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거장’으로 불리는 이창동 감독이 영화 ‘버닝’으로 돌아왔다. 이 감독은 이 영화에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자화상을 그리며 2030 세대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공감을 꾀하려 했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의 노력과 달리 ‘버닝’의 국내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창동 감독은 후회하지 않았다. “이런 방식이 낯설다면 낯설지”라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 동안 언론인터뷰를 꺼린 이유가 있다면.

“얼굴을 많이 노출시키는 직업(2003년 제6대 문화관광부 장관)이라 많이 불편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아 힘들었다. 그 다음부터 노출 빈도를 줄이자는 생각으로 이렇게 됐다. 사실 작가나 영화감독은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서서 말하는 게 홍보에도 큰 효과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집 주방장이 짜장면만 잘 만들면 되지 않나?”

-‘버닝’은 제 71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유일한 한국작품이다. 수상 불발에 대한 아쉬움이 클 텐데.

“사실 수상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나도 심사위원을 해 봐서 아는데 매년 좋은 작품이 늘 1~2편 떨어진다. 작품상을 한 편밖에 못 주기 때문에 호평 받은 작품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근래에 한국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상을 탄 적이 없지 않나. 만약 ‘버닝’이 수상했다면 활력이 됐을 텐데 아쉽다.”

-국내 반응이 많이 엇갈렸다. 호평과 혹평이 공존했다.

“아직까지 이 영화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영화적 관습에 많이 벗어나 있기 때문에 모든 관객이 쉽게 받아들일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버닝’의 질문을 질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종수(유아인), 벤(스티븐 연), 해미(전종서)의 서사가 다 완벽하지 않다. 결국 세상엔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을 담고 싶었다. 혹자는 ‘청년의 분노를 왜 이렇게밖에 해결이 안 되냐’고 하더라.”

-현대사회는 ‘답’이 없다는 말인가.

“내가 사는 세상엔 세상의 답이 있었다. 정치적이든, 민주화 문제든. 믿음을 갖고 살았던 것 같다. 그게 답이라기보다는 ‘답이 있다’고 믿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지금 사회는 답이 없다. 세상은 점점 편리해지는데 나는 점점 왜소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점점 없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에 분노하지만 정작 변한 건 별로 없다. 그게 일종의 미스터리다. ‘버닝’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끔찍한 것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담았다.”

-젊은 관객들은 해미를 통해 비춰진 여성상이 아쉽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현재 청년들의 이야기라고 돼 있지만 ‘청년의 이야기’라고 단정 짓는 것은 거북하다. 청년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청년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느냐는 여러 시각이 있다고 본다. 사실 갑자기 파주로 가서 사는 종수보다는 해미가 오히려 보통 한국 청년들의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힘들게 살면서도 카드 빚지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청년들이 꽤 있다. 죽는 건 무섭고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해답 없는 답을 찾기도 하지 않나.”

-유아인과 스티븐 연은 어떤 배우였고, 어떤 자세로 임했나.

“유아인은 내가 원하는 걸 잘 받아들여줬다. 종수는 뭔가를 표현하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인물이 아니다. 사실 배우로서 굉장히 어려운 역할이다. 퍼포먼스 자체가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수라는 캐릭터를 잘 살렸다. 스티븐 연은 모호함의 대상, 미스터리 자체인 캐릭터다. 연쇄살인마라고 단정 지으면 설명이 쉽지만 그렇지도 않다. 스티븐 연은 벤이 느끼는 허무함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면서 힘들게 배우생활을 하다 큰 성공을 거둔 경험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의 엔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의도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한 건 아니다. 그저 던져버린 것이다. 관객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바랐다. 살인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벌거벗은 이미지 그대로. 세상에 태어난 몸 그 자체 아닌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복잡한 감정. 그게 어떤 느낌인지 그냥 관객 앞에 던져놓고 싶었다. 본의 아니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붙었는데 어쩌면 관객들이 원하는 서사는 마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영화 속 슈퍼 히어로가 구원해 줄 것이라는 서사에 매달린다. 거기에서 만족감을 얻는 듯하다. ‘버닝’같은 영화는 재미없어하는 것 같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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