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현실을 반영하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면 유예기간이 필요했겠는가"

[한스경제 이성노] 재계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앞서 6개월의 계도기간을 고려하겠다는 정부 의사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근로시간에 대한 불분명한 기준과 직종과 직군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법 적용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20일 재계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앞서 6개월의 계도기간을 고려하겠다는 정부 의사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20일 여당, 정부 그리고 청와대는 근로시간 단축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6개월의 계도기간을 부여해 달라는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의 요청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날 이낙연 국무총리는 "근로시간 단축은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면서 "법 개정이 빠른 시간 내 이뤄진 감이 있어 준비기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현실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계도기간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자 재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근로시간에 대한 해석이 애매하고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불만을 터뜨린 대목이기도 하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에서 근로시간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 감독 아래 종속되어 있는 시간'을 뜻한다. 휴게·대기시간, 교육시간, 출장, 접대, 회식, 워크숍, 세미나 등 근로시간 포함 여부에 대한 판례 및 행정해석까지 나와있지만, 변수가 다양한 만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계도 기간은 분명히 필요했다. 근로시간 기준에 대해선 좀 더 세부적인 지침이나 정리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체계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애매한 것이 많아 혼란스럽다"며 "6개월 동안 개정안에 맞게 다양한 조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근로시간 기준에 대해 혼란스러워했다. 단적인 예로 홍보 업무를 맡고 있는 임직원의 경우 언론 대응 및 미팅이 업무 시간에 포함되는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인가연장근로와 탄력근무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작지 않았다. 석유·화학, 조선업체들은 정기보수나 시운전 등으로 집중 근무제가 필요한 직종이다. 해당 기간에는 주 70시간 이상의 근무가 불가피하다.   

정기보수나 시운전 등으로 집중 근무가 불가피한 석유·화학, 조선업계는 보다 유연한 인가연장근로제, 탄력근무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진=에쓰오일

경총이 계도기간 필요성과 함께 인가연장근로 범위 확대를 요청한 이유이기도 하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인가연장근로 사유는 천재지변에만 국한돼 있다. 집중 근로가 필요한 직종과 직군에 대해서 인가연장근로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 경총의 요구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 기간 역시 확대가 필요하다는 게 재계의 하나된 목소리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탄력 근무는 주 52시간 안에서 최대 3개월 단위로 근무시간을 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매번 노사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재계에선 직종과 직군에 따라 극성수기 기간이 다르고, 노사 합의의 번거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탄력근무제 단위 기간을 1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정기보수로 인해 업계 특성상 주 52시간 근무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탄력근무제 시간 단위를 최소 6개월 혹은 1년으로 설정해야 개정된 법을 준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최근 '저녁 있는 삶',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생활의 균형)' 문화가 확산되면서 정부 역시 국민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모호한 기준 탓에 재계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더 큰 것이 현실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해석의 여지가 많다면 분명히 좋은 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산업 현실을 반영하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면 유예기간이 필요했겠는가"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성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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