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신동빈 회장 사재출연 롯데엑셀러레이터...스타트업 키우고 고용창출도

[한스경제=변동진 기자]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은 어떻게 다가올까. 3년전 국내 5대 재벌 롯데는 이런 걱정과 함께 역발상을 시작했다.

“우리가 망하는 상황은 외부환경 탓도 있지만, 강력한 라이벌의 출현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 라이벌이 될 놈들을 찾아서 아예 우리가 키우면 안될까.”

3년이 지난 지금. 롯데는, 잠재적 라이벌들은 어떻게 됐을까. 

“롯데를 망하게 할 기업을 찾아라.”

스타트업 기업을 육성할 목적으로 3년전 출범한 투자법인 `롯데엑셀러레이터`는 다소 `섬뜩한` 슬로건을 내걸었다. 롯데액셀러레이터는 2016년 2월 설립된 이래 엘(L)캠프 1~3기를 거치는 동안 42개사를 비롯해 사내벤처기업 등 약 50개사를 `미래의 라이벌` 사로 찾아내 집중적으로 육성·지원하고 있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롯데액셀러레이터 스타트업 데이’에 참석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지주

지원 프로그램은 선발 업체에 대해 최대 5000만원을 제공하고, 최종적으로는 외부 추가 투자를 받도록 해 주는 것이 목적이다. 게다가 롯데의 니즈(Needs)와 일치할 경우 인수합병(M&A)도 진행된다. 라이벌을 없애는 것이 아니고, 키우고 또 키워서, 롯데와 맞을 경우 합치는 것이다.

엘캠프에 선정된 기업들은 가치가 크게 높아졌다. 스타트업 42개사의 2016년 4월 입주 당시 기업가치는 총 1097억원 정도였으나 지난해 말에는 약 1843억원으로 77.1% 상승했다. 후속 투자 유치율도 60%에 달한다.

◇ 투자 유치하고 고용도 늘고 '일석이조'

‘모비두(엘캠프 2기)’는 사람 귀에 들리지 않는 ‘비가청음파’ 전송기술을 가진 업체다.  롯데멤버스와 협업해 음파결제 시스템인 ‘엘페이 웨이브’를 개발했고, 7억원의 후속 투자 계약까지 체결했다.

엘캠프 3기로 선발된 ‘벅시(BUXI)’는 새로운 자동차 렌탈 사업 모델을 제시해 롯데렌탈로부터 8억원의 후속 투자를 받았다. 이 회사는 탑승지와 목적지가 같은 사람들에게 집에서 공항까지 운전기사와 승합차를 제공하는 승차공유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L캠프 성장 현황. /롯데엑셀러레이터

롯데카드는 지난 2월 벅시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승차공유 서비스 프로모션(20% 할인)을 실시하기도 했다. 더불어 기술력을 인정받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Go 평창’ 앱에 주문형 교통서비스 사업자로 선정돼 평창·강릉 지역 내 3~4명 이상 단체로 이동하는 고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박두환 롯데카드 마케팅본부장은 “롯데엑셀러레이터를 통해 선발된 기업과 함께하는 첫 공동 프로모션”이라며 “벅시와 같은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의 성공적인 정착을 돕는 것은 물론, 고객들에게는 저렴한 가격에 편리한 교통수단을 제공한 사례”라고 말했다.

롯데엑셀러레이터 엘캠프 입주기업 채용 증가 추이.

롯데엑셀러레이트가 주목을 끄는 또 다른 점은 고용창출 효과다. 전체 엘켐프 1~3기의 초기 고용 직원은 254명에 불과했지만, 올해 3월 기준 390명(53.5%)으로 늘었다.

1기 캠프의 경우 2016년 4월 79명으로 출발했으나 올해 3월에는 156명으로 늘어 그 사이가 직원수가 86명(122.9%)이나 많아졌다. 나머지 2~3기 역시 평균 20명 이상의 고용창출이 발생했다.

통합보험관리앱 ‘보맵’을 만든 ‘레드벨벳 벤처스’는 초기 직원수가 3명에 불과했지만, 현재 28명까지 늘었다. 지난달 말 기준 해당 보맵 가입자 수가 70만명을 돌파하는 등 사업도 계속 성장 중이다. 이 회사는 서울시의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성평등 실천 모범기업 105곳’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연차 격려수당 지급과 상급자 승인 없는 연차사용 신청, 근속자 포상휴가 및 휴가비 제공 등의 제도를 실시한 덕분이다.

◇신동빈 회장, 사재 출연하며 독려

사실 롯데액셀러레이터에 가장 의욕을 보인 이는 그룹의 총수인 신동빈 회장이다. 그는 법인이 본격 출범하기도 전인 2015년 11월 서울 잠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관에서 열린 ‘롯데액셀러레이터 스타트업 데이’에 참석해 30개 신생 벤처의 사업 아이템 발표를 직접 청취했다. 특히 신 회장은 법인 설립 당시 사재 50억원을 출연했다. 나머지 100억원은 롯데쇼핑, 케미칼 등 4개 계열사가 분담했다.

이종훈 투자본부장은 “신 회장이 롯데액셀러레이터 만들 때 강조했던 건 ‘롯데를 망하게 할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형님 기업이 작은 업체를 도와주는 입장이 아니라 ‘벤처는 우리의 미래’라는 생각으로 투자 중”이라고 강조했다.

롯데액셀러레이터는 지난 4월 엘캠프 4기(20개 스타트업) 모집을 완료했다. 입소문이 퍼진 덕분인지 몰라도 선발 경쟁률이 평균 30:1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롯데그룹 측은 엘캠프 4기를 통해 인공지능을 비롯해 로봇, 빅데이터 등 하이테크 기업을 적극적으로 발굴·육성할 방침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엘캠프의 강점은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기술·제품·서비스 등의 성능 및 효과를 시험할 수 있는 환경, 이른바 테스트 베드(Test bed)를 제공하는 점”이라며 “여기에 ‘롯데에서 시현’이라는 타이틀까지 달면 글로벌 VC(벤처 캐피탈)들에게도 신뢰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패션 MD, 물류 전문가 등 현업의 실무 팀장·임원 레벨의 멘토링 역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롯데와 같이 아시아 시장 진출 기회도 제공받는 것은 물론, 지속적으로 협업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롯데가 지원하지만 사회공헌 성격이 큰 사업이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전혀 없는 것도 특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국내 많은 대기업들이 벤처기업 지원을 사회공헌활동으로 치부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사외 벤처기업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롯데는 자신들의 미래를 맡기겠다는 자세로 벤처기업을 찾아다닌다. 대기업과 벤처기업간 새로운 협력모델로 정착될지 주목된다. 

변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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