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정치권 "주채무 따라 파산하는 것 개선해야"

[한스경제 양인정] 가계부채 대책의 일환으로 채무 탕감을 위한 장기, 소액 채권 대상자의 접수가 한창이다. 그러나 정작 보증채무자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관심 밖이다. 가계부채의 ‘어두운 그림자’ 연대보증채무자에 대한 구제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6일 서울 서대문 홍은1동 주민센터의 상담사례. 지역에 거주하는 이모씨(52세)는 파산신청을 해야 한다는 상담사의 말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씨가 알지 못하는 사이 이미 수년 전에 법원의 확정판결도 있었다. 언제든지 강제집행을 당할 수 있는 상황.

프리랜서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이씨는 최근 일감이 끊겨 수입이 없다. 큰 거래처에서 신용상태를 고려해 일감을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오랫동안 괴롭혀 온 채무 상담을 하게 됐다.

그의 채무는 원금 1400만원과 이자 5200만원 도합 6800만원이다. 그의 어머니의 채무도 이씨와 같다. 이씨와 그의 어머니가 진 빚은 모두 이씨의 동생이 2002년 당시 연체한 신용카드 채무의 보증채무다. 현재 이 채무는 희망모아유동화전문회가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씨의 동생이 카드빚을 지고 연락을 두절하자 독촉 전화는 모두 어머니와 이씨의 몫이 됐다.

추심회사의 독촉은 집요했다. 당시 추심회사의 직원은 이씨의 어머니에게 ‘작은아들과 연락이 되면 잘 설득해 채무를 상환하는데 협조한다’ 취지의 확약서에 서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몇 달 후 다시 극심한 추심전화가 시작되자 이번에는 이씨가 어머니와 같은 방법으로 추심직원이 요구하는 서류에 서명하고 추심을 모면했다.

이씨는 이 후 계속 집으로 오는 채무상환 독촉장을 보고서야 동생의 채무에 어머니와 연대로 보증한 것임을 알게 됐다. 2012년 이씨의 동생은 법원에 파산을 신청해 채무를 모두 면제 받았으나 이씨의 채무는 16년부터 현재까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씨는 “오래 동안 독촉장에 시달려 왔다”며 “파산신청을 하더라도 거래처에 납품을 앞둔 상황에서 신용상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연대보증 폐지 전 보증인들 여전히 고통

연대보증은 돈을 빌려 간 사람(주채무자)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제3자가 대신 갚겠다고 채권자와 약속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개인 대출관계에서는 친족이나 친한 지인이 보증인이 되고 기업 대출의 경우 대표이사가 보증인이 되곤 했다. 앞선 사례처럼 보증행위가 무엇인지 잘 모른 채 채권자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졸지에 보증인이 된 사례도 적지 않다.

일단 보증인이 되면 주채무자가 빌린 돈을 만져보지도 못한 채 채무자로 전락하게 된다. 종래 채권자인 금융기관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고안한 이 제도로 연쇄 파산한 가계들이 부지기수다. 금융당국은 연대보증인에 대한 경제적 폐해가 커지자 2012년 은행권과 2013년 제2금융권의 연대보증제를 폐지했다

문제는 연대보증증제의 폐지가 앞으로 연대보증을 세우지 못하는 것에 그치고 이미 연대보증을 선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데 있다. 여전히 이들은 돈을 만져보지도 못한 채 빚쟁이로 몰려 경제활동을 제약받고 있다.

금융당국 통계에 따르면 연대보증 제도를 폐지하기 전인 2011년 말 기준 은행권과 신용보증기관의 대출관련 연대보증인 수는 79만 7000명에 이르고 2012년 말 기준 제 2금융권 대출관련 연대보증인 수는 141만명에 이른다. 

금융권 연대보증제도가 폐지된 것과 달리 대부업 연대보증은 개인사업와 법인대출 영역에서 아직도 가능하다.

연대보증인들은 채무조정에서도 사각지대에 있다. 현행 채무자회생법에 따르면 돈을 직접 쓴 대출 채무자가 회생 또는 파산절차를 밟아 채무가 감면 또는 탕감되더라도 연대보증인은 여전히 채무를 갚아야 한다.

김준하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사무처장은 “주채무자가 파산과 회생을 통해 채무 구제를 받더라도 보증인은 구제되지 않는다”며 “이런 문제로 연대보증인은 별도로 파산과 회생절차를 거쳐야 하고 주채무자가 파산제도로 보증인이 구제되지 않는다는 사실로 파산절차를 주저하는 사례도 보고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은 신용회복위원회 개인워크아웃제도도 마찬가지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2010~2015년 연대보증 채무를 분할 상환하겠다고 신청한 사람은 1만655명, 연체액은 4243억9799억원에 달한다. 1인당 평균 연체액은 3983만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 가계부채 정책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정부가 보유한 연대보증인 채권에 대해 광범위한 소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연합뉴스 

주채무 파산으로 면제되면 보증채무도 자동 면제시켜야...주채무와 독립된 구제책 나와야

채권자가 채권집행 없이 일정기간이 지나면 채권이 소멸하는 시효를 연장하는 것도 문제다. 주채무자의 시효가 연장되면 보증채무의 시효도 같이 연장된다.

연대보증인은 정부의 채무탕감 정책에도 사각지대에 있다. 주채무자가 채무탕감을 받으면 보증인의 채무도 탕감을 받게 된다. 문제는 채무 탕감 대상인 주채무자가 연락 두절이 되는 경우다.

채무상담과 채권소각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주빌리은행 유순덕 금융복지상담사는 “주채무자가 채무 탕감 대상이 되는데 연락이 되지 않으면 보증인이 직접 채무탕감을 신청한 들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며 “최소한 캠코, 희망모아유동화전문회사 등 정부가 보유한 보증채무에 대해서는 보다 폭 넓게 채무 탕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금융공기업 등이 상당액의 보증채무를 소각했지만, 여전히 이씨와 같이 보증채무로 경제활동에 발목이 잡혀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들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인 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정무위 소속)은 <한국스포츠경제>와의 통화에서 “가령 5년 이상 지난 연대보증채무와 시효가 연장된 연대보증채무는 일괄소각을 제안하는 상황이지만 구체적인 정부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곧 금융위와 보증채무를 포함한 생계형 채무의 2차 소각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 의원은 이어 “현행 채무자회생법상 보증채무자가 구제되지 않는 조항도 문제가 있다”며 “주채무자가 회생과 파산을 통해 채무를 탕감, 감면받으면 보증인의 채무도 동시에 탕감, 감면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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