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오의정 기자 omnida5@sporbiz.co.kr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오빠는 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없어? 만약에 있으면 해도 돼."
남자는 깊게 생각하는 듯 눈을 내리깔았고, 그런 남자를 본 여자는 상대의 고민을 이해해 보려는 듯 입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기간… 기간이…"
잠깐의 정적이 감돈 뒤 남자가 입을 뗐다.
"조금 짧다, 기간이."
(‘하트시그널2’ 마지막회. 오연주와 김현우의 대화 中)

서울 연희동의 한 골목. 아파트와 작은 꽃 가게가 마주 보고 있는 한적한 주택가에 한 음식점이 있다. 서울무궁화라는 소박한 이름을 내건 맥주와 와인 가게. 일반적인 펍이라기엔 내부가 차분하고, 평범한 레스토랑이라기엔 식사가 아쉽다. 사랑하는, 혹은 썸 타는 누군가와 가까운 거리에서 잔을 부딪히며 적당히 배를 채울만한 장소. 서울무궁화는 그런 애매하고, 그래서 간질간질한 어딘가다.

서울무궁화가 연희동에 자리를 튼 건 지난해 여름. 작곡가 겸 음악감독인 김지현이 사장으로 있는 이곳의 예술감각은 아마 주인에게서 온 것이리라. 날이 완전히 저물고 사람들의 이야깃소리가 잦아들 무렵이면 김지현은 가게 안에 마련된 피아노 앞에 앉아 이런저런 곡들을 연주하기도 한다.

아는 사람만 알음알음 찾던 이곳이 보다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채널A 종영 예능 프로그램 '하트시그널2'다. 오영주와 김현우가 보는 이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마지막 만남을 가졌던 곳이 바로 이곳. 밥을 먹다 손등이 부딪혀도 이상하지 않을 테이블 거리. 썸남썸녀 사이의 알싸한 긴장감이 공간 전체에 베어 있는 듯 하다.

메뉴는 1만 원 이내부터 1만6000원까지다. 생맥주는 4000원, 빅웨이브, 대동강 에일, 블루문, 사무엘아담스 등 네 종류의 병맥주도 마련돼 있다. 와인과 위스키는 합쳐서 10여 종 정도 있는데, 소주류는 서울의밤과 화요25° 뿐이다.

부드러운 보디감으로 가볍게 즐기기 좋은데다 구입하는 것 만으로 자연스레 호주 코알라의 보호를 위한 기부금도 낼 수 있는 코알라 랜치 쉬라즈를 주문했다. 식사 대용으로 선택한 메뉴는 이름도 간결한 그냥 '파스타'와 치즈불고기, 그리고 매운 해물 국물 떡볶이.

한식과 양식, 분식의 오묘한 조화를 일부러 노린 것은 아니지만 그 조합은 썩 만족스러웠다. 집에서 만든 것 같은 담백한 오일 소스의 파스타는 순식간에 없어져 한 번 더 주문했는데, 쫀득한 식감의 푸실리가 기본 스파게티 면보다 더 잘 어울렸다. 치즈불고기는 이름처럼 치즈와 불고기가 정확하게 조합돼 있었고, 매운 해물 국물 떡볶이는 기본에 충실한 맛으로 양이 풍성했다. 다만 '매운'이라는 수식어에 집착하면 실망감을 맛볼 공산이 크다. 드라이한 와인과 조합은 굿. 이 정도면 분위기뿐 아니라 맛으로서도 재방문 의사를 높이기에 충분하다 싶다.

오픈은 오후 6시 30분. 짧고 굵게 8시간 운영된 뒤 오전 2시 30분께 문을 닫는다. 분리되지 않은 길다란 테이블에 양쪽으로 의자가 놓여 있는데, 자리가 많지 않아 늦게 가면 기다려야 할 가능성이 있다. 전체적인 공간도 넓지 않은 편이지만 현대미술가 김민경의 작품들을 비롯해 다양한 소품들이 감각적으로 배치돼 있어 다이내믹한 효과를 준다. 정직한 음식과 좋은 술로 입을, 김지현의 연주로 귀를 적셨다면, 개성 있는 인테리어는 시각적 만족감을 충족시키기 충분하다.

매주 화요일은 정기 휴일이고 간혹 오너의 사정으로 갑작스레 문을 닫거나 오픈 시간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으니 방문 전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참고하면 좋겠다.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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