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매는 좋은데 얼굴이 성형한 티가 많이 나네요", "고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네요"

유튜브 방송 콘텐츠로 얼마 전 1020세대에게 유행했던 ‘얼평(얼굴평가)’ 방송의 내용이다. 이들은 자신의 사진을 보내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외모에 대한 평가받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인신공격성 돌직구가 난무함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보내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이 어떤지 확인하고 싶은 심리다. 거울만 봐도 스스로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을 때로는 잔혹하기 그지없는 네티즌들의 평가에 이처럼 기댄다. 마치 결정장애를 인정하는 듯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런데 그 본능에 과잉집착하면서 외모지상주의 공화국이 된 곳이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다. 중고생은 물론이고 초등학생까지 화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예뻐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자연스러움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강요하면 할수록 반작용 역시 도드라지는 법. 루키즘의 강압 속에 등장한 것이 바로 ‘탈코르셋 운동’ 이다.

민낯에 커트머리, 운동화에 청바지, 브래지어 벗기, 렌즈대신 안경 착용, 꽉 끼는 유니폼 벗기 등 탈코르셋 운동은 자신을 억압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나는 자유인이다’를 구현하고 있다. 꾸밈이 노동이었던 이들이 예뻐지기를 반납한 대신 자유를 획득한다.

여성이라면 어려서부터 누구나 한번쯤 들었을 법한 말이 바로 ’여자답게’다. 이는 ’조신하게’ 내지는 ’아름답게’란 뜻을 내포한 말이다. 드라마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외모가 뛰어난 여주인공이 백마 탄 왕자와 만나 사랑을 이루는 스토리가 대부분이다. 아름다운 여성의 최종 종착지인 셈이다. 광고는 여성 모델의 섹시함, 귀여움, 우아함을 제품에 버무려 놓는다. 이렇듯 미디어는 개성상실의 공간이다.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미(美)가 판치는 곳이다.

대부분의 여성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성다움’에 대한 암묵적인 요구를 받는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을 평가하는 대다수는 남성이다. 단언컨대 인간의 평가라는 것은 객관적이지 못하다. 이미지를 통해 평가절하 되기도, 때로 과대평가 되기도 한다. 암묵적인 꾸밈 강요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러하기에 자명하다. 외모도 능력인 세상이니까.

획일화된 미에 꽂혀있는 사회적 시선에 일탈을 감행하고 코르셋을 벗어던진 여성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탈코르셋 운동은 외모지상주의에 따른 반작용으로 발생한 급진적인 페미니즘의 성격을 띠고 있는 탓에 자신들의 방식을 규정하고 강요하는 ’역(逆)코르셋’의 우를 범하기도 한다. 모든 여성을 ’탈코르셋’이라는 프레임에 가둬두면 안 된다. 내가 선택한 프레임으로 다른 선택을 하는 이들을 잘못된 것으로 비난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역코르셋이니까. 누군가에게는 꾸밈이 즐거움일 수 있지 않은가.

탈코르셋 운동의 반감으로 최근에는 남성들의 ’탈갑옷 운동’이 시작됐다고 한다. 일명 사회로부터 강요된 ’남성다움’에서 자유로워지기다. 난 탈갑옷 운동 역시 지지한다. ’강해야 한다’, ’울어서는 안 된다’ 등의 주문은 모두 남성들을 짓누르는 억압기제다. 이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두 팔 벌려 환영한다. 그러나 이것이 자칫 여혐, 남혐의 대결구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스럽다.

탈코르셋, 탈갑옷 운동은 성대결이 아닌 그동안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강요받았던 여성다움, 남성다움이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진정 ’나다움’을 발견하는 데 그 본질이 있다.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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