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상 최악의 한해를 보낸 정유업계가 내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다.

올해에는 저유가 기조로 원자재 개발, 판매에 따른 이윤이 크게 감소됐지만, 이를 정제·가공하는 정유업계에서는 정제마진이 커져 수혜를 입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월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의 가격은 장중 배럴당 34.53달러까지 떨어져 35달러 선 아래로 떨어졌다. 이는 2009년 2월 이래 최저치다.

정유업계는 국내 정유업체 네 곳의 올해 영업이익 합계를 5조2,036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유가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유 4사는 내년 사업 및 투자전략에 있어서도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글로벌 파트너링과 해외 인수·합병(M&A) 시장에 주력한다면 GS에너지(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상장 채비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에쓰오일은 기존 정유사업에서 석유화학사업으로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 지난해와 올해 실적 ‘냉탕’과 ‘온탕’을 오간 정유업계가 내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대 초저유가로 진입한 지난 8일 오전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한 정유공장 시설의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SK이노베이션 "글로벌 석유화학회사들과 경쟁하겠다"

지난해 37년 만에 적자를 기록한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영업이익 2조원 돌파가 확실시되는 등 저유가 상황에서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체질개선에 성공했다.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은 국내 시설투자나 양적 규모를 확대하기 보다는 세계로 나아가 글로벌 석유화학회사들과 경쟁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와 관련해 SK이노베이션은 내년 사업전략으로 '글로벌, 고부가화학제품, 파트너링 및 M&A'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가장 먼저 글로벌 파트너링(Global Partnering) 전략을 확대할 방침이다. 글로벌 파트너링 프로젝트는 SK가 각 분야 대표 해외기업과 파트너십을 구축해 국내외 합작공장을 건설하고 마케팅과 유통을 함께 추진하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미 스페인 렙솔(Repsol), 사우디아라비아 사빅(SABIC), 중국 시노펙(Sinopec) 등과 합작을 통해 글로벌 전진기지 구축에 성공했고 필리핀, 인도네시아, 호주 등 신흥시장 진출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기존 남미와 동남아 시장에 편중됐던 석유개발사업의 포트폴리오도 확대한다. 이와 관련 지난해 2개 광구를 인수한 미국에서 추가 M&A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 에쓰오일 "석유화학에 눈 돌린다"

에쓰오일은 2016년에는 기존 정유사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석유화학사업 진출을 본격화한다.

이와 관련 지난해 프로젝트 설계작업을 마친 잔사유 고도화 콤플렉스(RUC), 올레핀 다운스트림 콤플렉스(ODC) 프로젝트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를 집행한다. 잔사유 고도화 설비는 원유 정제과정에서 가스, 휘발유 등을 추출하고 난 뒤 남은 값싼 기름(잔사유)을 다시 한번 투입해 휘발유나 프로필렌과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얻어내는 설비다. 이외에도 자동차 내장재와 전자제품, 단열재 등에 들어가는 폴리우레탄의 기초원료로 활용되는 프로필렌옥사이드(PO), 플라스틱의 한 종류로 자동차 범퍼를 비롯해 다양한 용도에 사용되는 폴리프로필렌(PP)의 생산에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

 

▲ GS에너지 “투자 재원 마련위해 상장”

내년 정유업계 투자 관련 움직임 중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 중 하나가 GS칼텍스의 중간사업지주회사인 GS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의 상장 여부다. 현재 정유 4사 중 GS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는 아직 주식시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GS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가 상장을 서두르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GS에너지의 경우 향후 석유개발사업 등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이유가 크다는 분석이다. GS에너지는 미국 셰브론사와 50 대 50의 비율로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를 위해서는 미국 셰브론사와의 합의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독자적인 투자 등을 집행하기 위해 만든 회사가 중간사업지주회사인 GS에너지다.

GS칼텍스는 중간지주회사인 GS에너지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대규모 재원을 마련해 설비투자는 물론 해외 자원개발에 나선다는 복안을 세워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거래소의 규정 개정으로 상장 요건이 완화된 점도 GS에너지의 상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지난해 GS칼텍스가 대규모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GS에너지도 3,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했다. 현재 실적에 중점을 두는 기존 요건 아래서는 상장이 불투명했지만 거래소가 상장요건을 미래 기대가치가 큰 기업으로 완화하면서 GS에너지 상장의 걸림돌도 해결됐다. 특히 GS칼텍스가 올해 1조5,000억원 수준의 대규모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되면서 지금이 시장에 나올 '적기'라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 현대오일뱅크 “현대중공업 돕기 위해 상장”

현대오일뱅크는 모회사인 현대중공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상장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오일뱅크 지분의 91%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3조원의 적자를 낸 현대중공업이 올해도 1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돼 긴축경영체제에 돌입하자 알짜 자회사인 현대오일뱅크 상장으로 자금을 마련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미래에셋증권은 현대오일뱅크에 같은 정유사인 에쓰오일의 주가순자산비율 1.4배 정도를 적용되면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지분가치는 4조8,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는 현대중공업 시가총액의 70%에 해당하는 것으로 3분기 말 기준 현대중공업 순차입금 12조4,000억원의 3분의 1이 넘는 수준이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지난 11일 현대중공업의 내년 실적 회복을 전망하면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현대오일뱅크 상장 이슈(4조∼5조원)가 부각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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