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재웅] 외국계자본이 국내 기업에 대한 경영 간섭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장기 성장을 위한 구조 개편에 어깃장을 놓거나, 직접 경영하는 기업에서는 '갑질'을 일삼으며 시장 질서를 해치는 상황이다.

외국계 자본의 '뒷배'는 바로 한미FTA의 대표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ISD(Investor-State Dispute)다. 현행법상 빈틈을 이용해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 자체를 뒤흔드는 것은 물론, 뜻대로 안되는 경우에는 정부에 책임을 물으면서 정책 간섭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ISD란 해외투자자가 국가의 법령·정책 등으로 피해를 입었을 경우,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2011년 체결된 한미 FTA에 포함됐다. '먹튀'를 목적으로한 외국 자본이 늘어날 가능성 등에 따라 대표적인 '독소 조항'으로 평가받았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당초 이날 열기로 했던 현대차그룹 구조개편을 위한 주주총회를 최근 취소했다. 엘리엇을 비롯한 외국계 자본들이 구조개편안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주주들도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사진=연합뉴스

당시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구조개편안은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고, 그룹의 체질을 미래차 산업에 집중시키도록 기획됐다. 모비스를 그룹 지주사이자 미래차 기술 개발 기업으로 격상시키고, 모듈·AS 사업부를 현대글로비스에 흡수시키는 내용이다.

엘리엇은 모비스와 글로비스 0.61:1의 합병 비율에 문제를 제기했다. 모듈·AS 사업이 모비스의 핵심 사업이었다면서, 모비스 기업 가치 하락 정도에 비해 주주 보상이 적다는 이유를 들었다.

전문가들은 엘리엇의 주장이 장기적인 그룹 경영을 고려하지 않은, 단기적인 모비스 주가 상승만을 위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모듈·AS 사업이 모비스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래차 산업에서는 마이너스 성장까지 예상되는 사양산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엘리엇이 국내 경영환경을 무시했다는 점에 개편안 반대 목적을 의심하고 있다. 순환출자 해소와 정몽구 회장 부자가 1억원을 넘는 세금을 납부키로 한 부분 등이다. 이들 조치는 정부의 지지를 받았을뿐 아니라, 국민들 지지까지 이끌어내면서 기업 이미지를 크게 제고한 것으로 평가 받은 내용이다. 하지만 엘리엇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현대차그룹은 일단 개편안을 보완해 다시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엘리엇이 이에 응할지도 미지수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현대모비스가 지주사로 올라서면 금산분리 규제에 따라 금융 계열사를 분리하게 되고, 결국 단기적 주가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미래를 염두에 둔 현대차그룹 개편 목적 자체가 사실상 단기 투기를 목표로 하는 엘리엇에는 불필요한 작업인 셈이다.

엘리엇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은 불과 1.4%다. 그럼에도 그룹 경영권에 이만큼 간섭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내에 경영권 방어수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재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미 우리나라는 외국계 자본의 공격으로 '먹튀'를 당한 사례가 많다. 2003년 SK를 공격해 9,000억원대 차익을 남기고 떠난 소버린이나, 2005년 KT&G를 공격해 1500억원대 차익을 실현한 칼아이칸 등이다.

지난 16일 상장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는 차등의결권 주식이나 포이즌필과 같은 제도를 도입해달라며 정계에 호소하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 주식 의결권에 차등을 주거나, 경영권 침해 발생 조짐이 보이면 기존 주주에게 신주를 싸게 매입할 수 있게 허용하는 제도다.

18일에는 한국경제연구원도 한일간 지배구조 유형을 비교하면서, 우리나라에 경영권 방어수단이 없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미국계 헤지펀드로, 경영권 간섭 시도 50번 중 49번을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엇 매니지먼트 로고. 엘리엇 홈페이지 캡처

이같은 외국 자본의 횡포로 재계 등에서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부는 제도 개선 가능성을 들여다보는 모습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8일 상법·자본시장법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이날 국회 법제사업위원회에 출석한 김 위원장은 외국자본의 경영권 공격 위법성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국계 자본 횡포에 대한 정부 개입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의미 있는 경영권 보호 제도를 시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바로 한미 FTA에서 '독소 조항'으로 평가받았던 'ISD(투자자-국가간 소송)' 때문이다. 만약 정부 법령·정책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할 경우, 엘리엇은 정부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

이미 엘리엇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 개입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면서 정부에 ISD를 제기한 상태다. 피해 요구액은 무려 7,000억원 규모다. 정부가 이제와서 경영권 방어수단을 마련한다고 해도, ISD 소송에 휘말릴 수 있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정부는 외국계 자본의 '갑질'에도 움직이기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계 사모펀드 로하틴그룹이 운영하는 bhc는 최근 가맹점에 주요 식자재를 터무니없이 비싸게 공급하고 휴업일을 강요하는 등 횡포를 일삼았다.

이에 대해 bhc는 계약에 따른 정당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체 가맹점의 절반을 넘는 bhc 점주들은 'bhc 점주협의회'를 구성하고 본사와의 법정 다툼까지 예고한 상태다. 협의회는 로하틴그룹이 이익을 극대화해 bhc를 팔아넘길 속셈으로 점주들을 '쥐어짜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역대 ISD에서 투자유치국 승소확률은 37%에 불과하다. 국내에서는 론스타와 이란 다야니가 제기한 소송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정부 승소 가능성은 절반 정도로 예상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외국계 자본의 경영권 침해에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사진=연합뉴스

재계 관계자는 "이미 ISD는 국내에서 악법으로 잘 알려져있다. 국내에서 건전한 경영을 할 생각이 있는 자본이라면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ISD를 제기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GM은 최근 정부의 변덕에 큰 짐을 짊어지게 됐지만, ISD 소송까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으로부터 창원공장 비정규직 774명을 직접 고용하라는 시정 명령을 받은 것이다.

한국지엠은 앞서 2012년 우수 하도급 업체로 선정되는 등 적법한 운영을 이어왔다. 따라서 갑작스런 정부 조치에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이제야 첫발을 내딛은 정상화 조치에도 큰 걸림돌을 맞이한 상황. 하지만 GM은 최대한 친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지엠은 정상화를 위해 국민 신뢰 회복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며 "굳이 ISD를 선택해 '외국 자본'임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국내에서 정상적인 경영을 목적으로 진출한 자본이라면 당연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김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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