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인가 처분이 구분소유자 간 형평에 현저히 반한다”며 1심 뒤집어… 파행 불가피

사업시행인가를 앞두고 있던 서울 서초구 신반포15차 재건축사업이 ‘좌초’ 위기에 빠졌다. 법원이 정비사업조합(이하 조합)의 설립인가를 무효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업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이하 고법) 제3행정부는 이날 G주식회사가 제기한 조합설립인가 무효 확인 소송의 항소심 선고에서 “1심(서울행정법원) 판결을 취소하고, 피고인 서초구청장이 행한 신반포15차 재건축 조합설립인가 처분은 무효”라고 주문했다.

법원이 이 같은 판단을 내린 데에는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집합건물법)」과 이에 근거한 대법원(이하 대법) 판례가 자리하고 있다. 집합건물법 제47조제3항에 의하면 재건축 결의 시 ▲새 건물의 설계 개요 ▲건물의 철거 및 새 건물의 건축에 드는 비용을 개략적으로 산정한 금액 ▲비용 분담에 관한 사항 ▲새 건물의 구분소유권 귀속에 관한 사항 등을 포함해야 한다.

특히 같은 조 제4항에 따르면 비용 분담과 새 건물의 구분소유권 귀속에 관한 사항은 각 구분소유자 사이에 형평이 유지되도록 정해야 한다. 만약 재건축 결의가 각 구분소유자 간 형평에 현저히 반하는 경우 그 결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효라고 대법은 판결(2005년 6월 9일 선고 2005다11404 판결)한 바 있다.

본보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이번 고법 판결도 이러한 법리와 판례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신반포15차 재건축 조합의 설립인가가 구분소유자 간 형평에 현저히 반하는 내용이라 그 하자가 중대하고 객관적으로 명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보조참가인(신반포15차 재건축 조합)이 재건축사업을 추진하면서 이 사건 건물(구역 내 총면적 2640.55㎡짜리 공유 건물)에 관하여 원고와 담보신탁 계약을 체결한 박모 씨 등 9명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이 사건 건물에 대응하는 상가를 건축하지 않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고, 이에 대해 피고가 인가를 한 처분은 구분소유자 간 형평에 현저히 반하는 내용으로서, 그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해 무효”라고 못 박았다.

이어 재판부는 “박씨 등 9명이 실질적인 공유자인 이 사건 건물의 대지지분은 이 사건 사업 대지 3만441㎡의 8.42%에 해당한다. 그런데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 제16조제2항에 따라 주택단지 안의 복리시설 전체를 하나의 동으로 보고, 이 사건 건물의 소유 형태가 박씨 등 9명이 공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 사건 건물은 그 구분소유자가 1인인 경우로 봐 각 동별 구분소유자가 5인 이하인 경우라서 ‘각 동별 구분소유자의 2/3 이상 및 토지 면적의 1/2 이상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보조참가인이 조합 설립을 추진함에 있어 박씨 등 9명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아예 상가 건물을 건축하지 않는 것으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게 되면 그로 인해 박씨 등 9명은 상가를 전혀 분양 받을 수 없게 돼 구분소유자 간에 현저히 불공평한 결과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재판부는 “(신반포15차) 조합 정관에 따르면 별도의 상가가 신축되지 않아 원고가 상가를 분양 받을 수 없는 경우, 원고가 주택을 공급 받을 수 있고 원고가 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현금청산을 통해 이 사건 사업에서 이탈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고 하더라도 상가를 운영하는 박씨 등 9명에게 그 의사에 반해 주택을 공급하거나 아예 사업에서 배제시키고 현금으로 청산하는 방법을 선택할 때 그럴 수밖에 없는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면서 이 사건 및 제1심 판결에서는 이 같은 사유를 찾기 힘들고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 “아파트지구 개발기본계획 변경해서라도 근린생활시설 소유자의 권리 보전해야”

재판부가 이 같은 판단을 내린 이유에는 ▲서울시장이 반포아파트지구 개발기본계획 결정에 따라 이 사건 사업을 시행함에 있어서 근린생활시설을 건축할 수 없다는 취지로 회신했으나, 해당 기본계획은 도정법이 제정되기 전에 옛 「주택건설촉진법」에 의해 수립, 고시된 것으로서 도정법에 의해 정비계획 변경 절차로 변경할 수 있다는 취지로 회신한 점 ▲반포아파트지구 개발기본계획상 주택 용지에 건물을 수반하는 운동시설을 건축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된 상황에서 주구 전체가 일시에 재건축을 진행할 경우 그 주구에 속한 구분소유자 중 주택 소유자와 근린생활시설 소유자별로 나눠 전자에겐 주택을, 후자에겐 근린생활시설을 분양할 수 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린생활시설 자체를 신축하지 않음으로써 근린생활시설 소유자를 배제할 필요가 없는 점 ▲이 사건에서처럼 주구 중 일부 지역에서만 재건축을 진행하는 경우 재건축 이전에 근린생활시설을 소유하고 있는 구분소유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건축을 하면서 아예 근린생활시설을 신축할 수 없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와 같은 경우에는 반포아파트지구 개발기본계획을 변경할 필요성이 더 강해지는 점 등이 작용한 것으로 판시됐다.

이를 바탕으로 재판부는 “피고보조참가인은 구분소유자 간에 형평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서울시장에게 반포아파트지구 개발기본계획의 변경을 요청하는 절차를 진행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하나 피고보조참가인은 사업 대지의 8.42%에 달하는 대지지분과 이 사건 건물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박씨 등 9명이 근린생활시설을 분양 받기를 원하고 있고 그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해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단지 반포아파트지구 개발기본계획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이 사건 사업 대지에 근린생활시설을 신축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이 사건 건물에 대한 매도청구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반포아파트지구 개발기본계획은 옛 「주택건설촉진법」과 서울시 고시로 2002년 11월 현재와 같은 틀을 갖추게 된 바, 그 이후 주변 환경과 사회적 여건의 변화로 그 개정 필요성이 있을 수 있고 이를 그대로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특별한 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어 인용해야 할 것인 바, 제1심 판결은 부당하므로 항소를 받아들여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이 사건 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결론 내렸다.

마땅한 대응 수단 없는 조합… 상고심 선고 때까지 사실상 사업 ‘올 스톱’, 내년 초 시공자 선정도 ‘불투명’… 업계 “입찰 강행은 기름 끼얹고 불로 뛰어드는 격”

이번 법원 판결에 따라 신반포15차 재건축사업은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통상 조합설립인가가 무효화하면 해당 조합이 받은 사업시행인가 등도 효력을 잃게 된다. 신반포15차는 사업시행인가 직전 단계라 현재 진행 중인 공람(이달 19일~새달 3일) 절차도 예정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다.

이에 따라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내년 상반기 중으로 시공자를 뽑으려던 신반포15차 재건축 조합의 ‘꿈’은 현실화까지 요원해졌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무효’ 선고를 받은 조합이 상고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상고를 하더라도 대법 판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데다 2심 판결이 번복된다는 보장이 없어 상고심 선고 때까지 파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법인격’으로서의 지위에 균열이 생긴 판국에 시공자 선정은 ‘시기상조’를 넘어 ‘어불성설’이란 지적이 높다. 공공관리제도를 적용 받는 신반포15차는 관계 법령 및 서울시 조례 등에 따라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조합이 시공자를 선정해야 한다. 물론 2심 판결로 당장 조합의 지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조합이 당초 계획대로 시공자 입찰을 강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상고심 선고 때까지 이어질 ‘사업 불확실성’이다. 대법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무작정 시공자를 선정했다가 대법에서도 조합설립인가 무효 판결이 나오면 다시 시공자를 선정해야 한다. 조합원들이 이를 가만히 지켜볼 리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이와 관련해 법무법인 산하 김래현 수석 변호사는 “2심에서 조합의 설립인가가 무효가 됐더라도 상고심 선고 때까지 그 지위는 유지된다”면서 “다만 상고심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제반 절차를 강행했다가 상고심에서도 2심과 동일한 판결이 이뤄질 경우 그 후폭풍은 상당할 것이기에 조합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번 사태로 내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돼 조합의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곳은 지난해 말~올해 초 조합장 송모 씨의 해임을 두고 내분을 겪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진행에 오늘에 이르렀지만 고법 판결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조합이 시공자 입찰을 강행할 경우 내분의 재발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신반포15차 일부 조합원들은 이번 사태를 놓고 “이변이 없는 한 2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조합 창립총회를 열어야 한다”, “다음 달(12월)이면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내년 초 시공자를 선정하려던 계획이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등의 의견을 나누며 송 조합장을 비롯한 집행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쪽으로 중지를 모으고 있는 형국이다.

또 다른 재개발, 재건축 전문 변호사는 “판결문을 봐야 보다 정확한 전후 관계 파악이 가능하지만 일단 고법 판결로 조합설립인가가 무효가 된 만큼 법적 지위가 유지된다고 해서 해당 조합이 후속 사업 절차를 강행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려는 행태’와 같다”며 “이 경우 원고 측은 물론 조합원들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발등의 불’부터 끄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주택문화연구원 노우창 기획1실장은 “대법 판결이 남아 있어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르지만 관련 판례 등을 살펴봤을 때 고법 판결이 대법에서 뒤집어질 가능성은 낮다”면서 “(신반포15차) 조합 입장에서는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조합설립인가 무효 사태를 수습하는 데 모든 역량을 기울여야 할 것인데, 상고 이외에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어 애먼 조합원들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김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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