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배우 김희애가 위안부 관부 재판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허스토리’에서 변신을 택했다. 19살 차 나는 유아인과 멜로 ‘밀회’(2013년)를 찍기도 하고 ‘사라진 밤’(2018년)에서는 서늘한 카리스마를 뽐내기도 한 김희애가 ‘허스토리’(27일 개봉)를 통해 기존의 이미지와 상반된 모습을 보여줬다. 극 중 여행사 여사장이자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끄는 원고단 문정숙 역을 맡은 김희애는 뿔테 안경에 호피무늬 바지를 입고 거친 부산 사투리로 욕설을 뱉으며 신선한 연기를 펼쳤다.

-처음 ‘허스토리’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좋았다. 하지만 어떤 사명감을 느껴 출연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 속 위안부 할머니들이 떳떳하게 일본 정부를 상대하는 것과 당당한 문정숙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부끄럽게도 관부 재판 실화를 이 영화를 통해 알았다. 내가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발연기’처럼 보일까봐 걱정이 많았다고 했는데.

“사실 35년 동안 연기를 하며 이렇게 걱정해 본 적이 없다. 특히 부산 사투리가 너무 어려웠다. 어설프게 연기하면 ‘나잇살 먹고 뭐하냐?는 혹평을 들을 것 같았다. 잘 때마다가 가위를 눌리곤 했다. 대사에 억양을 다 표시해뒀고 사투리 선생님에게 매일 수업을 받았다. 부산 사투리에도 여러 버전이 있더라. 우아한 분도 있고, 센 억양을 쓰시는 분도 있다. 많은 부산 사람들과 통화해서 다양한 버전을 연습했다.”

-사투리 뿐 아니라 일본어도 구사했는데.

“촬영 들어가기 3개월 전부터 일본어를 배웠다. 대사에 일본어 분량도 참으로 많아서 날짜 별로 쪼개서 연습했다. 매일매일 반복해도 돌아서면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민규동 감독이 일어를 잘해서 대사를 외워 가면 현장에서 고치곤 했다.”

-연기하기 힘든 캐릭터라 촬영이 끝나도 빠져 나오기 힘들었을 듯하다.

“가뜩이나 숙면을 못 하는데 영화 촬영 기간에는 두 발 뻗고 잔 적이 없었다. 사투리와 일본어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컸던 것 같다. 표준어만 잘 하는 게 이렇게 큰 벽이 될 줄 몰랐다. 여태껏 연기하면서 촬영 마지막 날 울어보긴 처음이다. 다 끝났다는 안도감과 그 동안 쌓인 울분과 허탈함이 섞인 카타르시스였다.”

-머리스타일, 안경, 체중 증량 등 비주얼 변신을 시도했다.

“사실 여성 배우들이 할 게 별로 없다. 종종 남성 배우들이 안 하는 역할 있으면 남성적인 캐릭터도 내가 하겠다는 농담을 하곤 했다. 외형적으로 실제 문정숙 선생님과 비슷하길 바랐다. 우아하고 예쁜 모습을 다 내려놓고 그저 인간 한 사람의 모습을 표현하면 되는 거라 자유롭게 연기했다.”

-위안부 할머니 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는 어떻게 봤나.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선배가 희생하셨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연기하기 얼마나 부담됐겠나. 재판 법정신을 보며 많은 걸 느꼈다.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연기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나 역시 꾸준히 현역으로 일하려면 저렇게 신인 같은 마음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뜨거운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

-문정숙은 ‘나는 엄마에 소질이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는 어떤 엄마인가.

“나도 문정숙과 비슷하다.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떤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나. 사랑하는 마음이야 다 똑같지만 대하는 방법은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아들만 둘이라 아이들을 그리 다정하게 대하지는 않는다. 우리 아이들은 방목해야 하는 스타일이다.”

-자기관리에 충실한 스타일로 알려져 있는데.

“뭐 특별한 비법은 없다. 그저 먹는 것 조심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고 피부과에 가끔 가는 것 정도.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실내자전거를 1시간 이상 탄다. 스트레칭, 스쿼트, 걷기를 병행한다. 하루에 5~6시간 운동하는 것보다 이렇게 꾸준히 하면 어느 새 습관이 되는 것 같다.”

-늘 ‘우아하다’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실상은 전혀 우아하지 않다. 엄마일 뿐이고 혼자 무척 바쁘게 산다. 장 보고, 밥 차리고, 운동복 입고 돌아다닌다. 그냥 열심히 일하니까 대중이 성실하게 봐주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외적인 아름다움으로 본다면 그 동안 맡은 역할 때문인 것 같다. 그저 이 신뢰를 지켜야겠다는 마음이다. 다양한 캐릭터를 변주하며 현역으로 계속 활동하고 싶다. 배우들의 로망이겠지.”

사진=YG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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