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가해자 처벌 미진한데, 피해자ㆍ가족 고통 '여전'

[한국스포츠경제 최지윤] ‘결국 피해자가 모든 것을 짊어진다?’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운동이 시작된 지 100일이 지났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지지부진하고 피해자들의 고통만 큰 상태다. 연예계에서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대응도 차이가 났다. 고(故) 조민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조재현은 두문분출하고 있다. 가족들의 2차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김기덕 감독은 여배우A씨를 무고죄로 역고소한 반면 김생민은 활동을 중단하고 은둔 중이다. 끝나지 않은 미투 후폭풍을 살펴봤다.

조재현(왼쪽), 조민기

 
조민기-조재현

배우 조민기의 죽음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을 두 번 울렸다. 고인은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청주대 연극학과 부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상습 성추행 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경찰조사를 3일 앞둔 3월 9일 돌연 사망,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됐다. 3개월이 흘렀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여전했다. 성폭력 반대 청주대 연극학과 졸업생 모임 소속 A씨는 지난달 29일 서울 중림동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열린 제5회 ‘이후 포럼’에서 “피해자들이 무분별한 비난과 욕설의 대상이 됐다. ‘밤길 조심하라’ ‘죽이겠다’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진상규명 및 전수조사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왜 피해자에 (책임이) 전가되고 죄인이 돼야 하나”고 토로했다. 가족들도 고통을 호소했다. 조민기 가족은 2015년 SBS 예능 프로그램 ‘아빠가 부탁해’를 통해 얼굴을 알렸다. 고인의 사망 후에도 아내 김선진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비롯해 딸 조윤경 양, 아들 조경헌 군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렸다. 조윤경 양은 지난 4일 SNS에 “(아버지의 성추행으로) 상처 받은 분들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남겨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조재현은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후 지난 3월 tvN ‘크로스’에서 하차했다. “모든 걸 내려놓겠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삶을 되돌아보겠다”고 사과한 후 자신이 소유한 대명문화공장 건물 매각 의사를 밝혔다. 직접 설립한 공연제작사 수현재컴퍼니도 현재 폐업 절차를 밟고 있다. 행정직을 제외한 모든 직원이 이달 말 퇴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조재현 성추행 사건은 사실 확인단계에 머물러 있다. 경찰은 지난 3월 내사에 착수했지만, 아직도 정식 수사로 전환하지 못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우려해 진술을 꺼리고,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은 법적 처벌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 남겨진 가족들은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아들 조수훈과 딸 조혜정은 인스타그램에 악플이 쇄도하자 댓글 기능을 닫았다. 더욱이 조혜정은 조재현 성추행 사건으로 연예계 활동도 중단했다. 지난해 11월 KBS2 예능극 ‘고백부부’ 종영 이후 공백기를 갖고 있으며 ‘연예계 활동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기덕(왼쪽), 김생민

 
김기덕-김생민

김기덕 감독은 반성은 커녕 피해자들에 맞고소로 대응했다. 지난 12일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홍종희)에 고소인 신분으로 출석, MBC ‘PD수첩’과 여배우 A씨를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경위를 밝혔다. “‘PD수첩’은 증거보다 증언만으로 구성됐다. 최소한의 예의가 없는 무자비한 방송”이라며 “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22년간 23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배우와 스태프들을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했다. ‘은혜를 이렇게 갚나?’ 안타깝다”고 반박했다. ‘PD수첩’은 지난 3월 김 감독의 성추문 의혹을 제기했다. 방송에서 여배우 C씨는 “합숙장소가 지옥이었다”며 “여자를 겁탈하려고 김기덕 감독, 조재현, 조재현 매니저 셋이 하이에나처럼 방문을 두드렸다”고 폭로했다. 김 감독은 “동의하에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며 성추행 및 성폭행 사실을 일체 부인했다. 이번 성추문으로 김 감독은 아내와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이다. 아내와 딸 등 가족들은 이 사건으로 큰 상처를 받아 일상생활도 힘든 것으로 전해졌다.

김생민은 일체 연락을 끊고 은둔생활 중이다. 최근 한 매체는 “(김생민이) 방송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지인들과도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많이 힘들어서 운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김생민은 2008년 모 프로그램 촬영 후 회식에서 스태프 2명을 성추행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스태프 A씨는 “회식 중 노래방에서 김생민에게 성추행 당한 후 충격으로 방송 일을 그만뒀다”며 “김생민의 하차를 요구했지만 메인 작가가 ‘방송가에서 이런 일로 출연진을 자르는 법은 없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김생민은 지난 4월 출연 중인 10개 프로그램에서 모두 하차했다. 사실 김생민의 경우 수 차례 성추행을 일삼은 조민기, 조재현, 김기덕 감독과 비교하면 ‘가독하다’는 반응이 많다. 평소 성실하고 검소한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아 실망감은 더욱 컸다. 김생민은 10년 만에 전성기를 맞아 20여 개의 광고를 찍었지만, 대부분 단발성이라서 위약금을 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투 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견이 많다. 가해자들에 대한 민ㆍ형사적 책임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자들에 추가 피해를 안겼다. 아울러 개인을 넘어 가족들에게도 잘못을 묻고 있다. 유명 배우나 방송인의 성추행 의혹에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으나 가족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은 또다른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한다. 이는 이미 골동품이 된 연좌제의 현대판 부활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아버지가 아무리 비도덕적인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가족은 죄가 없다. 오히려 더 많이 충격받고 상처받은 이들은 다름 아닌 가해자의 가족들이다. 특히 가해자의 부인과 딸도 같은 피해를 당해봐야 한다는 식의 비난은 비판을 가장한 성희롱이자 여성 혐오다. 가해자 가족들에 대한 낙인찍기식 연좌제는 미투 운동 흐름에 되레 방해가 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의 말처럼 “특정 악인에 대한 비판에서 나아가 사회 전반의 문화를 돌아보는 숙고가 필요할 때”이다.

사진=OSEN

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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