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계좌 비번기능 '개인 키', 무작위 알파벳과 숫자 조합으로 생성
잊어버리면 사실상 찾을 수 있는 방법 없어

[한스경제=허지은 기자] 

# 금융권 종사자인 A씨는 3년 전 비트코인을 알고 재미 삼아 1비트코인을 구매했다. 당시 비트코인 가격은 1비트코인에 20만원대로 큰 부담은 아니었다. 이후 비트코인의 존재를 잊고 있던 A씨는 지난해 말 기사를 통해 비트코인 가격이 2000만원 가까이 올랐다는 소식을 접했다. 3년만에 가치가 100배 가까이 올랐지만 A씨는 구매한 비트코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비트코인을 담은 개인 키 역시 그의 기억에서 잊혀졌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이라면 몇 년 전 가격 차트를 볼 때마다 쓴웃음을 지을 때가 많다. 비트코인은 2015년 내내 20만원대 박스권에서 움직였고, 2016년 최고가는 100만원을 넘지 않았다. 이 시기 비트코인을 구매한 사람들은 복권에 버금가는 ‘대박’을 맞이했을 터다.

그런데 A씨처럼 정작 비트코인을 일찍 구매하고도 이를 찾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블록체인 리서치회사인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의 분석에 따르면 시장에서 분실되거나 잃어버린 비트코인은 약 370만비트코인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로 환산하면 무려 250억달러, 약 28조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우리나라 1년 수출액(5000억달러 가정)의 20분의 1에 해당하는 비트코인이 유통되지 않고 컴퓨터안에 잠겨 있는 셈이다. 새로운 IT보안 기술인 '블록체인'을  등에업고 승승장구한 비트코인이 복잡한 암호체계 운영으로 '그림의 떡'이 돼버인 사연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체이널리시스는 몇 년 동안 전자지갑 안에서 이동되지 않은 비트코인을 손실됐거나 ‘(아마도) 잃어버린’ 것으로 분류했다. 18일 현재 발행된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1273억달러, 이 가운데 5분의 1 정도가 잊혀진 상태로 시장에 잠들어 있는 것이다.

블록체인 리서치회사인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의 분석에 따르면 개인 키 분실 등의 이유로 전자지갑 안에 잠든 비트코인은 약 370만 비트코인, 한화로 28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flickr

'개인 키=계좌비밀번호'...분실시 찾을 방법 없어  

비트코인을 구매하고도 이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개인 키(Private key)를 잊으면 비트코인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을 담는 가상화폐 지갑에는 소유권을 인정하는 '개인 키'가 각각 부여된다. '개인 키'를 이용해 거래에 사용되는 '공개 키(Public Key)'를 만들 수 있으며, '공개 키'를 통해 가상화폐를 주고 받거나 잔액을 확인할 수 있다. '공개 키'가 ‘계좌번호’라면 '개인 키'는 ‘계좌 비밀번호’인 셈이다.

문제는 '개인 키'를 분실한 경우 마땅히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은행 계좌 비밀번호를 잊었다면 통장 사본과 신분증 등을 들고 해당 은행을 찾으면 되지만 불특정 다수와 익명성을 전제로 거래하는 가상화폐 시장엔 이를 확인해 줄 중앙 기관이 따로 없는 탓이다.

개인 키를 기억에 의존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인 키는 무작위로 추출한 임의의 숫자와 알파벳으로 구성된 주소로 ‘18E14A7B6A307F426A94F8114701E7C8E774E7F9A47E2C2035DB29A206321724’와 같은 구조를 갖는다. 따로 적어두는 것이 좋지만 주소가 노출되면 그대로 보유 가상화폐를 해킹당할 수 있어 안전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이 때문에 개인 키를 별도로 보관하는 하드웨어월렛(Hardware Wallet)까지 생겼다. 하드월렛은 USB스틱이나 카드 형태로 만들어진 것으로 개인 키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유 중인 가상화폐를 해킹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드월렛을 분실했다 하더라도 개별 하드월렛에 부여된 24개 단어의 복구 코드를 이용해안에 담긴 가상화폐 소유권을 증빙할 수 있다.

'개인 키' 찾으려고…복구 전문업체에 ‘최면술’까지 등장

잃어버린 '개인 키'를 찾기 위한 기상천외한 방법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활동하는 최면술사 제이슨 밀러는 최면을 통해 '개인 키'를 알아낼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나를 찾아오는 사람 중 절반 가량이 개인 키 분실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50% 정도의 성공률을 보였다. 최면술로 '개인 키'를 찾은 경우 0.5비트코인을 사례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 키 복구 전문 업체도 등장했다. 월렛 리커버리 서비스(Wallet Recovery Services)는 무차별 암호 해독 방법을 통해 잃어버린 개인 키 조합을 찾아내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개인 키 구조가 복잡한 탓에 프로세스가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성공률 역시 3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작위로 생성되는 암호 프로그램을 직접 만든 경우도 있다. 아일랜드 기업가인 유세프 사르한은 수천만 개의 암호 조합을 테스트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기 위해 코딩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2013년에 수백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구입한 뒤 지금껏 찾지 못하고 있다.

가상화폐 전문 리서치 회사인 모자이크(Mosaic)의 그라함 톤킨 최고성장책임자(CGO)는 “가상화폐 포렌식 분야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도구로 발전할 것”이라며 “가상화폐 시장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이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다른 산업 역시 커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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