘해미 찾기’가 지루함을 자아낸다. 소설과 달리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결말은 찝찝함을 남긴다.

물론 이창동 감독이 영화를 표현한 눈이 혜안인가에 대한 판단 여부는 관객의 몫이다. 누군가는 찬사를 보낼 수도, 누군가는 열띤 비판을 할지도 모른다.

유아인의 연기는 가히 돋보인다. “표현의 강박에서 벗어났다”는 그의 말처럼 종수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며 영화의 몰입감을 더한다. 미스터리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스티븐 연은 한국어 발음이 사뭇 아쉽다. 이번 영화가 데뷔작인 전종서는 자유분방한 해미를 생동감 있는 표정 연기로 표현한다. 다만 대사 호흡과 발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러닝타임 148분. 17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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