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지호]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과정을 문제 삼아 이란의 다야니 측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 우리 측이 약 73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정을 받았다. 한국 정부가 외국 기업이 낸 ISD에서 패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위원회 등 정부는 국제 중재판정부가 지난 6일 우리 정부에 대해 이란 다야니가 청구한 금액 935억원 중 약 73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고 7일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다야니는 자신들이 소유한 엔텍합이 2010∼2011년 대우일렉트로닉스(이하 대우일렉)를 인수·합병(M&A)하려던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한·이란 투자보장협정(BIT)상 공정·공평한 대우 원칙을 위반했다며 2015년 9월 국제중재를 제기했다.

2010년 자산관리공사(캠코)는 대우일렉을 파는 과정에서 엔텍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그해 11월 본계약을 체결한 뒤 인수금액의 10%인 578억원을 계약보증금으로 받았지만 2011년 5월 매매계약을 해지했다. 당시에는 엔텍합이 인수대금 인하를 요구하며 대금지급기일을 넘겨 계약이 해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엔텍합은 그 후 법원에 소송을 냈고, 법원은 2011년 11월 대우일렉 채권단이 계약금을 돌려주되 엔텍합은 대우일렉의 외상물품대금 3천만 달러를 갚으라는 조정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우일렉은 2013년 동부그룹으로 넘어갔다.

이에 대해 다야니는 보증금과 보증금에 대한 이자 등 935억원을 반환하라는 취지로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연합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규칙에 따라 2015년 국제중재를 제기했다.

지난 6일 중재판정부는 캠코가 대한민국 정부의 국가기관으로 인정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한국 정부가 약 730억원 상당을 다야니 측에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한국 정부가 외국 기업에 ISD 소송을 당한 것은 총 3건이며 이 중 패소 판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첫 번째 ISD는 론스타가 2012년 11월 한·벨기에 BIT 등을 근거로 5조원대 ISD를 제기한 사건이다.

론스타는 2007년 9월 HSBC에 외환은행을 팔려 했지만 한국 정부가 승인을 내리지 않으면서 매각이 무산됐다. 결국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넘겼지만 매각이 지연되면서 가격이 떨어진 것에 대한 배상을 요구한 상태다. 여기에 론스타는 자회사를 통해 서울 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센터)를 사고 팔면서 차익을 봤는데, 한국 정부가 세금을 부과하자 이 세금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론스타와의 ISD는 2016년 최종 변론이 끝났으며 올해 안에 최종 결정이 내려질 전망이다.

두 번째 ISD는 아부다비 국영석유투자회사 IPIC의 네덜란드 자회사 하노칼이 2015년 5월에 낸 소송이다. 하노칼은 1999년 현대오일뱅크 주식 50%를 사들인 뒤 2010년 현대중공업에 1조8,000억원에 매각했다.이에 대해 한국 정부가 세금을 물리자 하노칼은 한국과 네덜란드가 맺은 이중과세방지협정을 근거로 과세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듬해 하노칼이 ISD를 취하해 마무리됐다.

이번 엔텍합 ISD는 2015년 9월에 제기한 사건이지만 론스타 사건보다 먼저 결과가 나왔다. 여기에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며 ISD를 추진하고 있는 상태다.

한편 정부는 이번 중재판정 결과에 대해 관계부처 합동의 긴급 분쟁대응단 회의를 열고 중재판정결과를 공유했으며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정부는 중재판정문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중재지법(영국중재법)에 취소신청 여부 등을 포함한 후속조치를 신속하게 검토하기로 했다.

이렇게 취소 소송을 재기하면 이날 판결에서 결정한 730억원은 취소 소송이 끝날 때까지는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취소소송에도 지면 정부 국고에서 돈을 내야 한다. 

다만 이번 사건의 경우 소송 대상자가 캠코 등 당시 채권단이어서 정부가 채권단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도 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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