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서연] 채용비리 소용돌이에 휘말린 은행권이 현직 은행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초유의 사태에 꽁꽁 얼어붙었다. 은행권 채용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30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KEB하나은행과 마찬가지로 같은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국민은행도 긴장감이 팽팽해졌다. 두 은행 모두 수장이 의혹에 직접 걸려있는 상황이다. 특히 KEB하나은행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하나금융그룹의 수장인 김정태 회장도 채용비리 의혹에 연루돼 있어 회장과 행장의 ‘연쇄 낙마’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올 초 발표한 금융혁신 추진안에서 채용비리가 적발된 은행에 대해서는 기관장 해임 건의까지 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KEB하나은행장을 시작으로 ‘무더기’ 경영 공백 사태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서 함영주 KEB 하나은행장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6월 1일 함 행장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열린다. KEB하나은행은 은행 내외 주요인사의 추천을 받은 지원자를 특혜 합격시켜준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아왔다.

지난 4월 금감원은 2013년 하나은행 채용비리 정황 32건을 추가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김 회장과 함 행장으로 추정되는 채용비리 정황을 밝혀냈다. 이 밖에도 명문대나 해외 유명대학 등 특정 학교를 우대한 학교 차별 사례와 남녀 차등채용을 계획적으로 추진한 부분도 함께 적발됐다.

당시 KEB하나은행은 “김 회장은 지원자는 물론 지원자 부모도 모른다”며 “추천 사실 자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함 행장의 경우 “사실관계를 확인해보니 해당 시청 입점 지점의 지점장이 추천한 것이고, 함 행장이 당시 충청사업본부 대표로 있다보니 잘못 전달됐다”고 부인한 바 있다.

앞서 검찰은 지난 29일 김 회장을 소환조사했다. 검찰의 칼날이 최종적으로는 회장을 향해있다는 분석이다. 금감원은 고위 임원 등 추천자 명단이 담긴 ‘VIP 리스트’에 ‘김○○(회)’라는 표현이 있는데 ‘(회)’는 통상 회장이나 회장실을 의미한다는 인사 담당자의 진술이 나왔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현재로선 영장 실질심사 결과를 지켜볼 뿐”이라는 조심스러운 답변을 내놨다.

채용비리 의혹으로 물러난 사례가 있으나, 현직 시중은행장에 대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이례적이라, 함 행장에 대한 영장 심사에 은행권의 관심이 모일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지자마자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함 행장이 구속될 경우 직위해제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KEB하나은행은 지난 8일 채용비리에 연루된 임원 두 명을 직위해제했다. 구속 여부를 떠나서 한 조직의 수장이 의혹에 연루된 사실 자체로 하나금융그룹의 핵심계열사로서 은행 이미지에 흠집도 불가피하다.

지난 3월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사에서 압수수색을 끝낸 검찰 직원들이 압수품을 들고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KEB하나은행 다음 타자로는 국민은행이 지목된다. 국민은행은 20명으로 된 ‘VIP 리스트’를 관리하며 최고 경영진의 친인척 등을 특혜 채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2015년 공채에서 전원 서류전형을 통과했고, 면접까지 가면 합격했다. 이들 중 특혜가 의심되는 3명에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종손녀가 포함됐다. 윤 회장의 종손녀가 서류전형과 1차 면접에서 최하위권에 들었다가 2차 면접에서 최고 등급을 받아 4등으로 합격한 것이 특혜채용 의심 사례로 꼽혔다.

검찰은 지난 3월 윤 회장의 자택과 인사담당자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같은 달 국민은행 채용비리와 관련 검찰 수사를 받는 국민은행 인사 담당자를 구속했다.

지난 2월 검찰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은행 본점 압수수색을 마친 뒤 관련 물품을 가지고 밖으로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은행권에서는 지난 3월만 하더라도 채용비리 의혹에 휘말린 은행의 인사부 관계자들이 구속된 여파가 최고경영자(CEO)를 끌어내리는데까지 미칠 것이라는 예상을 했지만, 이를 최대한 자제하고 외면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 예상이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자 납작 엎드린 모습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얘기도 많이 나왔지만 실무자 구속은 전초전이고 제대로 된 증거를 잡아 윗선을 제대로 저격한 것 같다”며 “함 행장의 구속 여부에 따라 (나머지 은행들의) 갈피가 잡힐 듯하다”고 내다봤다.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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