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세요?

간단한 질문인데 명쾌한 답이 나오질 않는다. 이것저것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방증일텐데 그렇다고 ‘No’라고 답하긴 싫다. 행복의 궤적(?)이라도 찾아 나서려는 듯 낡은 일기장을 꺼내본다. 언제부턴가 낯설어진 손글씨, 그리고 거기엔 별것 아닌 것에도 즐거웠던 내가 있다.

미래와 현재의 구분 자체가 모호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이때에 과거를 되짚어보는 건 분명 퇴행이리라. 그러나 잠시 동안의 추억소환이 무표정한 얼굴에 엷은 미소를 짓게 한다. 역설적이게도 시간을 거스른 퇴행은 순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줬다. 일명 소확행이란다.

큰 집, 좋은 차, 고액 연봉은 어느새 이룰 수 없는 ‘넘사벽’이 돼 버린 우울한 현실. 그런 이유로 한 번 뿐인 인생,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지 말고 즐기자는 모토로 등장한 것이 ‘욜로’(YOLO)였다. 그러나 이 역시 ‘즐기자’를 실현시킬 ‘욕망 필요충분조건’은 희망과 꿈 대신 넉넉한 통장잔고라는 씁쓸한 결과가 도출되고 말았다. 현실은 얄궂게도 모호한 법이 없다. 당장 한 번의 욜로 흉내 내기에 골로 갈 것 같은 텅 빈 지갑이 극명하게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 지난 한해를 휩쓸었던 욜로는 있는 자들에게나 실현 가능한 트렌드가 되면서 차츰 사라지고 있는 모양새다. 그것의 피로도를 대신해 어느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는 현실형 트렌드 ‘소확행’이 자리하고 있다.

현시대 넘사벽의 조건들이 실현 가능했던 기성세대에게 ‘성공’은 행복의 다른 이름이었다. 산업화 시대에는 목표지향형 인간이 사회가 원하는 획일화된 성공의 전형이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대확행’(크고 확실한 행복)의 성취여부가 행복의 척도였던 셈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태생부터 금수저, 흙수저를 구분 짓는 세상에서 목표지향형 인간이 되어 대확행을 성취하기는 무척이나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 자신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말한 ‘소확행’이란 신어가 그 시절에 주목받지 못하고 30년 이상의 긴 시간이 흘러 역주행하는 이유는 뭘까?

소확행은 낭만의 대체재다. 자연스레 그것이 존재하던 시절 굳이 작은 행복을 찾아나서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극한 경쟁 속에서 성취감보다는 좌절감과 패배감이 팽배한 시대에 낭만은 소멸 된지 오래다. ‘먹고사니즘’을 보장 받을 수 없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의 소망이 투영된 트렌드가 바로 소확행이다. 그것은 위로가 필요한 일상에 스스로를 향한 작은 토닥임이다. 행복을 찾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을지도 모를 위기감에 소확행은 시간의 간극을 넘어 다시 소환된 것이다.

골목길에 흐드러지게 핀 장미꽃을 볼 때, 사진첩을 여는 순간 빛바랜 추억들이 선명하게 되살아 날 때,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날 작은 보폭으로 길을 걸을 때, 엄마가 해주신 집밥이 눈물 날만큼 맛있을 때, 읽고 있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동네 작은 카페에서 따뜻한 라떼 한잔을 음미할 때, 보고 싶은 누군가에게 전화가 올 때, 그리고 원고를 마무리했을 때(이건 형태는 소확행이지만 기쁨의 크기는 대확행이다)….

바로 이럴 때 난 건조하기 짝이 없는 마침표 일상에서 잃어버렸던 느낌표를 발견하곤 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찾기, 꽤 괜찮지 않은가!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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