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정유업계 기술 좋아져 '고급'과 '일반'의 차이 거의 없어

[한스경제 이성노] 일반휘발유에 비해 18% 가량 비싼 고급휘발유의 판매량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급휘발유는 엔진 소음을 낮추고 성능 개선에도 도움을 준다는 게 통설이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에선 "일부 고성능 모델에 고급휘발유를 권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는 '고급'과 '일반'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5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고급휘발유와 일반휘발유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한다. /사진=연합뉴스

◇ 고급·일반 휘발유 가격, 18%…중형세단 기준 2만370원 차이

5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서비스인 '오피넷'에 따르면 4일 기준으로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되고 있는 고급휘발유와 일반휘발유의 평균 가격은 각각 1899원과 1608원이다. 가격 차이는 291원(약 18%)으로 중형세단(2000cc) 70리터의 주유통을 가득 채운다고 가정하면 무려 2만370원 차이가 난다. 

결코 작지 않은 가격 차이에도 고급휘발유는 판매량은 역대 최고치를 작성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고급휘발유 판매량은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5월 판매량은 9만4000배럴(1배럴=약 159리터)로 집계를 시작한 199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이같은 증가세는 수입차 등 고가 차량 비중이 계속 높아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차값이 비싼 만큼 질이 더 좋은 휘발유를 써야 고장없이 오래 쓸 수 있지 않겠냐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는 것이다.

고급휘발유와 일반휘발유의 차이는 옥탄가에서 결정된다. 옥탄가는 휘발유가 연소할 때 이상 폭발을 일으키지 않는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다. 옥탄가가 91 이상이면 일반휘발유, 94 이상이면 고급휘발유에 해당된다. 국내 정유 4사 고급휘발유의 옥탄가는 SK에너지(98)를 제외하고 모두 100이다.  

옥탄가가 높으면 불완전 연소가 덜해 이른바 노킹 현상(휘발유와 공기의 미연소 혼합가스 온도가 급격히 상승할 때 이상폭발을 일으키는 현상)이 줄어들게 된다. 반대로 옥탄가가 낮으면 노킹 가능성이 커지면서 엔진 소음이나 성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국산차보다 고가에 판매되고 있는 수입차에는 고급휘발유를 넣어 관리하는 게 좋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일부에선 엔진 성능과 더불어 연비, 배출가스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성능 모델을 보유한 한 유럽 고급 브랜드 측은 고성능 모델도 일반휘발유 주유를 권장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 고성능 모델? 일반휘발유로도 충분해!

그러나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국내에서 굳이 고급휘발유를 넣어야할 모델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고급휘발유는 노킹을 막아주고, 엔진을 부드럽게하며 자동차의 출력과 토크를 최대한으로 올려주는 장점이 있다"며 "일부 브랜드에서 고급 휘발유를 권장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지만, 국내 정유업계 기술이 좋아지면서 사실상 '고급'과 '일반'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옥탄가가 91이상이면 사실상 엔진이나 노킹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고급'과 '일반'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수입차 업계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일부 고성능 모델 고급휘발유를 권장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 일반휘발유를 넣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부 모델에 고급휘발유를 권장하지만 강제 사항은 아니다"면서 "고급휘발유를 넣으면 엔진이 100% 이상의 성능의 발휘한다는 뜻으로 일반휘발유를 주유했다고 엔진이 손상되거나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뜻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고성능 모델을 보유한 한 유럽 고급 브랜드 측은 "저희 회사에선 '고급휘발유'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권장하지도 않는다. 고성능 모델을 포함해 모든 모델에 '옥탄가 91 이하의 휘발유 주유를 자제하라'고만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고가의 고성능 모델도 일반휘발유(옥탄가 91~93)로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국내에는 '수입차=고급휘발유'라는 인식이 강하고, 고급휘발유는 왠지 더 좋을 것 같다는 기대 심리도 판매량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고급'이라는 단어는 소비자에게 막연히 차량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며 "고급휘발유를 '고옥탄가 휘발유'로 부른다면 소비자의 오해가 줄어들 것이다"고 밝혔다. 

이성노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