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한 일주일을 토닥여주기 위해 노래방으로 간다. 일명 난 ‘혼코노족’(혼자 코인노래방에 가는 이들을 지칭하는 신조어)이다. 불금의 코인노래방은 홀로족들의 성지다. 노래할 공간이 생길 때까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을 실천하기 위해 기를 쓰고 샤우팅하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와 이따금씩 나도 모르게 키득거리곤 한다. 한 번도 신경 써본 적 없지만 나 역시 다른 누군가의 키득거림 제공자겠지? 막혀있는 작은 공간은 오로지 나만의 자유공간이 된다. 마이크를 잡는다. 누군가의 눈치 볼 필요도,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다. 때로 가수가 된 듯 기분 좋은 착각도 가능하다. 이를 나르시스트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1곡에 500원, 뭐 이정도면 훌륭한 스트레스 배설 가격 아닌가.  

우리의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트렌드가 바로 ‘탕진잼’이다. ‘소소하게 낭비하는 재미’라는 뜻인데 그게 참 역설적이다. ‘낭비’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시간이나 재물 따위를 헛되이 헤프게 씀”인데 탕진잼에서의 ‘낭비’는 그럴 수 없다. 통장이 ‘텅장’이 되는 순간 ‘탕진잼’의 범위를 벗어나 그야말로 ‘탕진’이 되고 만다. 그러기에 ‘탕진잼’은 ‘소소하게’에 방점을 찍은 소비트렌드다. 

한 설문조사 결과 성인남녀의 93.8%가 스트레스로 인한 ‘감정소비’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이 싫어 굳이 막히는 도심에 택시를 잡아타고 출근하는 호기를 부려본다. 잠시 동안의 편안함은 고사하고 택시비를 지불하는 순간 또 다른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괜한 짓 했다 싶은 후회, 불편해도 좀 참을 걸 그랬나 보다. 계속되는 고된 업무에 밤만 되면 배달되는 야식, 포만감 후에 찾아오는 다이어트 스트레스. 이쯤 되면 홧김비용은 ‘부메랑 효과’를 동반하는 소비행태가 된다. ‘감정소비’로 인한 지출이 한 달 평균 151, 891원이라고 하니 우리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는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화를 풀려다 더 큰 화에 직면한다는 거, 뭔가 잘못 됐다.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위로하는데 탕진잼을 활용하는 거, 꽤 괜찮은 방법이다. 1930년대 미국에서 당시 대공황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립스틱 매출은 증가하는 이상 현상이 확인돼 경제학자들이 ‘립스틱 효과(불황일수록 여성들의 입술이 붉어지는 현상)’란 용어를 만들었단다. 사치품 대신 작지만 기분전환이 가능한 저가 아이템, 립스틱이 그 당시 탕진잼 품목이었던 셈이다. ‘립스틱 효과’는 2018년 ‘탕진잼’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립스틱 하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장기간 지속되는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소비 권하는 사회’에 때로 지극히 충실한 실천자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는 줄어드는 통장잔고를 확인하며 스스로 스트레스 유발자임을 깨닫는다. 소비에 휘청이는 순간 탕진잼의 범주를 이탈한 것이다. 

스트레스 배설가격에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딱 그만큼만 나만의 한계점을 정해보면 어떨까? 예를 들면 나의 혼코노 비용은 오천원이다. 이 금액을 넘길 경우 샤우팅 과다로 성대에 이상이 생길 수 있기에, 그러면 새로운 스트레스와 직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 이상 지갑을 열지 않는다. 물론 약간의 아쉬움은 남는다. 그래서 소소하게 재미를 느끼는 거 아닐까. 아쉬움이 남지 않는 소비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편집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