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대법원 "연장 문제없다" 결론...전문가 "금융회사-소비자간 시효 연장 없애야"

[한스경제=양인정 기자] 대법원이 채권자가 빌려준 돈을 달라는 채권의 시효를 무한히 연장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재확인하자, 채무조정 단체가 금융사와 금융소비자 관계에 한해 시효를 제한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일 서울보증보험이 연대보증 채무자인 유모씨를 상대로 채권의 시효를 연장하기 위해 3번째 재판청구를 한 것과 관련 이 청구를 제한할 이유가 없다고 최종 결론 내렸다.

앞서 서울보증보험은 유씨를 상대로 1997년에 한 차례 소송을 제기해 채권의 시효를 10년으로 연장했고 2007년이 되어 다시 소송을 제기해 다시 10년을 연장했다. 유씨는 서울보증보험이 다시 10년을 연장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것과 관련해 소권의 남용을 주장하면서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민법상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로써 서울보증보험은 유씨에 대해 30년째 채권행사가 가능해졌다.

회수가능성 '제로' 채권, 소멸 시효연장은 무의미

시민단체와 파산법조계는 이 같은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회수가능성 없는 채권에 대해 소멸시효를 무한히 연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채권자에게 무한히 시효를 연장하는 권리를 주더라도 채권자가 못 받은 돈을 회수할 수 있다거나 채무자가 상환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명수 성남금융복지센터 센터장은 “이번 대법원 판례의 사안을 보면 10년 이상 된 채무를 갚지 못한다는 건 상환능력이 없다고 볼 수 있다”며 “이 경우 시효를 계속 연장해 추심을 한다면 채무자는 채무불이행자로 남게 되고 이로 인해 정상적인 경제적 활동을 못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강 센터장은 이어 “거시 경제적 측면에서도 채무자가 경제적 갱생을 통해 소비활성화를 꾀하는데도 부정적”이라며 “특히 장기의 채무 상황이 채무자의 자존감 상실과 함께 삶의 질을 떨어지게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9일 빌린 돈을 달라는 소송에 대한 시효는 무한히 연장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진=연합뉴스

금융감독원 2017년 ‘금융권 특수채권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 금융권의 5년 이상 연체채권 규모는 8조2085억원이다. 전체 연체채권 금액(20조1542억원)의 40.7%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대상 채무자는 37만5442명이나 된다.

이는 연체채권의 40%가 법적 소멸시효 5년을 채운 뒤에도 소송 등의 방법으로 10년씩 계속 연장되고 있다는 의미다. 소멸시효가 3번 이상 연장돼 연체 발생일로부터 25년 이상 된 채권, 즉 최소 1992년 이전에 발생한 연체채권도 725억원(차주 3457명)이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금융회사와의 거래가 아닌 개인간 돈거래는 채권자의 시효 연장을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돈을 일부러 갚지 않는 채무자 때문에 돈을 빌려준 개인 채권자가 시효 연장 권리를 제한받을 수 없다는 것. 특히 개인 채권, 채무 관계에서는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아 채권자가 파산하는 문제도 생긴다.

이 때문에 정치권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금융사와 금융소비자와의 관계에 한해 법적 소멸시효를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할 것을 주장해왔다.

이헌욱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법제이사는 “대출과 카드 등 금융상품으로 생긴 채권에 대해 일정기간이 지나면 채권이 소멸하는 절대적 소멸시효제도의 입법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상품 판매로 생긴 채권은 일정 기간 회수가 안 되면 채권이 그대로 없어지게 한다는 의미다.

소멸시효 제한, 금융사에 꼭 손해는 아냐

소멸시효 제한이 금융채권회사에 꼭 손해만은 아니다. 채권금융회사가 회수 가능성 없는 금융소비자를 상대로 수십 년 동안 소송과 추심 등을 해봤자 채권 관리 비용만 지출되는데 제도 도입으로 이 지출비용을 줄일 수 있다.

기형적인 채권시장이 형성되는 부작용도 줄어들 수 있다. 회수 가능성 없는 금융사의 대출채권에 대해 무기한 시효연장을 허용하면 채권이 살아 있다는 이유로 대부업체에 매각이 된다. 대부업체는 이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강한 추심의 방법을 행사하게 되는 악순환이 생긴다.

정부도 이런 점을 감안해 지난해 7월 장기소액 연체자 지원 대책을 발표하면서 소멸시효 연장-매각-재매각-소멸시효 연장-추심의 악순환 끊기 위해 대부업자와 부실채권 추심을 규제하는 정부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준하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사무처장은 “금융회사의 채권 시효가 제한되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쓸모없게 된다면 이 채권을 대부업체에 유통해서 상환능력 없는 금융소비자를 압박할 일이 없고, 대부업체도 이런 채권을 매입할 이유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소멸시효의 연장이란...

현행 민법은 상거래 채권은 5년, 개인 간 거래 채권은 10년의 채권 행사기간을 두고 있다. 이 기간 안에 채권자가 소송을 제기해 판결을 받게 되면 그 채권은 시효가 연장돼 다시 10년 동안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

양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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