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재웅]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에 이어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구속을 면하면서 '유전무죄'라는 국민적 공분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법원이 관대한 태도를 견지하는 상황에서 한진그룹 오너 일가가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을지 국민 이목이 집중된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4일 늦은 밤 이 전 이사장 구속 영장 기각을 결정했다.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지난 4일 구속 영장 기각 이후 자택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오전 검찰에 출석했던 이 전 이사장도 불과 13시간여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법원은 구속 영장 기각 이유에 대해 범죄혐의 일부의 사실 관계 및 법리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피해자들과 합의한 시점과 경위 등을 보면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고 볼 수 없다며, 증겨 인멸 염려도 없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법원의 구속 영장 기각이 실질심사 당일 피해자 중 5명에 처벌불원서를 받은 영향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6일 경찰 등이 이 같은 사실을 밝힌 것. 당초 처벌을 원치 않는다던 1명을 합하면 피해자 11명 중 절반을 넘는 6명이 이 전 이사장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특히 유일하게 영상 증거를 갖고 있던 호텔 공사장 폭행 피해자도 처벌불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전 중 폭행을 당한 운전기사도 뜻을 같이 하면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적용도 어렵게 됐다. 이들 중 일부는 이 전 이사장으로부터 수억대 합의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법원은 이날 이 전 이사장의 변호인단으로부터 ‘분노조절장애’ 진단서를 받았던 것도 뒤늦게 알려졌다. 검찰은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피해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며 구속 필요성을 강변했지만, 법원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이 전 이사장 변호인단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도 4일 인천세관에 출석해 밀수 등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앞서 ‘물컵 갑질’을 일으킨 장본인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도 비슷한 이유로 구속을 면한 바 있다. 당시에도 법원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법리상 다툼의 소지가 있다며 구속을 기각했다.

국민들은 법원이 또다시 한진그룹 오너일가에 관대한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숨기지 않고 있다. 막대한 합의금으로 구속 기각을 이끌어냈다며 ‘유전무죄’라는 반응도 잇따랐다.

실제로 청와대 홈페이지 청원게시판에는 이 전 이사장을 구속하라는 내용을 포함해, 기각 결정을 내린 박범석 판사를 조사해야한다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비슷한 시기 국회의원을 폭행해 구속된 일반인의 사례를 들면서, 구속 기준이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대한항공 직원연대도 이 전 이사장의 구속 기각 결정에 거세게 반발하는 모습이다. 5일 구속 영장 기각 직후에는 법원을 ‘갑의 편’이라고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진그룹은 경찰과 세관 등 11개 정부부처로부터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제 사법기관을 믿을 수 없다면서 저항의 수위를 높인 ‘2차전’을 준비한다는 발표도 내놨다. 집회보다는 게릴라성으로 갑질 근절 캠페인을 이어가면서, 종전과는 다른 대규모 이벤트를 벌인다는 계획이다.

단 이 전 이사장이 구속될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다. 우선 경찰은 이 전 이사장의 특수?상습 폭행 등 혐의를 재검토해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다.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와 밀수?탈세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를 앞두고 있다.

오너 일가에서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조만간 구속 영장 심사를 받을 예정이다. 한진그룹 일가의 밀수?탈세에 중심 인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인천본부세관은 대한항공과 오너 일가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2.5t(톤)의 밀수 의심 물품을 발견했고, 이중 상당수가 조 전 부사장의 것으로 확인했다. 조 전 부사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진 ‘DDA' 코드가 붙은 물품도 발견됐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20여년 전 인하대학교 부정 편입학 의혹으로 교육부 등 조사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 전 부사장은 4일에서 5일에 걸쳐 관련 조사를 받으면서 모든 사실을 부정한 상태다. 건강상 이유를 들어 밤샘 조사를 거부하기도 했다. 세관은 이른 시일 내에 조 전 부사장을 추가 소환해 구속 영장 청구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불법파견’ 의혹으로 조사를 앞뒀다. 자택 경비용역을 대한항공 계열사로 계약했다는 내용이다. 해당 경비용역 업체가 조 회장에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조 회장은 근로기준법상 폭행 혐의에 대한 조사도 받게될 전망이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20년 전 인하대학교에 부정으로 편입한 혐의로 교육부에 조사를 받고 있다. 학점 이수 자격과 성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데다가, 서류를 조작해 출신 대학을 4년제로 속였다는 내용이다. 사실로 밝혀져도 구속이나 형사처벌 가능성은 낮지만, 대한항공 경영권을 유지하는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김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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