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서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이 약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으나, 은행권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월드컵과 연계한 금융상품이나 이벤트가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월드컵 기간 중 본선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전 직원이 붉은 응원복을 입거나 월드컵 개최 국가의 화폐를 환전할 시 수수료를 할인해 주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을 했던 이전과는 크게 대조된다.

지난달 23일 개관식 행사장 축구퍼팅게임존에서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이 시축을 하고 있다. 사진=KEB하나은행

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은행 중 대한축구협회 공식 후원사인 KEB하나은행만 러시아 월드컵 관련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관련상품 출시, 환율 우대, 월드컵 체험존 마련 등 마케팅 내용도 다양하다.

먼저, 축구 국가대표팀 승리를 기원하는 콘셉트로 예·적금을 출시했다. 지난 4월에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성적에 따라 우대금리를 얹어주는 ‘오! 필승코리아 적금 2018’을 내놨다. 16강에 진출하면 연 0.3%P, 8강 진출 시 0.6%P를 더해주는 상품으로, 최고 연 3.0%(3년)의 금리를 줬다. 가입 고객 중에서는 추첨을 통해 국가대표팀 평가전 입장권과 K리그 경기 입장권, 대표팀 사인 유니폼·축구공 등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함께 진행했다.

5월에는 가입기간 1년짜리 정기예금에 가입하면 연 2.2% 금리 혜택을 제공하는 정기예금 특별금리 이벤트를 열었다.

뿐만 아니라, 수요가 많지 않고 주요 화폐도 아니어서 환율 우대를 잘 하지 않는 루블화도 월드컵이 열리는 것을 기념해 환율 우대 권종에 포함시켰다. 지난 5월 말까지는 러시아 루블화 환전 시 최대 10%까지 환율을 우대해 줬다.

6월 말까지는 K리그 흥행 분위기 조성을 위한 ‘KEB하나 축구놀이터’를 본점 로비 1층에 설치해 운영한다. 스크린축구존, 축구퍼팅게임존, ‘FIFA 온라인4’ 게임부스, 축구국가대표팀 포토존 등이 마련돼 축구와 관련된 다양한 체험과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

KEB하나은행은 지난 4월 23일부터 5월 말까지 주요 통화에는 최대 90% 환율우대를 제공하고 러시아 루블화 환전 시 최대 10%까지 환율을 우대해 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사진=KEB하나은행

공식 후원사로서 다양한 마케팅을 진행하는 KEB하나은행을 제외하면 월드컵 응원 열기는 은행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이같은 ‘조용한 월드컵’에는 네 가지 이유가 꼽힌다.

가장 큰 이유로는 ‘매복 마케팅’을 금지하는 제재가 강화되면서 월드컵을 마케팅에 이용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 꼽힌다. 매복 마케팅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나 국제 행사 등의 공식 후원사가 아닌 기업이 교묘히 규제를 피해 가는 마케팅 기법을 말한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국내 축구협회에 공식 후원사가 아니면서 월드컵 관련 마케팅을 벌이는 기업들을 단속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이미 올해 초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매복 마케팅을 엄하게 징계하기로 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전 세계적인 ‘빅 이벤트’지만 이같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마케팅을 할 만큼 은행과 고객 모두에게 매력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퍼진 것 같다”며 “지난 올림픽에서도 공식 후원사가 아닌데 (올림픽) 연관 마케팅을 했다가 곤란했던 금융사가 있었지 않냐”고 설명했다.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여도 평창 올림픽과는 상황이 다른 것도 이유다. 평창 올림픽 역시 공식 스폰서인 KEB하나은행만 관련 상품을 판매할 수 있었으나, KEB하나은행뿐만 아니라 개별 종목이나 선수를 후원하는 금융사들도 함께 큰 주목을 받았다.

봅슬레이, 스켈레톤, 쇼트트랙, 피겨, 컬링 등을 후원하고 있는 KB금융그룹이 대표적이다. KB금융의 핵심 계열사인 국민은행은 지난 4월 자동차대출 브랜드 ‘KB국민은행 매직카’ 광고모델로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 선수를 발탁하기도 했다. 올림픽은 월드컵과 달리 이른바 ‘셀럽 마케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정치 이슈와 맞물려 월드컵 열기가 뜨겁지 않은 이유도 있다. 대북 이슈와 지방선거 때문이다. 12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월드컵 개막을 하루 앞둔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점도 관심을 분산시키는 요인이다.

마지막으로는 대표팀 성적 부진으로 인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저하됐다는 이유가 꼽힌다. 대표팀이 어느 나라와 경기를 하는지도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고,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에 대해 외신들은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올 초 국내에서 열리는 큰 스포츠 행사가 있었고, 월드컵에 앞서 국내에서 굵직한 이슈가 많은 상황”이라며 “월드컵 마케팅에 신경 쓸 만한 여력도 없을뿐 아니라 굳이 무리해서 나서지 말자는 분위기가 암묵적으로 형성돼 있는 듯하다”고 내다봤다.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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