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인정] 서울 종로구 서촌 궁중족발의 부동산 강제집행 문제가 결국 사장 김씨의 살인미수 사건으로 이어지는 파국을 맞게 됐다. 김씨의 사건으로 부동산 강제집행과정의 폭력성과 인권침해가 물 위로 떠오르면서 부동산이 아닌 '채권'의 강제집행에 대한 폭력과 인권침해도 되짚어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10월 광주에 거주하는 30대 남성이 화약약품 회사에 침입해 흉기로 직원을 위협하고 100만원을 훔쳐 달아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에 붙잡힌 유씨는 과거 택배기사로 일하면서 자주 배달을 다녔던 회사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30대 실직 가장의 강도행각으로 보도된 당시 사건은 유씨가 유체동산 강제집행을 당하는 과정에서 이성을 잃고 우발적 범행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유체동산 강제집행'은 법원의 집행관이 채권자의 압류 신청에 따라 채무자 집안의 살림살이에 속칭 '빨간딱지'를 붙이는 것을 말한다.

유씨는 당시 대부업체에 약 300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그의 거주지는 보증금 160만원, 월세 16만원의 월세집이었고 이 곳에서 배우자와 6살 난 딸이 함께 있었다.

딱지가 붙은 유씨의 살림살이는 한 번의 경매로 끝나지 않았다. 물건을 사려는 업자들은 더 낮은 가격으로 낙찰을 받기 위해 가격을 부르지 않았다. 우울증에 걸린 유씨의 아내는 살림살이가 낙찰되는 전 과정을 보고 몸져누웠다. 유씨는 "어린 딸이 그 광경을 보지 못한 것은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유씨의 살림살이는 두 번째 경매에서 경매업자가 낙찰됐다. 주고 가전제품으로 이뤄진 유씨의 살림살이는 총 '76만원'에 경매업자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유씨가 범행을 결심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현행 민사집행법에 따르면 채무자의 배우자는 경매 과정에서 물건을 먼저 낙찰받겠다고 집행관에게 신청하면 압류된 물건을 절반 값에 낙찰받을 수 있다. 배우자 우선매수청구권의 내용이다. 유씨의 배우자가 압류된 물건에 대해 다른 경매업자보다 우선 매수할 수 있도록 집행관에게 청구했다면 76만원의 절반 가격인 38만원에 살림살이를 도로 찾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유씨는 "법원의 집행관이 경매절차가 모두 끝난 뒤에야 배우자에게 우선매수청권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채권자인 대부업체는 현장에서 경매업자에게 76만원을 건네 받고 자리를 떴다.

유씨는 당시 심경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우울증에 걸린 아내 앞에서 물건이 경매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며 “집행관들이 집행과정에서 동네 사람들이 다 보이도록 문도 열어 놓고 경매를 진행해 모멸감도 느꼈다”고 회상했다.

유씨는 ‘채무 상담과 채권 소각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 주빌리은행’의 도움으로 채무를 변제하고 임대주택에서 거주할 수 있게 됐다.

유체동산 강제집행 현장. 사진=주빌리은행 제공

살림살이 압류절차, 실익은 없고 인권침해만 높아

유체동산 강제집행은 실익 없이 모멸감만 주는 비인격적 요소가 크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서촌 궁중족발 사건에서 보듯이 건물주가 상가 임차인을 상대로 명도집행을 하는 과정이 폭력을 수반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채권자가 딱지 집행으로 확보하는 재산은 아주 낡은 가전제품이 대부분이다. 채권자가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채무를 지는 채무자의 살림살이 압류한다고 해서 그 채권을 만족할 만큼 회수하는 일은 거의 없다.

실익은 없는 반면 채무자가 받는 심리적 압박과 인격권 침해는 크다.

주빌리은행의 유순덕 금융복지상담사는 “집행관이 살림살이에 딱지를 붙이고 경매업자들과 물건을 흥정하는 과정을 자녀나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며 “이를 지켜보는 채무자가 가족들 앞에서 모멸감을 느끼고 가족들이 받는 상처도 다른 어떤 강제집행보다 크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유체동산 압류제도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 상담사는 유체동산 강제집행과 관련 “채무는 가족이라도 제 3자에게 알리는 것이 불법으로 규정한 만큼 유체동산강제집행 과정도 부부를 제외한 제 3자가 없는 곳에서 이뤄지도록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채무자가 배우자 우선매수권과 같이 경매절차에서 중요 내용을 잘 알 수 있도록 경매 전 고지하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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