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남자' 한국, 일본 포스터.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경기 불황과 성장 정체로 움츠러들었던 국내 뮤지컬계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웃는남자' '프랑켄슈타인' 등 창작극들이 해외 진출의 호보를 알렸다. 과거 해외 진출이 단발성 공연에 그쳤다면, 이제는 판권 수출부터 투자 유치까지 방법도 다양화됐다. 중국발 한한령(限韓令·한류자제령)이 해빙기에 접어들면서 국내 뮤지컬 시장은 한층 더 기지개를 켤 전망이다.

■ '포화 상태' 돌입한 韓 뮤지컬 시장

여러 업계 전문가들은 2018년 현재 국내 뮤지컬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고 분석하고 있다. 조사 기관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국내 뮤지컬 시장의 규모는 약 3000억 원 대. 한국보다 인구 수가 많고 경제 수준도 높은 일본의 경우 5000억 원 대의 시장 규모를 형성하고 있는데, 국내 시장이 아무리 커져도 이 수준 이상으로 올라갈 순 없을 거란 예측이다.

이 같은 예측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재단법인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함께 실시한 '2017 공연예술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6년 국내 전체 공연 규모는 7480억 원, 뮤지컬 티켓 판매액 규모는 1916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전년도 공연 규모 대비 4.3% 가량 축소된 수준이다. 공연 건수와 일수, 횟수, 관객 수 역시 전년도 대비 각각 16.3%, 13.5%, 14.1%, 17.4% 줄었다.

공연을 보는 관객은 한정돼 있는데 작품 수가 늘어나면 결국 출혈 경쟁이 발생한다. 갑작스레 예정됐던 공연이 취소되거나 출연료 및 스태프들의 임금이 미지급되는 사례는 뮤지컬계가 성장 답보 상태에 직면했다는 사인으로 읽힌다.

'미녀와 야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아이 러브 유' 등을 소개하며 국내 공연 시장 확대에 힘쓴 설앤컴퍼니의 설도윤 대표는 일찍이 이 같은 사태를 예견하며 '수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설 대표는 '제 7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뮤지컬 내수 시장은 포화 상태에 다다를 것"이라며 "포화 상태를 극복하려면 라이선스가 아닌 창작 뮤지컬의 활성화를 통한 수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헤드윅' 공연 장면.

■ 뮤지컬 성장 정체, 해외 진출이 답

국내 뮤지컬 시장은 지난 15년 여 간 급속도로 성장했다. 2000년 대 초반만 해도 100억 원 대로 추산되던 규모가 약 30배까지 뛰었다. 창작 뮤지컬의 비중 역시 전체 작품의 30%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이 기간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뮤지컬계는 시선을 해외로 돌렸다.

박효신과 엑소 수호 등의 출연으로 관심을 받은 뮤지컬 '웃는 남자'는 지난 17일 일본의 공연 제작사인 토호 주식회사와 라이선스 공연 계약을 맺었다. 이에 따라 내년 4월이면 1300석 규모의 닛세이 극장에서 국내 창작 뮤지컬인 '웃는 남자'를 볼 수 있다.

대만 국립 공연예술센터 산하의 1호 국립극장인 대만 타이중의 내셔널 타이중 시어터는 매년 여름이 되면 우수한 해외 작품을 초청하는 페스티벌을 진행한다. 이번 페스티벌에 국내에서는 '헤드윅'과 '팬레터' 두 작품이 참여한다.

'헤드윅'은 본래 브로드웨이 작품으로 지난 2005년 한국 라이선스로 초연된 바 있다. 브로드웨이 원작의 라이선스 작품이 해외로 수출되는 경우는 이례적이라 주목을 크게 받았다. 20일부터 3일 간 열린 공연에는 배우 마이클 리, 제이민, 오만석, 전혜선 등이 참여했다.

일제강점기 문인들의 열정과 사랑을 담은 '팬레터'는 국내 창작 뮤지컬 사상 최초로 대만 무대에 서게 됐다. 대만 타이중의 내셔널 타이중 시어터는 지난 5월 제작 발표회를 열고 '팬레터'를 정식으로 소개했다.

치유위안 현지 예술총감독은 "'팬레터'의 소재는 대만 문학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창작의 영감을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면서 "'팬레터'를 통해 대만 관객들이 한국 뮤지컬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문태유, 소정화 등 국내 배우들이 함께하는 '팬레터' 대만 공연은 다음 달 17일부터 3일 동안 펼쳐진다.

'라흐마니노프' 중국 포스터.

■ 해빙기 접어든 한한령, 韓 뮤지컬 오아시스 될까

중국발 한류 자제령, 일명 한한령이 조금씩 누그러짐에 따라 중국은 한국 뮤지컬의 새로운 숨통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6년 기준 중국의 뮤지컬 시장 규모는 약 300억 원으로 국내의 10분의 1 수준이지만 성장 속도가 빠르다. 중국의 리서치 전문 회사 도략문화산업연구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 공연된 뮤지컬은 2012년 882건에서 2016년 2113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관객수 역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즉 장래성이 있는 시장이란 의미다.
'빨래', '마이 버킷 리스트', '빈센트 반 고흐' 등은 지난해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작은 규모의 공연이었지만 한한령 속에서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지난 6월에는 창작 뮤지컬 '라흐마니노프'가 호보를 알렸다. 라이선스로 중국에 진출하는 데 성공, 오는 11월 16일부터 26일까지 중국 상하이 상 극장 무대에서 공연하게 된 것.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번에 대한 혹평으로 슬럼프에 빠진 라흐마니노프와 그를 치료한 것으로 기록된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의 관계를 통해 아픔과 치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2인극이다. 지난 2016년 초연돼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곡/음악감독상과 '예그린 어워드' 극본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라흐마니노프'는 13회에 걸쳐 중국 관객들과 만난다. 제작사 HJ컬쳐 관계자는 "중국 뮤지컬의 중심으로 꼽히는 상하이문화광장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이번 라이선스 진출이 성사됐다"면서 "우리의 대본, 음악, 무대로 중국에서 공연의 감동을 그대로 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내 창작 뮤지컬계에서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프랑켄슈타인'과 '벤허'는 중국으로부터 각각 약 21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받는 데 성공했다. 국내 대극장 뮤지컬에 중국 자본이 투자된 건 이번이 첫 번째다.
'프랑켄슈타인'의 투자 유치를 주도한 이종규 인터파크 공연사업본부장은 "중국은 최근 동양 정서에 부합하는 한국 작품들에 눈을 많이 돌리고 있다"면서 "이번 투자는 사드 이후 주춤했던 한·중 문화 산업 교류를 다시 본격화 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이번 투자 유치 성공을 계기로 한국 공연 콘텐츠 수출 및 공연 산업 전반에 걸친 합작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사진=EMK 뮤지컬 컴퍼니, 클립서비스, HJ컬쳐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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