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지호]미국계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의 공매도 주문 미결제 사고로 국내 증시에서 ‘무차입 공매도’가 아무런 제한 없이 가능함이 다시 공개됐다. 이에 공매도에 대한 여론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증권 서울지점은 지난달 30일 골드만삭스 인터내셔널로부터 300여개 종목의 공매도 주문을 위탁받았다. 통상 2거래일 뒤인 지난 1일 결제가 이뤄져야 하지만 코스피 3개 종목, 코스닥 17개 종목 등 20개 종목에 대한 결제가 이행되지 못했다. 미결제 주식은 138만7,968주, 6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예상한 투자자가 미리 빌린 주식을 팔고 나중에 주식을 사서 갚는 투자기법이다. 주가가 떨어질수록 이익이 난다. 현재 국내에서는 증거금을 내고 주식을 빌려와 매도하는 차입 공매도만 허용돼 있다. 주식 없이 매도가 먼저 이뤄지는 무차입 공매도는 불법이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는 주식 대차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즉 주식을 빌리지 않은 상황에서 공매도 거래를 하면서 미결제 사태가 발생했다.

앞서 삼성증권의 배당착오 지급 때도 무차입 공매도가 형식적으로 발생했다. 삼성증권은 사고 당일 주식을 법인대차 등으로 모두 정상적으로 결제했다. 당시 금융당국은 장 종료 후에야 주식 잔고 관리가 이뤄진다면서 지난달 28일 실시간 주식잔고·매매 수량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하겠다고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골드만삭스 건에서 보듯 정확히는 무차입 공매도가 발생한 후 결제일(T) 이틀 후에나 그 사실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것도 증권사 통보에 의존하고 있다.

증권사는 공매도 주문 시 차입한 주식이 T+2일 12시까지 계좌에 입고하지 못하면 기록했다가 다음달 초에 일괄 거래소에 통보하게 돼 있다. 이 기록도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이 연 1~2회 들여다보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파악하고 있어 적발 사례가 거의 없다. 또 수수료 수익을 얻는 증권사가 ‘큰손’ 외국계 투자자의 미결제 사실을 거래소에 알리기도 어렵다.

설령 무차입 공매도 물량을 T+2일에 갚지 못했다고 하더라고 기회는 더 있다. 미결제된 금액의 약 0.02%인 결제지연보상금만 내면 결제 시한을 최대 2일까지 연장해주고 있다. 물론, 이때는 거래소가 미결제 물량이 발생했음을 바로 알 수 있지만 특별한 제재는 따로 없다.

골드만삭스는 이번 미결제 사고가 직원의 단순 실수 때문이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역시 외국계 증권사인 모건스탠리에서 10년간 공매도 트레이더로 일한 하재우 트루쇼트 대표는 “처음 사건 소식을 접했을 때는 단순 데스크 실수라고 판단했는데, 이틀 후에야 미결제 사실을 알았다는 게 납득이 안 된다”면서 “시스템 오류가 있거나 담당 직원이 파악을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하 대표는 “골드만삭스가 제때 결제리스크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의 여부가 이번 사건 조사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삼성증권에 이어 골드만삭스 사건까지 겹치면서 상대적으로 공매도 거래에서 소외된 개인투자자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특히 공매도 자체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금융위원회를 겨냥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 캡처

그럼에도 공매도 자체가 폐지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금융위가 ‘가격발견’과 ‘거품방지’라는 공매도의 순기능에 대해 확신이 여전해서다.

최 위원장은 골드만삭스의 사고와 관련해 “공매도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면서 ”공매도는 신용이 있어야 (주식을) 빌릴 수 있어 기본적으로 기관을 위한 시스템인 측면이 강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 위원장은“개인에게 좀 더 공평한 기회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선진국처럼 점점 개인투자에서 기관투자로 옮겨가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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